□ 탄생배경
잠수의 역사가 시작된 배경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우선 바다에 있는 해산물을 채취해 생계를 유지하려는 목적과 해양 영토를 지키려는 군사적인 목적 그리고 바다에 대한 지식을 확대하려는 인간의 강한 욕구에서부터 비롯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잠수를 시작한 역사는 확실치 않으나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고대의 잠수는 비교적 얕은 수심에서 이루어졌으며 사람들은 주로 상업적 가치가 있는 해조류, 산호, 진주조개 등을 채취했습니다.
해난구조 및 인양작업을 위한 잠수기술은 18세기 중엽,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부터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식잠수, 잠수종, 레스브리지의 잠수기구 등을 통해 잠수사들은 난파선의 닻, 은화, 금괴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양작업에서 큰 활약을 하였지만 물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완전한 잠수복은 발명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스쿠버 잠수의 발전에 힘입어 일반인들도 바다 속 활동이 자유롭게 되었고, 잠수에 대한 관심도와 잠수인구도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는 레저 잠수에 국한된 것이었지만 지리학자, 동물학자, 고고학자 등 학계의 학자들도 수중 체험을 통해 지구와 인간 문명의 근원에 관한 새로운 학문을 개척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잠수산업을 주도해 나가기 위해 투자를 아끼지 않는 기업도 나타났으며, 대부분의 기업들이 대륙붕 유전개발에 집중하였습니다. 그것은 대륙붕 유전이 세계 산유고의 14%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 하는 일
국가기술표준은 산업잠수를 대기압 이상의 작업환경에서 인원, 장비, 자재를 바탕으로 공기 및 혼합기체를 사용하여 구조물 용접 및 절단, 보수, 구조물 설치 및 해체, 안전진단, 고르기, 발파, 해난구조, 극한환경잠수 등의 수중작업을 하는 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산업잠수사라고 하고, 이들은 산업잠수 현장에서 해난구조(침몰된 선체인양 및 좌초된 선박의 이초), 수중 교각설치, 선박접안시설, 기초부두 및 방파제 축조, 화력 및 원자력 발전소 냉각시설, 유조선터미널 시설, 항만 준설 및 암파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들은 바다 속에서 산업적 가치가 있는 것들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것으로, 산업잠수사는 주로 영리를 목적으로 잠수업무를 수행합니다.
□ 근무환경
산업잠수사가 일하는 곳은 물속입니다. 물속 환경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오랜 시간 물속에서 일하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그래서 산업안전보건법령에 의하면 1일 6시간, 주 34시간을 초과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산업잠수사는 고압환경에서 고립된 채 추위를 이겨내야 하는 인내심과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과 오랜 시간 수중 체류 따른 잠수병의 유발 등을 고려해 반드시 정해진 시간을 지켜 일해야 합니다.
특히 수중작업은 기후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육상작업을 할 때는 비오는 날이 휴무지만 수중작업은 파도치는 날이 일하기 어렵습니다. 파도가 높이 치면 물이 혼탁해지고 해면의 지원이 원활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안전사고의 우려도 있기 때문에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또 조류가 심한 해역에서는 잠수계획을 수립할 때 물의 흐름이 정지되는 시간을 참고하여야 하며, 서해안 해역은 간만의 차가 심해 낮에는 잠을 자고 야간에 수중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특히 계절 가운데 겨울은 수중이든 육상이든 체감온도가 매우 낮아 잠수사의 집중력과 작업효과가 급속도로 떨어지며 수중작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수중작업 자체가 힘든 작업이기 때문에 술과 담배를 하지 않아야 하며, 특히 흡연은 잠수병인 기체색전증과 감압병을 유발하므로 금지해야 하며, 과음을 삼가고,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열량이 많은 음식을 섭취하여 최상의 컨디션으로 수중작업에 임해야 합니다.
산업잠수사의 근무지는 해상 또는 강이므로 출장이 많은 편이며, 수중공사의 규모에 따라 장기간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레저잠수교육을 받은 사람은 비교적 빠르게 산업잠수에 적응할 수 있으며, 성격이 활달하고 매사에 긍정적인 사고를 해야 합니다. 특히 활동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 적합합니다.
잠수팀의 구성원은 잠수감독관, 잠수사 대기잠수사, 보조사, 전화수 및 기록수로 이루어지는데 잠수작업의 특성과 환경, 조건에 따라 자질과 경험이 부합되어야 하고, 상호 협력하는 철저한 프로 정신과 책임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잠수사를 비롯한 대기잠수사, 보조사, 전화수, 기록수의 임무는 잠수감독관에 의해 특정인이 지목될 수도 있지만 대체로 잠수현장에 2~5명의 자격을 갖춘 잠수사들이 서로 임무를 교대를 하는 형태로 잠수작업을 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배려하는 팀 협동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잠수 전문 인력을 육성하는 곳으로는 강릉 폴리텍Ⅲ대학교의 산업잠수과와 동부산대학교 해양산업잠수과가 대표고, 대학원 정규 석사과정으로는 한국해양대학교 해양관리기술대학원 수중잠수과학기술 전공이 유일합니다. 조선, 해양, 함정 등으로 확대할 경우 85개의 대학교와 전문대학이 있고, 2014년 기준 잠수 관련 학과(해양생물 및 수산 관련 학과, 해양공학 관련 학과, 건설토목 관련 학과, 스포츠 관련 학과 등)의 입학생은 36,678명입니다. 고등학교의 경우, 2014년 기준으로 해양과학을 특성화한 학교 수는 전국에 10개교이며, 입학인원은 1,131명입니다. 그 밖에 잠수관련 학교와 아카데미 등의 민간 교육기관에서 실시하는 이론과 실기교육이 있고, 수강료의 일부는 국비를 통해 지원받을 수 있습니다.
산업잠수사를 직업으로 택하기 위해선 고등학교 또는 이와 동등한 학력 이상이어야 하며, 특별한 전공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학의 토목학과, 해양학과, 기계학과, 전기·전자학과 등은 간접적인 기능습득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잠수임무 가운데 최소 기능으로도 수행이 가능한 보조사 겸 잠수사로 활동을 시작하여 경험과 기술적 숙련도가 축적되고 잠수자격증과 잠수경력이 쌓이면 정식 산업잠수사로 활동할 수 있습니다.
잠수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법령에 의해 반드시 국가기술자격 잠수기능사 및 잠수산업기사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며, 취업에 유리한 자격증은 토목관련 자격증, 용접관련 자격증(비파괴검사), 화약관련 자격증, 유압장비관련 자격증을 취득함으로써 기능습득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수중촬영, 수중용접 및 절단, 수중발파, 수중토목, 유압사용기술 등의 전문지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진출현황
산업잠수사들은 주로 수중전문건설업체, 해양경찰 특공대, 소방공무원 119구조대, 어장 정화정비업체, 해난구조업체, 정유회사, 원자력발전소 등에서 일합니다.
수중전문건설업체에 취업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자격요건보다는 성실성과 적극성이 요구되고, 해양경찰 특공대 특채는 잠수기능사 이상 자격증이 있으면 소정의 실기시험만으로 채용이 이루어집니다. 그 밖에 소방서 119구조대는 가산점을 부여하고, 잠수군무원은 자격증이 없으면 응시 자체가 불가합니다.
산업잠수에서 경험과 경력을 쌓고 책임감과 통솔력을 인정받으면 잠수팀장 또는 잠수소장으로 승진할 수 있고, 30% 정도는 창업을 하기도 합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2015년 국내 잠수 산업업체수는 912개이며, 일반잠수업체수를 포함할 경우 2,113개입니다. 종사자 기준으로 산업잠수사는 약 4,800명이고, 평균 소득은 500만원 수준이지만 1~2년차는 평균 300만원 이고, 10년 이상 감독직은 700~800만원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반해 일반잠수는 약 30만여 명, 임금은 평균 300만 원 정도로 파악됩니다. 하지만 경력 및 직급에 따라 임금수준의 격차가 큰 편이고, 위험을 동반하는 탓에 이직률이 높아 평균 근속년수는 약 7년입니다.
다른 통계인 정부의 개별 직종 노임단가를 살펴보면, 잠수부의 노임단가는 220,486원으로 2015년 대비 19.4%가 상승하였습니다.(1일 6시간 기준) 또 2015년 기준 국가기술자격통계에 따르면 잠수산업기사 수는 706명, 잠수기능사 수는 5,227명입니다.
□ 전망
세계적으로 국가 간 무역장벽이 점차 무너지고, 국경의 경계를 넘는 자유로운 교류가 더욱 확대되고 있습니다. 잠수산업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수하고 역량 있는 산업잠수사가 많이 필요합니다. 이와 함께 국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수중장비의 현대화도 필수입니다.
최근 세계의 잠수 관계 법규, 특히 유전개발 분야((offshore(oil field))는 상당히 강화되었고, 동남아시아까지도 이런 추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추세, 즉 현대식 수중장비를 보유하지 않고는 어디에서건 잠수를 할 수 없고 수중공사를 수주할 수 없습니다.
해외 수중공사에 참여하고 있는 국내 수중공사업체는 얼마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적정 규모의 기술력, 인력 그리고 장비를 갖춘 업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런 업체가 출현하면 국내 내수시장보다 50% 이상 고가에 이루어지고 있는 해외 수중용역 시장에 참여할 발판을 마련할 수 있으며 외국 업체의 현장은 제외하더라도 국내업체의 해외시장에만 참여하여도 그 규모를 감당하지 못하리라 전망됩니다.
잠수시장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성장가능성이 큰 분야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나라도 이 분야에 집중 투자를 할 경우 막대한 외화유출방지 효과와 용역 수출 시장 확대에 일조를 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또한 해외 인력송출을 위한 양질의 산업잠수사를 양성하여 경쟁력을 갖춘다면 산업잠수사의 고용 규모가 커질 수 있을 것입니다.
Q) 현재 하고 계신 일은?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A) 현재 (사)한국산업잠수기술인협회에서 상근 부회장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협회의 제반 총괄업무 지휘 및 협회 사업의 핵심인 산업잠수사의 권익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잠수와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해군에 입대하면서 비롯된 것인데,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배를 타기 위해서 해군을 택한 것이었어요. 지금은 육상 근무에 비해 여러 가지로 조건이 만족스럽지 못해서 배를 타려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만, 1970년대는 뱃사람들에게는 정말 황금기였죠, 그 당시 제 주변에서 배 타는 사람은 다 부유했습니다. 돈을 왕창 벌고 싶었고 제 나름대로 배 경력을 쌓기 위해 해군에 입대했던 것인데, 옆길로 새고 말았죠. 특별한 동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당시 20대의 젊은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그저 막역한 동경에서 잠수관련 특수부대와 인연을 맺은 것입니다.
Q) 이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은? 또 언제 보람을 느끼셨나요?
A)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먹는다. 산업잠수사들 세계에서 격언처럼 통하는 말입니다. 물속에 들어간다는 그 자체가 어렵고 힘든 것이라서 특별히 어떤 순간이 위협적이었다고 할 수 없죠. 사실 수중세계는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매 순간이 다 힘이 듭니다. 그리고 주변 여건이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인명사고 없이 고난도의 작업을 마쳤을 때 보람이 느껴지죠. 그 성취감이란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Q) 이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떤 준비와 노력을 해야 하나요?
A) 미국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그 성공비결로 한국의 젓가락질을 예로 들지 않았습니까? 난자의 핵을 집어내는 작업에 젓가락질로 훈련된 손재주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이죠. 상당히 공감이 가는 얘깁니다. 손가락을 많이 움직이는 것은 뇌의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즉 손을 많이 움직이고 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창의력도 뛰어나고 기술력, 예술성도 뛰어납니다. 이 점은 제가 1980년대 초 페르시아만 해역 해양유전지대에서 잠수사로 일할 때 확실히 실감한 부분입니다. 주변 해역에는 대부분 미국인과 영국인이 진출해 있었는데, 저를 비롯한 한국인 팀은 그들과 동일한 조건 하에서 수중작업을 하더라도 작업능률과 공정이 언제나 앞서 나갔고, 그들도 이러한 한국인들의 신속·정확한 수중작업 능력에 크게 감탄하였습니다. 그래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적도 있었죠.
Q)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A) 에피소드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언제나 마음속에 소중하게 기억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1980년대 2회에 걸친 해외 수중공사 경험인데요. 오늘의 저를 이 자리에 서게 해준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 초 처음으로 페르시아만 해역에 갔을 때는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였습니다. 페르시아만 해역 해양유전지대에 수없이 널린 1만톤 급의 데릭바지선과 외국 수중회사에 보편화되어 있던 혼합기체잠수 등은 제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어요. 정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때서야 잠수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한 거죠. 저는 해군의 잠수 관련 부대에서 표면 공급식 잠수를 했었지만, 군부대가 아닌 민간에서 최초로 표면공급식 잠수의 DDC(Deck Decompression Chamber) 체계를 직접 손으로 조립·운영하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실전 경험이 제 마음 속에 깊게 자리하여 귀국하면 제대로 된 산업잠수사를 양성, 세계 잠수시장에 한국인을 진출시키겠다는 야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 직업을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성실과 겸손을 제일 먼저 꼽습니다. 우리 협회에 구인요청을 하는 사업주들의 한결 같은 주문도‘일은 못해도 성실한 사람’을 추천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협회에서 실시하는 산업잠수기술향상과정은 기술력을 갖추되 성실하고 겸손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물박사가 되라는 주문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잠수하는 일꾼이 아니고 일하는 잠수사, 즉 전문잠수사입니다. 전문잠수사는 잠수도 잘 해야겠지만 여러 학문을 습득하고 응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든다면 수중토목을 잘하기 위해서는 토목에 대해 박식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선박인양작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려면 배의 설계도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배의 복원력, 인양력, 마찰력 등을 산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