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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인 인터뷰

직업·진로 직업정보 직업인 인터뷰
'직업인 인터뷰'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입지를 다지고 널리 이름을 알린 직업인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이들의 일과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꿈을 찾고 미래를 계획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워크넷이 만난 사람들 - 벤처기업인 남민우

벤처기업인 남민우
오롯이 나의 길을 개척하는 불굴의 도전자
벤처기업인 남민우

앞서 남들이 먼저 만들어 놓은 길을 걷지 않는다. 모험정신과 도전정신을 갖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 앞을 향해 올곧게 걸어간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는 위험과 고통이 뒤따른다. 하지만 그만큼 그 길의 끝에는 보람이 두 배요, 성취감도 두 배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길을 걷는 기분일까. 과정은 지난하고 힘에 부칠지 모르나 그 길 위에서 그들은 용기를 얻고, 지혜를 배운다. 이렇게 벤처기업가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불굴의 도전자이다. .
벤처기업인이란 직업은 어떤 직업 이고 현재 하시는 일과 관련해서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사실 벤처기업가란 직업은 없습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창업가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벤처기업이란 모험적이고 최첨단 일을 하는 회사들이 많고 대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는 성장기업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1991년부터 여러 기업의 창업과 M&A로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는 벤처인이며 대한민국 No.1 네트워크 장비 기업, 다산네트웍스의 설립자 남민우 회장입니다.

더불어 현재 벤처기업협회 회장, 청년기업가정신재단 이사 활동을 통해 국내 벤처 창업 활성화, 건강한 창업과 벤처 성장 생태계 만들기, 후배 및 후학 양성에 노력하고 있습니다. 올해 6월까지는 청년 일자리 창출 등 각종 청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범한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초대 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정부부처들과 다양한 청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꿈은 무엇이었나요? 현재 이 일을 시작하신 동기와 관련하여 특별한 계기가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저는 전북 익산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특별한 꿈 보다는 성공에 대한 열망이 있었고 다양한 분야에 호기심이 많았던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열심히 공부하며 독립심과 자주성을 키울 수 있었던 청소년기를 지나 안정적 직장생활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1983년 대우자동차 입사해 엔진 시험장비 개발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6년간의 근무를 통해 대기업은 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후 장비 국산화 개발의 꿈을 안고 중소기업으로 옮겼지만 장비 수리만 하게 되었습니다. 1991년 3천만 원 은행 융자로 ‘코리 아레디시스템’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사업 순항으로 1993년 다산기연(모체) 법인 설립하였고 잘 진행이 되고 있던 중에 1997년 IMF 위기를 맞아 환율이 2배 이상 오르는 바람에 회사가 어려워져 대금 유예를 위해 방문한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인터넷 붐이 이는 것을 보고 실리콘 벨리에서 머물며 일을 배우고 국내로 돌아와,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인터넷’을 서비스하기 위한 장비 및 솔루션 개발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루 일과는 대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나요?
저는 여느 기업인과 다름없이 하루를 시작합니다. 조찬 모임이 있으면 참석하고, 9시 회사로 출근해 사내 SNS, 메일, 결재문서, 업계 동향 등을 확인하며 업무를 시작하지요. 이후 각 부서의 보고 및 회의에 참석해 회사 전반 경영을 수행합니다. 바이어 미팅과 출장도 잦은 편입니다. 또한 벤처기업협회장으로서 업계 의견 수렴, 제도 건의, 강연, 토론 등 대내외 업무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 벤처기업협회장 활동을 하고 있는데 벤처기업인으로서 20년 넘게 사업을 영위하며 현재의 위치에 이르기까지의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보다 나은 기업 환경을 조성하는데 기여하는 재능기부를 하고 있습니다. 내가 벤처기업인으로서 받은 것을 갚는다는 생각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일을 하면 이 일을 하길 잘 했다 하는 때는 언제인가요?
네트워크 기술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이 전 세계 초고속인터넷 1위 국가로 발돋움 한 것은 국산 기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외산 장비의 국산화를 주도하고, IT강국 대한민국에 기여했다는 보람과 20년 넘게 수많은 위기를 넘기며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기업과 직원들의 모습을 볼 때 성취감과 보람을 느낍니다. 현재는 다산네트웍스 자체 브랜드로 일본, 대만, 베트남 등 전 세계로 제품을 수출하며 IT강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있습니다.

다산의 토종 네트워크 기술로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또 한편으로는 벤처기업인으로서 재능기부를 통해 만나게 되는 젊은 창업가들을 보며 제가 창업했던 시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창업, 벤처성장의 토양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데도 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일을 하며 가장 힘들고 지칠 때는 언제인가요?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사업을 하는 것이 재미있고, 도전을 즐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책임져야 할 가족이 늘어난다는 책임감과 부담도 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타협하려 하고, 열정과 패기가 부족한 임직원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기도 하고 때로 내가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어 답답한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내 축구 동호회를 통해서도 직원들을 자주 만나고 교류를 하며 체력 관리도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역사’와 ‘진화론’ 등을 주제로 한 책을 통해 간접 경험에서 쌓인 생각들로 크고 작은 고민들의 해결점을 찾고 항상 열정적으로 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해 가장 남다르게 노력한 점은 무엇인가요?
영업으로 사업을 시작해 개발업무, 관리까지, 사업의 전체를 직접 경험하며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특히, 창업 이후 현재까지 네 번의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는데 1997년 IMF 외환위기, 2001년 IT 버블 붕괴, 2004년 사업지속성 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였습니다. 그 가운데도 IMF는 사업 존폐의 기로에 서게 한 가장 심각한 위기에 미국 회사에 소프트웨어 수입 대금을 달러로 송금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환율 폭등이 재앙이 되어 매출도 끊어지고 하루아침에 모든 사업이 마비 상태였었죠. 고민 끝에 미국으로 날아가 송금 유예를 요청하러간 실리콘 벨리에는 일손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거래 회사에서 일자리를 구해 12명의 엔지니어와 함께 1년 동안 일하며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습니다. IMF 위기 시, 미국까지 직접 찾아가는 적극적인 위기 극복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의 다산네트웍스는 없었을 겁니다.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일할 당시 때마침 인터넷 붐이 절정에 이르러 인터넷이 향후 시장을 지배할 것으로 판단해 시스코를 벤치마킹한 인터넷 장비 사업에 뜻을 품게 되었고 이후 한국으로 돌아와 1998년부터 소형 라우터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2000년 코스닥 상장의 원동력이 되었고, 오늘날 다산네트웍스의 주 사업이 되었습니다.
이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능력이나 자질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독립적, 자주적인 성향과 혁신에 대한 의지와 굳건한 실행력,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열정이 필요합니다. 창업은 어느 정도의 소질과 성향을 타고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산네트웍스가 2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성장하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포기하지 않고 위기와 맞서 싸우며 열정과 도전으로 위기를 극복했기 때문입니다. 항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파도의 높고 낮음을 경험할 수 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위기 없는 성공은 없고 위기와 실패는 존재하지만 실패를 딛고 일어나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도전정신과 열정이 꼭 필요할 것 같습니다.
평소 더 나은 자기의 모습을 위해 노력하는 점은 무엇이 있나요?
저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을 합니다.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져서 죽는 확률이 사람이 교통사고로 죽는 수만큼의 확률이라고 합니다. 익숙하고 재주가 있다고 초심을 잃으면 다른 사업체들과 비교하며 외형을 키우고 무리한 투자를 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곤 합니다. 그럴 때 마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노력을 합니다.
일을 통해 가장 마지막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기업인으로서 착한 재벌이 되어 많은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멘토링, 엔젤투자 및 M&A 등을 통해 후배 육성에 기여하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벤처협회장으로서는 후배 벤처기업인들을 멘토링하고 창업과 벤처 성장에 좋은 생태계 만들기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또한 한국기업가정신재단을 통해서도 한국에 기업가정신이 발현되기 좋은 교육적, 문화적 토양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바탕 위에서 보다 우수한 창업기업이 많이 나올 수 있으니까요.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남들이 가고자 하는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경쟁력과 목표를 갖추어 새로운 길을 개척하길 바랍니다. 어떤 분야에서건 본인의 열정과 잠재력을 믿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는 젊음과 용기를 주문하고 싶습니다. 깨지고 쓰러지더라도 실제로 해보는 것과 책상에 앉아서 생각만 해보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도전하다 성공하면 정말 행복한 것이고,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많은 경쟁력이 쌓이고 나만의 자산이 되니까요. 그리고 창업을 준비한다면 관련 기관의 도움과 조언을 수용하고 자신의 생각에 매몰되기보다 시장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합니다.

벤처기업가

벤처기업가가 되려면 벤처기업으로 지정을 받아 운영해야 하는데, 이때 벤처기업으로 지정받는 것이 중요하다. 벤처라는 개념은 자기자본으로 기업을 운영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개념과 달리 타인자금으로 기업을 영위하여 수익을 창출한 후 자금투자자에게 만족할만한 이익을 제공하고 자신도 수익을 얻는 엔젤성 기금을 벤처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벤처기업으로 승인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은 다음과 같다.
-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융자를 받은 후 벤처기업 승인을 받음
- 기술보증기금에서 융자를 받은 후 벤처기업 승인을 받음
-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기술을 심사받아 사업화 가능기술로 인정받음
담당부서 : 미래직업연구팀
담당자 : 이랑, 이유진(1577-7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