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직업 세계
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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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넷이 만난 사람들
-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 이상화
긍정의 힘으로 승부하는 빙속 여제
미끄러운 빙판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골인점을 향해 달려가는 스피드 스케이팅. 손에 땀을 쥐는 올림픽 경기에서 한국 여자 선수 이상화는 두 번이나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그녀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자 스피드 스케이터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타고난 체력과 강인한 승부근성, 여기에 긍정적인 마인드와 성실함. 이상화 선수는 최고의 운동선수가 갖춰야 할 모든 덕목을 겸비했다. 스스로 세운 목표는 반드시 이루고 만다는 그녀는 최근 또 한 번 국민들에게 메달 소식을 전해주었다.이상화 선수는 2012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금메달,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여자 500m 금메달리스트이다. 2016년 11월에는 일본 나가노에서 열린 2016-2017 국제빙상연맹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2차 대회에서 여자 500m 경기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Q1: 스피드 스케이팅을 모르는 분들은 없겠지만, 선수가 생각하는 이 종목은 어떤 의미를 갖나요?
스피드 스케이팅은 한마디로 자신과의 싸움인 종목입니다. 내 기록을 깨기 위해 도전하는 경기이자 내가 한 노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종목이죠. 바로 이점이 스케이팅의 매력이고 저에게 가장 큰 희열을 주는 부분입니다.Q2: 스피드 스케이팅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나요?
처음으로 스케이팅을 접한 건 7살 때 오빠를 따라 스케이트장을 간 뒤부터였던 것 같아요. 오빠가 먼저 스케이트를 배우고 있었거든요.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특기활동으로 꾸준히 하면서 점점 재미를 붙였어요. 그때 일기에 “국가대표가 돼서 이름을 빛내고 싶다.“ 라고 썼는데 결국 중학교 3학년 때 국가대표가 되면서 제 꿈을 이뤘어요.
사실 1학년 때는 쇼트트랙으로 스케이팅을 시작했어요. 2학년이 돼서 처음으로 스피드 스케이팅용 스케이트를 처음 신었는데 언니들보다 훨씬 기록이 잘 나왔어요. 자신감이 생겼고 스케이트를 타는 게 너무나도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코치 선생님도 저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셨어요. “상화는 재능이 있으니 계속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 라고 하셨죠. 그때부터 머릿속엔 온통 스케이팅뿐이었던 것 같아요.Q3: 부모님의 반대는 없으셨나요?
부모님은 막내딸인 저를 누구보다 아끼고 보살펴 주셨어요. 새벽운동 할 때마다 데려다 주시고 훈련 끝날 때까지 지켜보고 기다리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죠. 딸을 운동선수로 키우면서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시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도 한결같이 저를 뒷바라지 해주셨어요. 제 금메달은 이러한 부모님의 헌신과 사랑의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해요.Q5: 다른 스포츠보다 자기와의 싸움이 중요하다고 했는데요, 경기에 임할 때 어떤 다짐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자기 자신을 믿는 것만큼 운동선수에게 중요한 건 없어요. 제가 방송에서 슬럼프란 ‘자기 내면에 있는 꾀병’ 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결국 스스로를 믿고 훈련에 매진하다보면 좋은 결과로 이어져 자연스럽게 극복이 되는 것 같아요. 올림픽 때도 부담감이 있었지만 불안하지는 않았어요. 제가 노력한 것들을 믿었고 그랬기 때문에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Q6: 자신만의 효과적인 훈련 방법이 있나요?
흔히 말하는 테크닉이란 부분을 위해서는 스케이팅 훈련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스케이팅뿐만 아니라 스케이팅을 잘 탈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도 정말 중요해요. 소치올림픽 당시엔 밴쿠버 때보다 더 좋은 기록을 내기 위해 체중은 줄이고 근력을 키워서 허벅지를 더 두껍게 만들었어요. 웨이트트레이닝은 기본이고 사이클, 산행 등의 훈련을 통해 더 빨리 달리기 위한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었고 결국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죠.
저는 모든 운동을 꾸준히 하는 편이예요. 최근에는 짐볼 운동이 좋다고 해서 훈련 스케줄에 포함시켰어요. 대신 운동의 종류 보다는 항상 훈련을 쉬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별명이 연습벌레라고 불렸던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아요. 저를 상징하는 꿀벅지를 만들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쉬지 않고 항상 운동에만 충실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Q7: 스피드 스케이터로서 멘토로 삼았던 이가 있는지요?
존경할 만한 분들은 많지만 특별히 누군가를 롤모델로 삼기 보다는 제 스스로를 믿고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 같아요. 한계에 부딪혔을 때 극복해내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스스로의 한계를 시험해본다는 마음가짐으로 지금까지 임해 온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요.Q8: 기억에 남는 코치나 스승님이 있으신지요?
저를 가르쳐 주신 모든 코치선생님들이 다 기억에 남아요. 밴쿠버 때 김관규 감독님, 소치 때 피터 뮬러 감독님, 그리고 지금 저랑 함께 훈련을 하고 있는 캐빈 크로켓 코치님 등 한 분 한 분 다 소중하고 감사한 분들이라고 생각해요.Q9: 자신을 발전시키는 좋은 경쟁자가 있나요?
제 자신이요. 운동 경기는 정직해서 제가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고 믿어요. 스스로를 위해 노력하고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왔기 때문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을 생각하기 보단 스스로에게 채찍질 하고 다짐하는 편이에요.Q10: 스피드 스케이터로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인가요?
빙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모든 순간은 언제나 행복해요. 스케이트를 타는 그 순간을 즐기다 보니 올림픽 금메달이나 세계 신기록 같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었겠죠. 노력의 결과물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잖아요.Q11: 앞으로 평창 동계올림픽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목표는 항상 제 자신이에요. 저는 지금 금메달리스트로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아니라 올림픽 출전을 꿈꾸던 어린 시절의 이상화로 돌아가서 평창 올림픽에 도전하고 싶어요.Q12: 빙상 스포츠를 하려는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좋은 코치 선생님을 만나는 것도 좋지만 저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지금까지 운동을 하면서 힘들고 지칠 때가 있었어요. 그때마다 긍정의 힘이 저를 다시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어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함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는 것만큼 운동선수에게 중요한건 없다는 것을 후배님들이 마음에 꼭 새겼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인생이란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강한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나아가는 멋진 후배님이 됐으면 좋겠어요.스피드 스케이팅
스피드 스케이팅 (speed skating)이란 얼음판 위에서 스피드 스케이트를 타고 속도를 겨루는 경기다. 400m의 길이를 가진 타원형의 링크에서 두 명의 선수가 교대로 속도를 겨루는 경기를 스피드 스케이팅이라고 부른다. 이에 비해 111.12m의 링크를 여러 선수가 한꺼번에 출발하여 순위를 겨루는 경기를 쇼트트랙이라고 한다. 스피드 스케이팅은 대한민국에서 전통을 자랑하는 동계 스포츠 종목이다. 특히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을 기점으로 스피드 스케이팅의 세계최강국으로 떠올랐다.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가 되려면 아이스링크에서 강습을 받으면서 기초 기술부터 배우고 차후 선수로 등록을 해야 한다. 선수 등록은 학교 빙상팀에 들어가거나 빙상 단체에 등록하면 된다. 선수에게는 속도를 겨루는 경기이므로 타고난 순발력과 승부근성, 성실함 등 강인한 정신력이 요구된다. 운동량이 많아 강한 체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평소 다양한 운동으로 체력을 길러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보통 초등학교 저학년 전에 일찍 시작해 열심히 해야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 현재 국가대표선수들은 7~8살부터 운동을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 중학생 정도면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거의 드러난다. 선수생활 은퇴 후에는 대개 지도자 과정을 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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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창직자 인터뷰
- 퍼스널브랜드코치
스마트한 세상이 이끄는 창직의 블루오션
정은상| 맥아더스쿨 교장
지금 하시는 일은 주로 무엇인지요?
현재 맥아더스쿨이라는 창직스쿨에서 퍼스널 브랜딩 코치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창직을 하거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싶은 분들에게 코칭을 통해 직업을 찾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특히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을 활용한 새로운 직업분야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 저처럼 다른 분들의 새로운 시작을 코칭해주실 코치를 양성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창직은 중장년층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최근 인생2모작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100세 시대를 맞으면서 50대, 60대의 은퇴는 또다른 준비를 위한 시작이지요. 일모작으로 열심히 일하고 난 후 50대 중후반이나 60대 초에 퇴직을 하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직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찾아내서 브랜드를 만들면 80대까지도 현역으로 충분히 일할 수 있습니다. 회사이름인 ‘맥아더스쿨’도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말을 남긴 맥아더 장군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1950년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던 당시 그의 나이가 무려 70세로 지금나이 85세에 해당됩니다. 1960년 무렵 국내 남녀 평균수명이 50 대 초반이었으니 놀랍지요. 지금 중장년층인 50,60대는 맥아더장군에 비하면 청년입니다. 저도 처음부터 이런 일을 하려고 시작했던 것은 아니지만 1차 베이비부머 세대 700만명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등대지기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의 창직을 돕는 일을 시작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정말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 말 애플의 아이폰3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주변에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열심히 스마트폰과 SNS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스마트폰과 SNS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면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느낌이었지요. 그 후 여러 사람들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무료로 알려주고, 뉴스레터도 발행하고 유투브 동영상도 만들어 업로드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무료로 계속 일을 했지만 아무래도 공짜이다 보니 사람들이 그 가치와 소중함을 잘 깨닫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2013년에 맥아더스쿨을 정식으로 만들면서 유료 서비스로 은퇴자에게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코칭을 해주고 있습니다. 1주일에 한번 2시간 코칭을 3개월에 걸쳐 하면서 약간의 수강료를 받으며 지금까지 4년3개월 동안 약165명을 코칭했습니다. 별도의 커리큘럼을 두지 않고 1:1 맞춤 대화식으로 코칭을 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하십니다. 특히 정부기관이나 외부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스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여러 사람을 만나야 하는 코칭 업무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동안 외국계 은행에서 일하다 1999년 46세에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교육사업, 부동산 등 다양한 일을 경험했었던 것이 여러 사람을 만나는 코칭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또한 저 스스로 먼저 은퇴자였고 스마트기기를 활용하는 재미를 느꼈기에 다른 분들에게도 잘 설명하고 이끌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기억에 남는 중장년 창직자들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화가이면서 30년 이상 농협에서 근무하신 정병길 화가는 국내 최초의 아이패드 화가로 활동하고 있고 저에게 코칭을 받은 조항수 대표(시너지온)는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면서 따라하기만 하면 요리가 되는 모바일 요리스쿨을 설립하였습니다. 요즘 웹툰이 인기있으면서 누구나 앱을 통해 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포츠조선 헹가래 유환석 화백을 비롯한 여러 명의 만화가들이 아이패드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글로벌시대를 맞아 여행도 단순히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상품이 아닌 좀 더 다양한 상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많지요. 비용도 절감하면서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여행코칭도 필요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남기선씨, 신영 도씨 등은 저와 함께 여행자들을 위한 코칭 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분들 모두는 스마트기기를 활용하고, 시대의 변화를 잘 읽고 트랜드를 이끌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창직이 특히 중장년층에게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장년들이 일모작 퇴직 후 할 수 있는 일은 재취업, 창업 그리고 창직일 것입니다. 이 중 재취업은 상대적으로 가장 쉽긴 하지만 재취업자와 고용주 간의 미스매치가 가장 두드러져 길어야 2년을 넘지 못하고 다시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도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창업은 자본이 있으면 가능하지만 워낙 중장년 창업자가 많아 레드오션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자기자본 잠식은 물론 타인자본까지 손해를 끼치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이 세 가지 중 창직은 가장 어렵지만 백세시대에 남은 시간이 30~40년이라고 생각하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인생 이모작의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가급적 많은 자본이 필요한 것보다 소자본이나 무자본으로 할 수 있는 창직을 고려해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지요.창직을 고민 중이신 중장년층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부양할 가족이 있고 남은 인생이 많은데 마냥 여유만 부릴 순 없겠지만 우선 자기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뜻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 시작했을 때 앞이 불투명했으나 이제 돌이켜보면 그때 판단이 그릇되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혼자 고민만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스스로 이런 창직에 대한 생각에 미치지 못한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멘토를 찾거나 코치를 만나 계속 대화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는게 좋습니다. 창직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누구에게 의존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작은 일부터 스스로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 있을 때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앞으로는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제 까지 존재했던 직업에 연연하지 않고 발상을 전환하여 새로운 직업에 눈을 뜨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블루오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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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직자 인터뷰
- 소셜데이팅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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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는 일(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
‘이음 ’은 매일 낮 12시 30분, 20~30대 싱글남녀에게 하루에 한 명씩 운명의 짝을 소개해 주는 새로운 컨셉(=소셜데이팅)의 온라인데이팅 서비스입니다. 2010년 세계 최초로 ‘소셜데이팅’의 개념을 도입했으며 국내에 소셜데이팅 붐을 만들며 지금은 업계 1위로 성장했습니다. 설립 2년 만에 40쌍에 달하는 결혼 커플을 탄생시켜 주목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회원 수는 35만 명, 누적 매칭 성공 건수는 28만 쌍에 이릅니다.
사업아이템의 가치를 인정받아 실리콘밸리에서 20억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으며, 제 11회 여성창업경진대회 대상, 제6회 인터넷대상 국무총리상, KOTRA [나는 글로벌 벤처다 2012] 콘테스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음’ 등장 전까지 국내에는 대학생에서 사회 초년생(20~30대)이 신뢰를 가지고 이용할 만한 소개팅의 주도적인 브랜드가 없었습니다. 크게 결혼정보시장과 ‘일회성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음란성채팅시장으로 양극화된 상황이었죠. 특히 음란성채팅사이트 위주의 국내 온라인데이팅 서비스들은 공통적으로 ‘무제한 회원 검색, 무한정 데이트신청’을 제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들 브랜드는 개인정보의 과잉노출과 깔끔하지 못한 구성으로 여성들에게 거부감을 형성해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브랜드화에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음은 기존에 없던 하루에 한 명이라는 컨셉과 운명을 강조한 스토리텔링, 자신의 취향과 선호도를 TAG(키워드)형태로 입력하는 모바일 최적화 데이터구조, 여성에게 신뢰와 호감을 얻는 인터페이스(검색불가!), Push형 서비스(한 번만 데이터를 입력하면 유저가 할 일은 zero)와 같은 차별점을 통해 런칭할 때부터 지금까지 2년에 걸쳐 온라인데이팅 서비스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처음 어떻게 이 아이디어(일)를 생각하게 된 건가요?
- 처음부터 창업에 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NC소프트에 근무하고 있던 시절에 같은 뜻을 가진 지인 한 분을 만나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파트타임으로 서비스를 개발해주는 친구들 3명의 도움을 받아서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습니다. 그 때가 2010년 3월 무렵이었습니다.(이후 2010년 5월에 OBT 버전을 출시했습니다.) 사실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직장 입사 초기의 경험에서 어느 정도 확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다닐 때 소개팅을 정말 많이 한 편이었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직장에 들어가니까 소개팅을 시켜주겠다는 사람도, 누군가를 만날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을 텐데 왜 소개팅을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제대로 없는 거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창직 아이템의 시장성은 어떻게 파악하였나요?
- 엔씨소프트 사업팀에 근무하며 해외 서비스 동향을 살펴보던 중 온라인데이팅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또 스마트폰으로 인해 SNS가 급성장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지금이 이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적기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도전하게 됐습니다. 경험이 없었으니 무서운 줄 모르고 용기 있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남 서비스가 레드오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음란성 온라인 채팅 서비스와 결혼정보업체만 있을 뿐, 그 사이의 ‘가볍고 밝은 소개팅’에 대한 온라인 사업은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틈새시장을 개척해 블루오션에 발을 들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온라인 데이팅시장은 4조원 규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본인의 능력, 지식, 대학의 전공은 창직과 연관성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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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했는데 학창시절부터 ‘채널’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았습니다.
똑같은 사람을 상대하는데도 메일, 전화, 문자와 같이 채널이 바뀌면 대화양식이나 대화내용이 달라지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채널’을 연구하고 싶은 마음에 이를 이론적으로 공부하는 커뮤니케이션학부터 미대 미디어 프로그래밍, 정신분석학까지 과나 학점에 상관없이 다양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또한 정보문화학이라는 연합전공을 전공한 것이 지금의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게임이나 미디어아트를 만드는 데 컴퓨터 공학과 친구들이 개발하고 디자인과 친구들이 디자인하고 저는 기획을 맡았습니다. 이때 새로운 채널에 대한 호기심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음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새로운 채널이라는 측면에서 제가 가진 호기심과 맞닿아 있었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이음’으로 연결된 것 같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 초창기에는 같이 사업을 시작한 친구들끼리 사비를 털어서 진행하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엔젤투자자들을 구한 덕분에 그 이후로는 자금 압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초기 모델을 시연하고 몇 천만 원 정도의 자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그 후 2010년 여성창업경진대회 대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언론에도 많이 소개가 되었고 1,000만원이라는 창업자금도 지원받게 되어서 수월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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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
퇴사 이후 서울대 동문 친구들과 함께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회사 사무실을 임대해 사업을 시작했었습니다. 책상 2개, 컴퓨터 2대로 시작한 사업이었습니다. 처음엔 저를 포함해 3~4명 정도가 학원 사무실 일부를 빌려 비는 시간에 모여서 일했습니다. 모바일 환경에서 각자에게 맞는 상대를 찾을 수 있는 로직을 만들고 프로그램화 하는 과정에서 두 번의 고비가 있었습니다.
시범서비스가 끝나고 유료화를 해야 할 시점인데 주변에서 앞서 프리챌 등 유료화를 시도했다가 주저앉은 예를 들면서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각자 주머니를 털어 일하는데 한계가 왔기 때문에 동시에 투자자도 물색해야 했습니다. 금융가를 돌면서 여러 차례 미팅했고, 한번 실패할 때마다 그들이 지적했던 것, 궁금해 했던 점들을 보강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초기 창업자금은 엔씨소프트를 다니기 전 벤처인들의 모임에서 만난 고영하 ‘고벤처’ 대표의 주선을 통해 9,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출발했고 사업 중간 중간에 증자를 했습니다.
서비스적으로는 이음이라는 서비스에 대한 구상과 성공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프로그램 개발과 데이터 관리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초기 개발자들과 의견 조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사이트 론칭 시기가 두 달 넘게 미뤄지기도 했습니다. 서비스를 앞두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출범 날짜를 받았던 게 실수였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경험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개발 뿐 아니라 경영, 마케팅, 인사 등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더 공부했습니다. - 창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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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 회원가입 절차는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음신국에 입국할 수 없습니다. 우선 자신의 기본정보 입력은 필수이고 이어 이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프로필 작성입니다. 필수 키워드는 성격/캐릭터, 취미, 외모, Place, I Like, I Have, I Want 등 7개, 선택 키워드는 출신학교와 직업 2가지입니다.
여기에 회원 검색 자체가 불가능하고 운영자가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푸시형 서비스라는 점도 믿음을 줍니다. 운영자가 하루에 한 명씩 매칭해주는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의 정보를 이용자가 직접 확인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정보가 함부로 공개되지 않는 점이 온라인 데이팅의 위험성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개인 신상이 함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에 기존의 온라인 만남보다 믿을 만합니다. 또 가입 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가벼운 만남보다 자신의 이상형을 만날 확률도 높아 회원들이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이음은 현재 40만 명의 회원이 등록되었고 월 매출은 약 2억 정도입니다 아직 '성공'이라는 마침표를 찍기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적은 수준은 아닙니다. 이 수준에 오르기까지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 이처럼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과 목표를 잊지 않고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만들어진 게 바로 이음입니다. 그만큼 이음에 대한 기대도 높습니다. 현재 이음의 직원 수는 40명입니다. 정직원 2명, 파트타임 3명으로 다른 회사의 사무실 한편에 책상 몇 개를 빌려서 시작했던 것에 비하면 덩치가 많이 커졌습니다. 회원 수 100만 명 정도가 되면 이제 한 단계 뛰어 넘었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음소시어스의 최종 목표가 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장 잘 연결해주는 회사가 되는 것인 만큼 한 단계 성공했다고 여기는 시점은 100만 명을 넘어 섰을 때일 듯합니다.- 창작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 초창기에는 같이 사업을 시작한 친구들끼리 사비를 털어서 진행하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엔젤투자자들을 구한 덕분에 그 이후로는 자금 압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초기 모델을 시연하고 몇 천 만원정도의 자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그 후 2010년 11월말에 정식 런칭을 했는데 런칭 1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는 성과를 냈습니다. 그 덕분에 실리콘밸리에서 20억 이상의 투자금도 유치했습니다.
투자자금 유치의 노하우는 특별히 없습니다. 현재의 수치를 잘 관리하고 검증 받아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비전이나 경영진의 의지를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이런 부분들을 주시하고 그 속에서 인사이트를 찾아 개선하고 비전을 세우는 것에 주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직 과정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 창업 초기 개발자들과 의견 조율을 제대로 못해 사이트 런칭 시기가 두 달 넘게 미뤄진 적이 있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어떤 서비스를 할 때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계산을 못하고 무조건 출범 날짜를 못 박아 뒀던 것이 실수였습니다. 그 때 이후로 개발뿐만 아니라 경영, 마케팅, 인사 등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더 공부하게 됐습니다. 투자를 유치하려면 사업 현황과 관련된 수치를 잘 관리하고 검증 받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비전이나 경영진의 의지를 증명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그래서 항상 이런 부분들을 언제나 주시할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인사이트를 찾아 개선하고 비전을 세우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창직 과정에서 제3기관, 인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인물, 어떤 기관, 어떤 내용인가요?
- 초기에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우수 중소기업에 주는 ‘벤처투자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또 여성창업 경진대회에 수상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이 연락을 해왔고 이를 통해 수월하게 기관투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의 약점(경험)을 보완해주는 것은 풍부한 경험을 가진 주주 및 고문진입니다.
고영하 고벤처 회장이 주주이자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고벤처포럼은 10여명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한 회에 300명씩 참석하는 대규모 모임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창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고벤처포럼을 많이 찾고 있으며 고벤처포럼이 창업 붐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스타트업 기업들에겐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정보, 네트워크 등이 절실한데요, 이런 목마름을 채워주는 곳이 바로 고벤처포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음 역시 고벤처로부터 단순히 금전적인 투자만 받은 것이 아니었고 인력 소개에서부터 사무실 및 관련업체 담당자 소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있는 좋은 분들과의 네트워크 및 정보를 지원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창업 초기에 회사를 꾸려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창직인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확실히 예전보다 벤처회사를 시작하기 좋은 환경인 건 맞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작하는데, 결국은 끈기인 것 같아요. 어떤 서비스가 출시하자마자 성공할 확률은 적습니다. 그래서 끈기가 제일 중요할 것 같습니다. 열정은 창업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고 그 열정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끈기있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 롤모델이 있나요?
- 물리학자 리처드파인만과 버진인터랙티브의 리처드브랜슨을 존경합니다.
-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 창직 전선에 들어선 저에게 ‘안락함’이라는 단어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입니다. 안정된 서비스를 만들어 내기 위한 사업기획은 물론, 이음만의 문화를 담은 스토리텔링, 서비스를 온라인상에서 구현해내는 유능한 개발자를 찾아 개발자와 함께 밤을 새워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물론,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까지 어느 것 하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부분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만족감에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용기와 열정을 채워가고 있죠. 저는 문화, 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음의 성공적인 경영을 통해 현장경험을 쌓아 언젠가는 우리나라 문화, 예술분야의 저변을 확대하고 성장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 꿈은 문화예술분야 사업가로 혹은, 문화, 예술의 정책을 관장하는 수장이 되어 실현시켜낼지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건 제가 이뤄내고자 하는 목표는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일상의 삶 속에 예술의 향기를 향유하며 행복하게 사는 삶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
- 물론 창직은 고되고 힘듭니다. 대신 그 외에 떨어지는 가치들이 엄청나게 많지요. 주말까지 일 생각을 해야 할 정도로 바쁘지만, 일반 회사를 다닐 때보다 체감 노동은 오히려 적습니다. 자기가 주체가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무실 분위기를 내 뜻대로 활기차게 가져갈 수 있는 그런 행위는 ‘그 자체로 일에 대한 보상’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그만큼 크게 성장하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딱 한 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꾸준할 것’입니다. 열정과 톡톡 튀는 사고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20대의 매력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은 20대에게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를 지속적으로 상기하면서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직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끈기’를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20대는 그 어떤 시기보다 열정과 패기로 뭉쳐있는 나이이고, 그것을 자산으로 창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열정에 쉽게 지치지 않고 일을 밀고 나가는 ‘끈기 있는 태도’까지 가지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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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성공기
- 아이디어컨설턴트
박성연 | 크리베이트 파트너스 대표
현재 하고 있는 일·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저는 현재 창의(Create)와 혁신(Innovate)을 융합한 크리베이트(Crevate)라는 아이디어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이디어 컨설팅은 크리베이트가 새로이 창안한 개념으로 해외에서는 이노베이션 컨설팅, 크리에이티브 컨설팅이라고도 합니다. 아이디어 컨설팅은 서비스·제품 등에 대한 아이디어를 만들고, 이를 컨셉으로 개발해 나가는 일을 전문으로 합니다. 또한 아이디어 컨설팅을하면서 쌓인 노하우와 개발한 아이디어 방법론을 기업 및 대학 등에서 강의하면서 이를 직접 실무에 적용 가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이전에도 아이디어 컨설팅업무를 하셨나요?
서울대학교 소비자학과에서 공부하고 인터파크, 삼성전자 등의 기업에서 일했습니다. 삼성전자에서 근무할 당시 새로운 UX 아이디어를 도출해 특허화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아이데이션 방법론과 아이디어 도출 방법에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 외국 이노베이션 컨설팅 기업과 함께 일을 하는 기회가 생겼고, 이때부터 구체적으로 아이디어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아직 국내에는 낯선 직업인데 시작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2007년 크리베이트를 처음 시작할 당시 고민이 많았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점차 스페셜리스트가 돼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는데, 저의 관심사는 오히려 더 넓어졌었거든요. 이 관심들을 펼칠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아이디어와 같은 혁신 컨설팅 회사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기존 방식과 다르게 접근하는 것이 너무나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심이 필수라는 것에 더욱 큰 매력을 느꼈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러던 중 삼성전자에서 근무할 당시 외국 이노베이션 컨설팅 기업과 실제 함께 일을 할 기회가 생겼고 그들이 일하는 방식을 보며, 아이디어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그래도 아이디어를 실제 사업화한다는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처음 아이디어 컨설팅이라는 일을 계획했을 가장 어려웠던 점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디어 컨설팅이라는 개념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개념을 모르는 사람은 모르기 때문에 일을 맡기지 않을 것이고, 아이디어 컨설팅에 대해 알고 있는 대기업들 또한 이미 유명 외국계 회사와 손잡고 있는데, 굳이 이름도 생소한 작은 회사에게 일을 맡길 리 만무하다는 부정적인 의견들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개척하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해외와 달리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에 비용을 지불한 사례가 없는 국내에서는 특히 존재하기 어려운 시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단한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 보다는 ‘아이디어 컨설팅’이라는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작은 일부터 실행에 옮겼습니다. 해외의 혁신 사례를 수집하고 블로그에 소개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놀랍게도 블로그를 통해 첫 프로젝트 문의가 들어왔고, 첫 프로젝트를 계기로 크리베이트는 아이디어 컨설팅이라는 새로운 영역에서 일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가는 프런티어로서 어려움은 무척 많았지만, 먼저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의 모든 것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난관을 만났다면,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부터 바로 실행해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창직을 한다고 할 때 주변분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창직을 준비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회사를 나오면 춥다는 현실적인 얘기부터 용기가 되는 응원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죠. 창직을 준비할 당시 사무실을 구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는데 먼저 창업을 하셨던 지인이 제 이야기를 듣고 본인 사무실에 책상 하나를 빌려 주셨어요. 그게 본격적인 창직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창직 준비 과정에서 특별히 주의할 점이나 알아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창직은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일입니다. 결국 기존에 없던 새로운 영역을 발굴해야 하기 때문에 새롭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막상 창직 아이템을 찾으려 해도, 기존에 알고 있던 몇몇 직업 이외에 새로운 것을 생각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빨리 새로운 것을 생각해내야 한다는 조급함을 버리고 자신에게 집중할 때 자신만의 전문성을 발견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습니다. 시장의 트렌드도 마켓의 사이즈도 중요하지만, 창직은 외부가 아닌 자신을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창직이라는 것 자체가 기존에 없는 개념을 만들고 선점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의 개념을 명확히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때 혼자 개념을 정의하기 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개념을 구체화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유의미한 조언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개념이 명확해 지고 아이디어가 구체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