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직업 세계
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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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넷이 만난 사람들
- 그림책작가 정진호
워크넷이 만난 사람들을 영상으로 준비했습니다.
[유튜브에서 영상으로 만나볼까요?(클릭)]
위 영상과 아래 인터뷰 내용은 동일합니다.#1. 그림책 건축가
안녕하세요. 저는 그림책을 쓰고 그리는 그림책 작가 정진호입니다.#2. 그림을 건축하다
Q. 그림책 작가가 된 이유?
많은 분이 전공도 건축이고 꿈도 건축가였는데 왜 지금은 그림책 작가가 됐는지 굉장히 궁금해하세요. 오히려 저는 제가 건축을 전공했기 때문에 그림책 작가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 그림책이 건축의 시선이나 건축적 이야기들, 그리고 건축에서 나오는 소재들을 가지고 만들기 때문에 건축이 아니었으면 지금 만들고 있는 그림책들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3. 순간을 기록하다
Q. 작가에게 필요한 습관?
제 책 내용들도 보면 전체적으로 작고 그냥 얼핏 지나갈 법한 아주 소소한 일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는 것들을 주제로 삼고 있는데, 어릴 때부터 어떤 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다가 잘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꼭 사전에서 찾아보고 넘어가는 습관 있었거든요. 그것처럼 작은 것을 다시 한번 세심하게 살펴보는 습관이 지금 그림책 작가가 되고, 제 책의 주제들을 설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4. 독자, 작가를 만나다
Q. 기억에 남는 독자?
제 책 중에 ‘3초 다이빙’이란 책이 있어요. 한 아이가 커다란 다이빙대로 올라가면서 자기가 뭘 못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그런 내용이 책인데, 저는 그 다이빙대를 9개의 조각으로 잘라서 책에 실어 놨어요. 그래서 전체가 하나의 다이빙대라는 사실을 독자들은 인지하기 힘든 구조인데 그분은 자기 리뷰에 제가 앞쪽에 놨던 다이빙대에 조각들의 사진을 찍은 다음에 하나의 다이빙대로 만들어 오셨더라고요. ‘독자들이 내가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내 책을 읽어 내는구나’라는 걸 깨닫고, 그 안에 더 깊은 내용이나 의미, 상징들을 숨겨두고 포함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5. 외롭던 꿈, 사람을 만나다
Q. 직업적 위기와 극복과정?
직업적인 외로움이 굉장히 컸습니다. 바쁘게 계속 달려오다 보니 내 주변에 알고 있는 작가나 내가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작가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였죠. 그래서 한동안 굉장히 방황했었는데 그 방황을 그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무래도 제가 제 직업을 사랑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림책 작가로서 끝까지 살아남고 싶다.’, ‘계속 활동을 이어가고 싶다.’ 라는 생각이 ‘내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졌고, 그림책 작가들이 모이는 모임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던가 그림책 작가들이 모이는 그림책 협회를 만들 때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다른 직업적인 동료들을 얻는데 성공했죠.#6. 책, 열정이 담기다.
Q. 책 한권이 완성되기까지
저는 1년에 제가 글과 그림을 같이 작업한 창작 그림책 한 권을 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1년은 제가 구상부터 콘티부터 그림을 그리고 편집하고 출간까지 합친 기간을 말합니다. 1년에 겨우 한 권이라고 생각하면 오래 걸린다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그림책에서 1년에 한 권이면 굉장히 빠른 편입니다. 오래 걸리는 작가님들은 5,6년씩 걸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7. 그림책, 미래를 넘다
Q. 그림책 작가의 미래?
요즘 이북(e-book)이 활성화되면서 종이책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림책은 다른 책들과 조금 다르게 이북(e-book)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어떤 요소들이 들어있어요. 예를 들어, 종이 뒤에서 빛을 비추면 종이가 반투명이 되잖아요. 그래서 뒤에 있는 그림들이 앞쪽으로 비치게 되는데, 이렇게 종이의 성질을 이용해서 책을 만드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림책 작가도 끝까지 살아남지 않을까라는 희망적인 생각을 해봅니다.#8. 독자, 작가가 되다
Q.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다면?
그림책 작가가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실 그림책 독자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책을 많이 읽으며 그림책이 사용하는 스토리텔링 방식이나 어떻게 사건들을 배열하는지 같은 것들을 충분히 익히고 나면 ‘내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야 되겠다’라는 감이 생기겠죠?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가면서 읽었던 책과 자기 이야기를 결합해서 책을 만들어 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고, 제가 생각할 때 그림책 작가가 되는 정석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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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창직자 인터뷰
- 퍼스널브랜드코치
스마트한 세상이 이끄는 창직의 블루오션
정은상| 맥아더스쿨 교장
지금 하시는 일은 주로 무엇인지요?
현재 맥아더스쿨이라는 창직스쿨에서 퍼스널 브랜딩 코치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창직을 하거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싶은 분들에게 코칭을 통해 직업을 찾고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특히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등을 활용한 새로운 직업분야를 만들고 있습니다. 또 저처럼 다른 분들의 새로운 시작을 코칭해주실 코치를 양성하는 일도 하고 있습니다.창직은 중장년층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최근 인생2모작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100세 시대를 맞으면서 50대, 60대의 은퇴는 또다른 준비를 위한 시작이지요. 일모작으로 열심히 일하고 난 후 50대 중후반이나 60대 초에 퇴직을 하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아직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잠재된 능력을 찾아내서 브랜드를 만들면 80대까지도 현역으로 충분히 일할 수 있습니다. 회사이름인 ‘맥아더스쿨’도 ‘노병은 죽지 않는다’는 말을 남긴 맥아더 장군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이 1950년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던 당시 그의 나이가 무려 70세로 지금나이 85세에 해당됩니다. 1960년 무렵 국내 남녀 평균수명이 50 대 초반이었으니 놀랍지요. 지금 중장년층인 50,60대는 맥아더장군에 비하면 청년입니다. 저도 처음부터 이런 일을 하려고 시작했던 것은 아니지만 1차 베이비부머 세대 700만명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등대지기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의 창직을 돕는 일을 시작하신 계기가 있으신지요?
정말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2009년 말 애플의 아이폰3를 구입하게 되었는데 주변에 스마트폰 사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 열심히 스마트폰과 SNS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스마트폰과 SNS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면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느낌이었지요. 그 후 여러 사람들에게 스마트폰 사용법을 무료로 알려주고, 뉴스레터도 발행하고 유투브 동영상도 만들어 업로드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무료로 계속 일을 했지만 아무래도 공짜이다 보니 사람들이 그 가치와 소중함을 잘 깨닫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2013년에 맥아더스쿨을 정식으로 만들면서 유료 서비스로 은퇴자에게 스마트기기를 활용한 코칭을 해주고 있습니다. 1주일에 한번 2시간 코칭을 3개월에 걸쳐 하면서 약간의 수강료를 받으며 지금까지 4년3개월 동안 약165명을 코칭했습니다. 별도의 커리큘럼을 두지 않고 1:1 맞춤 대화식으로 코칭을 하고 있는데 많은 분들이 좋아하십니다. 특히 정부기관이나 외부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스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여러 사람을 만나야 하는 코칭 업무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동안 외국계 은행에서 일하다 1999년 46세에 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교육사업, 부동산 등 다양한 일을 경험했었던 것이 여러 사람을 만나는 코칭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또한 저 스스로 먼저 은퇴자였고 스마트기기를 활용하는 재미를 느꼈기에 다른 분들에게도 잘 설명하고 이끌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기억에 남는 중장년 창직자들이 있으시면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화가이면서 30년 이상 농협에서 근무하신 정병길 화가는 국내 최초의 아이패드 화가로 활동하고 있고 저에게 코칭을 받은 조항수 대표(시너지온)는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면서 따라하기만 하면 요리가 되는 모바일 요리스쿨을 설립하였습니다. 요즘 웹툰이 인기있으면서 누구나 앱을 통해 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포츠조선 헹가래 유환석 화백을 비롯한 여러 명의 만화가들이 아이패드 만화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글로벌시대를 맞아 여행도 단순히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상품이 아닌 좀 더 다양한 상품을 원하는 소비자들이 많지요. 비용도 절감하면서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한 여행코칭도 필요하다는 것에 착안하여 남기선씨, 신영 도씨 등은 저와 함께 여행자들을 위한 코칭 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분들 모두는 스마트기기를 활용하고, 시대의 변화를 잘 읽고 트랜드를 이끌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창직이 특히 중장년층에게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중장년들이 일모작 퇴직 후 할 수 있는 일은 재취업, 창업 그리고 창직일 것입니다. 이 중 재취업은 상대적으로 가장 쉽긴 하지만 재취업자와 고용주 간의 미스매치가 가장 두드러져 길어야 2년을 넘지 못하고 다시 취업을 해야 하는 상황도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창업은 자본이 있으면 가능하지만 워낙 중장년 창업자가 많아 레드오션에 발을 들여 놓았다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자기자본 잠식은 물론 타인자본까지 손해를 끼치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이 세 가지 중 창직은 가장 어렵지만 백세시대에 남은 시간이 30~40년이라고 생각하면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스로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인생 이모작의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가급적 많은 자본이 필요한 것보다 소자본이나 무자본으로 할 수 있는 창직을 고려해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지요.창직을 고민 중이신 중장년층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부양할 가족이 있고 남은 인생이 많은데 마냥 여유만 부릴 순 없겠지만 우선 자기 확신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면 뜻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처음 시작했을 때 앞이 불투명했으나 이제 돌이켜보면 그때 판단이 그릇되지 않았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혼자 고민만하면 발전이 없습니다. 스스로 이런 창직에 대한 생각에 미치지 못한다면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멘토를 찾거나 코치를 만나 계속 대화하면서 자신의 길을 찾는게 좋습니다. 창직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누구에게 의존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작은 일부터 스스로 해결해 보려는 노력이 있을 때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앞으로는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직업이 생겨날 것입니다. 이제 까지 존재했던 직업에 연연하지 않고 발상을 전환하여 새로운 직업에 눈을 뜨면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블루오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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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직자 인터뷰
- 소셜데이팅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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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는 일(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
‘이음 ’은 매일 낮 12시 30분, 20~30대 싱글남녀에게 하루에 한 명씩 운명의 짝을 소개해 주는 새로운 컨셉(=소셜데이팅)의 온라인데이팅 서비스입니다. 2010년 세계 최초로 ‘소셜데이팅’의 개념을 도입했으며 국내에 소셜데이팅 붐을 만들며 지금은 업계 1위로 성장했습니다. 설립 2년 만에 40쌍에 달하는 결혼 커플을 탄생시켜 주목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회원 수는 35만 명, 누적 매칭 성공 건수는 28만 쌍에 이릅니다.
사업아이템의 가치를 인정받아 실리콘밸리에서 20억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으며, 제 11회 여성창업경진대회 대상, 제6회 인터넷대상 국무총리상, KOTRA [나는 글로벌 벤처다 2012] 콘테스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음’ 등장 전까지 국내에는 대학생에서 사회 초년생(20~30대)이 신뢰를 가지고 이용할 만한 소개팅의 주도적인 브랜드가 없었습니다. 크게 결혼정보시장과 ‘일회성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음란성채팅시장으로 양극화된 상황이었죠. 특히 음란성채팅사이트 위주의 국내 온라인데이팅 서비스들은 공통적으로 ‘무제한 회원 검색, 무한정 데이트신청’을 제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들 브랜드는 개인정보의 과잉노출과 깔끔하지 못한 구성으로 여성들에게 거부감을 형성해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브랜드화에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음은 기존에 없던 하루에 한 명이라는 컨셉과 운명을 강조한 스토리텔링, 자신의 취향과 선호도를 TAG(키워드)형태로 입력하는 모바일 최적화 데이터구조, 여성에게 신뢰와 호감을 얻는 인터페이스(검색불가!), Push형 서비스(한 번만 데이터를 입력하면 유저가 할 일은 zero)와 같은 차별점을 통해 런칭할 때부터 지금까지 2년에 걸쳐 온라인데이팅 서비스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처음 어떻게 이 아이디어(일)를 생각하게 된 건가요?
- 처음부터 창업에 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NC소프트에 근무하고 있던 시절에 같은 뜻을 가진 지인 한 분을 만나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파트타임으로 서비스를 개발해주는 친구들 3명의 도움을 받아서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습니다. 그 때가 2010년 3월 무렵이었습니다.(이후 2010년 5월에 OBT 버전을 출시했습니다.) 사실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직장 입사 초기의 경험에서 어느 정도 확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다닐 때 소개팅을 정말 많이 한 편이었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직장에 들어가니까 소개팅을 시켜주겠다는 사람도, 누군가를 만날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을 텐데 왜 소개팅을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제대로 없는 거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창직 아이템의 시장성은 어떻게 파악하였나요?
- 엔씨소프트 사업팀에 근무하며 해외 서비스 동향을 살펴보던 중 온라인데이팅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또 스마트폰으로 인해 SNS가 급성장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지금이 이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적기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도전하게 됐습니다. 경험이 없었으니 무서운 줄 모르고 용기 있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남 서비스가 레드오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음란성 온라인 채팅 서비스와 결혼정보업체만 있을 뿐, 그 사이의 ‘가볍고 밝은 소개팅’에 대한 온라인 사업은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틈새시장을 개척해 블루오션에 발을 들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온라인 데이팅시장은 4조원 규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본인의 능력, 지식, 대학의 전공은 창직과 연관성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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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했는데 학창시절부터 ‘채널’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았습니다.
똑같은 사람을 상대하는데도 메일, 전화, 문자와 같이 채널이 바뀌면 대화양식이나 대화내용이 달라지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채널’을 연구하고 싶은 마음에 이를 이론적으로 공부하는 커뮤니케이션학부터 미대 미디어 프로그래밍, 정신분석학까지 과나 학점에 상관없이 다양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또한 정보문화학이라는 연합전공을 전공한 것이 지금의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게임이나 미디어아트를 만드는 데 컴퓨터 공학과 친구들이 개발하고 디자인과 친구들이 디자인하고 저는 기획을 맡았습니다. 이때 새로운 채널에 대한 호기심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음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새로운 채널이라는 측면에서 제가 가진 호기심과 맞닿아 있었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이음’으로 연결된 것 같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 초창기에는 같이 사업을 시작한 친구들끼리 사비를 털어서 진행하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엔젤투자자들을 구한 덕분에 그 이후로는 자금 압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초기 모델을 시연하고 몇 천만 원 정도의 자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그 후 2010년 여성창업경진대회 대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언론에도 많이 소개가 되었고 1,000만원이라는 창업자금도 지원받게 되어서 수월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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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
퇴사 이후 서울대 동문 친구들과 함께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회사 사무실을 임대해 사업을 시작했었습니다. 책상 2개, 컴퓨터 2대로 시작한 사업이었습니다. 처음엔 저를 포함해 3~4명 정도가 학원 사무실 일부를 빌려 비는 시간에 모여서 일했습니다. 모바일 환경에서 각자에게 맞는 상대를 찾을 수 있는 로직을 만들고 프로그램화 하는 과정에서 두 번의 고비가 있었습니다.
시범서비스가 끝나고 유료화를 해야 할 시점인데 주변에서 앞서 프리챌 등 유료화를 시도했다가 주저앉은 예를 들면서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각자 주머니를 털어 일하는데 한계가 왔기 때문에 동시에 투자자도 물색해야 했습니다. 금융가를 돌면서 여러 차례 미팅했고, 한번 실패할 때마다 그들이 지적했던 것, 궁금해 했던 점들을 보강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초기 창업자금은 엔씨소프트를 다니기 전 벤처인들의 모임에서 만난 고영하 ‘고벤처’ 대표의 주선을 통해 9,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출발했고 사업 중간 중간에 증자를 했습니다.
서비스적으로는 이음이라는 서비스에 대한 구상과 성공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프로그램 개발과 데이터 관리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초기 개발자들과 의견 조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사이트 론칭 시기가 두 달 넘게 미뤄지기도 했습니다. 서비스를 앞두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출범 날짜를 받았던 게 실수였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경험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개발 뿐 아니라 경영, 마케팅, 인사 등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더 공부했습니다. - 창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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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 회원가입 절차는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음신국에 입국할 수 없습니다. 우선 자신의 기본정보 입력은 필수이고 이어 이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프로필 작성입니다. 필수 키워드는 성격/캐릭터, 취미, 외모, Place, I Like, I Have, I Want 등 7개, 선택 키워드는 출신학교와 직업 2가지입니다.
여기에 회원 검색 자체가 불가능하고 운영자가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푸시형 서비스라는 점도 믿음을 줍니다. 운영자가 하루에 한 명씩 매칭해주는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의 정보를 이용자가 직접 확인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정보가 함부로 공개되지 않는 점이 온라인 데이팅의 위험성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개인 신상이 함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에 기존의 온라인 만남보다 믿을 만합니다. 또 가입 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가벼운 만남보다 자신의 이상형을 만날 확률도 높아 회원들이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이음은 현재 40만 명의 회원이 등록되었고 월 매출은 약 2억 정도입니다 아직 '성공'이라는 마침표를 찍기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적은 수준은 아닙니다. 이 수준에 오르기까지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 이처럼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과 목표를 잊지 않고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만들어진 게 바로 이음입니다. 그만큼 이음에 대한 기대도 높습니다. 현재 이음의 직원 수는 40명입니다. 정직원 2명, 파트타임 3명으로 다른 회사의 사무실 한편에 책상 몇 개를 빌려서 시작했던 것에 비하면 덩치가 많이 커졌습니다. 회원 수 100만 명 정도가 되면 이제 한 단계 뛰어 넘었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음소시어스의 최종 목표가 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장 잘 연결해주는 회사가 되는 것인 만큼 한 단계 성공했다고 여기는 시점은 100만 명을 넘어 섰을 때일 듯합니다.- 창작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 초창기에는 같이 사업을 시작한 친구들끼리 사비를 털어서 진행하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엔젤투자자들을 구한 덕분에 그 이후로는 자금 압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초기 모델을 시연하고 몇 천 만원정도의 자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그 후 2010년 11월말에 정식 런칭을 했는데 런칭 1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는 성과를 냈습니다. 그 덕분에 실리콘밸리에서 20억 이상의 투자금도 유치했습니다.
투자자금 유치의 노하우는 특별히 없습니다. 현재의 수치를 잘 관리하고 검증 받아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비전이나 경영진의 의지를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이런 부분들을 주시하고 그 속에서 인사이트를 찾아 개선하고 비전을 세우는 것에 주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직 과정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 창업 초기 개발자들과 의견 조율을 제대로 못해 사이트 런칭 시기가 두 달 넘게 미뤄진 적이 있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어떤 서비스를 할 때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계산을 못하고 무조건 출범 날짜를 못 박아 뒀던 것이 실수였습니다. 그 때 이후로 개발뿐만 아니라 경영, 마케팅, 인사 등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더 공부하게 됐습니다. 투자를 유치하려면 사업 현황과 관련된 수치를 잘 관리하고 검증 받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비전이나 경영진의 의지를 증명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그래서 항상 이런 부분들을 언제나 주시할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인사이트를 찾아 개선하고 비전을 세우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창직 과정에서 제3기관, 인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인물, 어떤 기관, 어떤 내용인가요?
- 초기에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우수 중소기업에 주는 ‘벤처투자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또 여성창업 경진대회에 수상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이 연락을 해왔고 이를 통해 수월하게 기관투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의 약점(경험)을 보완해주는 것은 풍부한 경험을 가진 주주 및 고문진입니다.
고영하 고벤처 회장이 주주이자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고벤처포럼은 10여명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한 회에 300명씩 참석하는 대규모 모임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창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고벤처포럼을 많이 찾고 있으며 고벤처포럼이 창업 붐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스타트업 기업들에겐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정보, 네트워크 등이 절실한데요, 이런 목마름을 채워주는 곳이 바로 고벤처포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음 역시 고벤처로부터 단순히 금전적인 투자만 받은 것이 아니었고 인력 소개에서부터 사무실 및 관련업체 담당자 소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있는 좋은 분들과의 네트워크 및 정보를 지원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창업 초기에 회사를 꾸려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창직인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확실히 예전보다 벤처회사를 시작하기 좋은 환경인 건 맞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작하는데, 결국은 끈기인 것 같아요. 어떤 서비스가 출시하자마자 성공할 확률은 적습니다. 그래서 끈기가 제일 중요할 것 같습니다. 열정은 창업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고 그 열정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끈기있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 롤모델이 있나요?
- 물리학자 리처드파인만과 버진인터랙티브의 리처드브랜슨을 존경합니다.
-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 창직 전선에 들어선 저에게 ‘안락함’이라는 단어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입니다. 안정된 서비스를 만들어 내기 위한 사업기획은 물론, 이음만의 문화를 담은 스토리텔링, 서비스를 온라인상에서 구현해내는 유능한 개발자를 찾아 개발자와 함께 밤을 새워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물론,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까지 어느 것 하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부분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만족감에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용기와 열정을 채워가고 있죠. 저는 문화, 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음의 성공적인 경영을 통해 현장경험을 쌓아 언젠가는 우리나라 문화, 예술분야의 저변을 확대하고 성장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 꿈은 문화예술분야 사업가로 혹은, 문화, 예술의 정책을 관장하는 수장이 되어 실현시켜낼지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건 제가 이뤄내고자 하는 목표는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일상의 삶 속에 예술의 향기를 향유하며 행복하게 사는 삶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
- 물론 창직은 고되고 힘듭니다. 대신 그 외에 떨어지는 가치들이 엄청나게 많지요. 주말까지 일 생각을 해야 할 정도로 바쁘지만, 일반 회사를 다닐 때보다 체감 노동은 오히려 적습니다. 자기가 주체가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무실 분위기를 내 뜻대로 활기차게 가져갈 수 있는 그런 행위는 ‘그 자체로 일에 대한 보상’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그만큼 크게 성장하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딱 한 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꾸준할 것’입니다. 열정과 톡톡 튀는 사고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20대의 매력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은 20대에게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를 지속적으로 상기하면서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직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끈기’를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20대는 그 어떤 시기보다 열정과 패기로 뭉쳐있는 나이이고, 그것을 자산으로 창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열정에 쉽게 지치지 않고 일을 밀고 나가는 ‘끈기 있는 태도’까지 가지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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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성공기
- 원페이퍼북작가
송조은 | 온리원그룹 대표
지금 하시는 일을 소개해 주세요.
원페이지북이란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책의 내용을 핵심과 구성 중심으로 원페이지로 요약한 교과서형 요약본을 말하는데 작품배경(저자생애, 저자주장, 저술의도,저술목적)과 내용(장별제목과 주제 등으로 요약), 서평 등으로 구성되어, 잠재적 독자의 호기심을 이끌어냅니다. 국내도서뿐만 아니라 해외도서 번역본, 해외도서 등 다양한 종류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원페이지 요약 능력이 있는 사람을 모집하여 일하는데, 일정 교육을 제공하여 요약기술을 훈련시키고 선발하기도 합니다. 국내도서 중 한 권을 골라 원페이지북 요약 포맷에 맞추어 작성하여 제출하고, 이를 테스트하여 3회 정도 수정보완의 기회를 주어 합격자를 선발하고 있습니다.
해당 원페이지북의 판매는 수수료 형태와 발행비를 지급받는 시스템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원페이지북시스템을 문화 콘텐츠 플랫폼으로 전환하기 위해 사이트 개편 작업 중입니다.
완성된 원페이지북은 사이트 및 앱을 통해 유통되며 콘텐츠에 따라 무료와 유료로 운영할 예정입니다. 현재는 원페이지북 확장을 위해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사업모델은 원페이지북을 도서관, 기업, 대학, 관공서 등과 같은 기관에 판매하는 ‘B2B 판매’를 중심으로 하고 있으며, 독자의 다양한 구독욕구에 따라 관련기관과 제휴하여 판매하기도 합니다. 앞으로 책 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미술, 음악 등 다양한 컨텐츠로 확장하여 원페이지 컨텐츠의 플랫폼이 되도록 진행할 예정입니다.처음 창직 아이디어를 생각하신 계시가 있으신지요?
이 아이디어는 학생들의 독서력을 계발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입니다. 위대한 인물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독서가 인간의 내적 성장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98년 인재양성 대안학교인 ‘꿈의 학교’를 설립하는 동안 풍부한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었고, 이때 인재양성이 전략적 독서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꿈의 학교’에서 교장으로 있는 동안 인재들의 독서전략을 집중하여 연구하였고 이를 통해 독서목적, 교재종류, 읽기방법, 정리방법, 기억방법, 표현방법 등을 통해 위대한 인재가 태어남을 알게 되었지요. 특히, 독서를 하면서 해당 정보를 요약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정보를 요약할 수 있는 능력을 개발하기 위해 요약포맷과 요약기술을 개발하였습니다.그래도 창직으로 시장성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았을텐데요?
원페이지북이 교양정보 습득의 통로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고 있음을 알리고 사업화하게 되었습니다. 정보화 시대를 맞아 쏟아지는 정보는 모든 책을 읽을 수 있는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기도 하니까요. 이 과정에서 어떤 책을 읽느냐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트렌드를 아는 것과 읽지 못할 수많은 책의 핵심 정보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입니다.
처음 원페이지북을 카페에 올리고 메일로 발송하기 시작한 다음날부터 수많은 댓글들이 달리는 것을 보고 많은 사람의 높은 관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댓글을 통해 원페이지북이 독서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사람들이 원페이지북을 보고 책을 구입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작위적인 서평에 비해 원페이지북은 핵심만을 요약한 내용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도서구입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2011년 7월, (주)OPBKorea를 설립하였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시장성이 있겠다는 판단이 섰고, 그 믿음에는 사람들의 댓글이 큰 힘으로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핵심을 파악하려 했던 것이 나름대로의 창직에서 자리매김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 같습니다. 초기 원페이지북을 만드는 요약기술을 가르쳐 달라는 강의가 급증하면서 1년에 500회 이상의 중대형 강의를 전국에서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결국 11년 7월에 (주)TriKEY교육으로 발전하게 되고 3개월 남짓 지나자 YTN, 교보문고, 한겨레신문 등 여러 기관에서 사업제휴, 요약기술 교육 등의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외 가나-한국재단이 원페이지북을 아프리카 국민들에게 교재로 공급하겠다고 요청하여 계약을 체결하였고, 현재 조선일보, 부산일보, 한국경제신문과 제휴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창직에 도전하면서 두려움은 없었나요?
어떤 상품이라도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원페이지북이 정말 시대적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 때 두려움이 일더군요. 이 때 원페이지북을 읽는 사람들의 피드백은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나는 원페이지북을 발행하기 시작할 때부터 현재까지 구독자의 피드백을 매일 확인하고 있는데 의심에 빠지고 두려움이 들 때 이들의 피드백은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줍니다.
또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요약기술을 세부적으로 공급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이 발견되었을 때 스스로 두려움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이때도 여전히 강의를 들은 사람들의 피드백이 거침없이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수익 부족에 대한 두려움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모든 일의 결과는 수익으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이는 창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익 없는 직업이란 절대로 지속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수익이 지속적으로 나지 않는다면 누구나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초기에 이런 상태로 지내면서 두려움을 갖게 되었지만 이 가능성에 대한 신뢰가 투자계획서를 만들게 하였습니다. 사업계획서를 가지고 투자 설명회를 하고 1주일 만에 목표치인 1억을 투자받았는데 결국 이 사업의 가능성을 투자수입으로 입증하게 되었습니다.책을 유난히 좋아해서 가능했던 창직이었을까요?
저의 최종학력은 고졸입니다. 고졸의 열등의식을 나름대로 극복하기 위해 책을 읽다보니 인류의 대선배들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유산이 모여서 나의 삶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원페이지북에서 종합되는 큰 자산이지요.
19세 전후로 우연히 1천여 권의 고전을 읽게 되었는데 3년 만에 읽게 된 1천 권의 고전은 나의 가치를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어린나이지만 정의, 사랑, 평화라는 인류의 고유 가치를 배우게 되었고 인류평화는 결국 인간에 의해 이루어지며, 인간의 변화가 평화를 이끈다고 보았습니다. 인간의 변화는 결국 교육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변화된 인간 중에서 인격과 실력과 비전이 통합된 사람에 의해 인류는 더 나아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탁월한 문명이란 결국 기술의 발전을 의미하고 인간의 변화도 학습기술에 의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그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지식을 습득하게 하고 나아가 그 지식을 구현하는 기술과 도구를 얻게 하는 동력입니다. 저의 경우 이 모든 것들이 모여서 경험을 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책을 많이 읽고 책속에서 많은 교훈을 얻었던 것도 책과 관련한 일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겠지만, 책을 단순히 읽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책들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잘 통찰하려고 했던 것이 창직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아이디어를 사업으로 구체화시킨 과정을 알려주세요.
책읽기를 좋아하고 학생들에게 책읽기를 가르치던 중 정보를 재화로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책을 읽으면서 핵심을 파악하고 그 핵심을 정리하여 구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보를 재화로 만드는 것임을 알게 되었지요. 이렇게 해서 원페이지북이라는 아이디어가 태어났고 원페이지북이 가지고 있는 상품성을 발견하고 이를 확산하기 위해서 사이트 개발과 충분한 원페이지북의 생산, 그리고 홍보전략을 세웠습니다. 사이트는 우선 카페를 활용했고, 대학생들 5명을 선발하여 매주 1권씩을 생산하도록 했습니다. 홍보는 메일링시스템을 이용했구요.
초기에 원페이지북은 수익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원페이지 요약기술을 가르치는 것을 기본 수익원으로 삼았습니다. 다행히 요약기술은 순식간에 학교와 기업에 인정을 받았는데 이는 요약이 워낙 공부에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해외에서 출간되어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책을 원페이지북으로 만드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투자를 받기로 했습니다. 결국 해외 원페이지북 사업을 현실화하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투자설명회를 진행하였는데 다행히 사업설명회 1주일 만에 투자자가 나타났고 2011년 7월에 1억 정도의 투자를 받아서 (주)OPBKorea와 (주)TriKEY교육을 설립했습니다. 이와 발맞춰 문광부에서 (사)국민독서인재개발원을 승인함에 따라서 그룹차원으로 발전하게 되었구요. 법적 공신력을 갖춘 다음부터 원페이지북은 단 1년 만에 국내 1위 기업체들과 제휴를 했습니다. 그리고 요약기술은 대학원 석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는 과정을 개설하였고, 나아가 대학에서는 교양과정까지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이 요약기술의 원리인 3KEY인지기술을 교육하는 교육회사와 원페이지북을 발행하는 출판사와 유통하는 회사를 통합하여 온리원그룹으로 개편했습니다.창직 준비 과정에서 가장 큰 고비는 무엇이었는지요?
그동안 배우고 익힌 학습기술, 학습시스템, 그리고 운영경험들은 생존을 만들어준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창직을 위한 자금마련이 큰 어려움 중의 하나였습니다. 자금이 없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투자할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므로 자금이 생성되기까지 자신의 전문성을 개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가장 힘든 점은 가장 중요한 부분의 역량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바로 창직을 위한 전문성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자금이 부족하다보면 실력 있는 인재를 데리고 있기도 힘들어지고 회사의 규모화도 어려울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결국 어지간한 일들은 스스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기업운영에 필요한 전반적인 부분들을 일단 깊이가 부족하더라도 모두 배우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전문성이 부족한 인력들에게 공동목표를 제공하고 수익의 기회를 나누는 것으로 하여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우리 회사의 기술과 원페이지북이 인정받아 법인으로 승인받았는데 마치 국가가 나서서 우리회사가 하는 일에 손을 들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창직 과정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사이트 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개발업체를 잘못 선정하여 결국 5개월을 소비하면서도 결과를 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사이트 개발업체를 바꾸었지만 계약금 400만원은 날리게 되었지요. 뼈아픈 기억이지만 오래 남을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원페이지북’에서 배운 분 중에 한 분이 ‘한페이지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기도 하고 또 한 분은 사이버 대학에서 원페이지북을 활용하여 과정을 개설하였습니다. 이외에도 많은 분들이 원페이지북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하게 활용하고 있습니다.롤모델이 있나요?
한 사람의 롤모델보다 수백 명의 모델들의 특성을 분류하고 종합하여 롤 모델을 만드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성공한 경영자 한 사람보다 성공한 수백 명의 사람들을 연구한 교수의 말을 듣는 것이 더 낫다고도 하고요. 한 사람의 뛰어난 경영자를 둘러싼 환경요소와 경영자가 가진 역량과의 관계에서 무엇이 성공을 만들었는지를 분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공한 경영자들을 연구한 교수의 연구결과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주니까요.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삶은 곧 재화이다. 자신의 활동이 항상 재화가 될 수 있다면 낭비 없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자신을 능력자로 만들어야 합니다. 능력이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을 말하는데 자신이 학습한 문제만 해결하면 이것은 진정한 능력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능력은 어떤 문제에 부딪혀도 스스로 학습한 후에 그 문제의 핵심, 원인의 핵심, 대안의 핵심들을 찾아낸 후에 그 프로세스를 개발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서 해결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낭비 없는 인생이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