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직업 세계
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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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넷이 만난 사람들
- 크리에이티브디렉터 유영규
- 단순함의 미학! 행동하는 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디렉터 유영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유영규. 그는 지금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제품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줄줄이 발표하고 있는 홀로렌즈, 엑스박스 등의 최첨단 제품들도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제주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제주 출신의 디자이너인 그가 한국을 넘어 세계 디자이너들과 당당하게 경쟁하고 있다.
20년 전 삼성전자의 일명 ‘깍두기폰’이라는 모바일폰이 있었다. 디자이너 유영규의 첫 번째 디자인 제품으로, 삼성 모바일폰 역사상 처음으로 알루미늄 소재가 적용되었다. 그는 이 제품에 단순함의 미학이라는 그의 디자인 철학을 담았다. 당시 경제가 좋지 않았던 IMF 시기인데다가 디자인이 너무 단순하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제품은 불필요한 장식을 최소화한 삼성만의 절제미로 기존 장년층의 선호브랜드였던 ‘애니콜’을 젊은 층으로 확산시켰다. 또한 단순한 디자인이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매우 중요한 계기와 확신을 갖게 해 주었다. 이후부터 소비자접점에서 제품, 전시까지 감성적이면서 일관성 있는 경험디자인을 접목시키면서 결정권자들이 쉽게 선택하지 않았던 단순한 디자인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그로인해 좀 더 매력적이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었던 제품과 브랜드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그만의 디자인철학을 고집스럽게 유지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현실로 만들어 내는 그를 해외 동료디자이너들은 ‘Doer’ 라고 부른다. 행동하는 디자이너, 발로 뛰는 디자이너라는 뜻이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또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유영규 디자이너는 어렸을 적부터 미적 감각이 뛰어났다. 특히 여러 가지 제품들의 디자인에 흥미가 있었지만 막상 제품 디자이너가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대학도 그래픽 전공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故)이기후 교수님의 인상적인 제품디자인들을 접하면서 산업디자인 전공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래픽을 전공하면 이렇게 멋진 제품디자인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산업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었죠.”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삼성전자의 무선사업부 디자이너로 일했지만 해외에서 더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겠다는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그는 국제무대에서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어학연수를 위해 벤쿠버로 갔다. 그리고 6개월 후, 그동안 꿈꿔왔던 나이키 본사(비버튼)에서 하루 종일 면접을 보고 최종 오퍼를 받게 되었다. “나이키라는 회사를 다닌다는 건 마치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전 세계의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모두 모여 양산품을 만들기 위해 서로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벌입니다. 그리고 TV로만 봐 왔던 유명한 운동선수들이 나이키 캠퍼스에서 테스트를 받고 이런 결과들이 디자인에 반영이 되는 게 매우 흥미로웠어요. 이후 나이키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트라이엑스 타이밍 제품디자인에 참여해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때 참여했던 특허는 아직까지 나이키의 핵심제품에 사용 중입니다.”
그는 나이키 재직 중 LG전자로부터 스카웃 제안을 받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LG 와인폰을 디자인했고, 그 후 산업디자인뿐만 아니라 더 폭넓은 분야까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아이리버로 옮겨 전체를 총괄하는 책임을 맡았다. 2년 후, ‘아이리버는 곧 디자인’이라는 공식이 생겨날 정도로 좋은 이미지가 생겨 전 세계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다양한 협업 제안도 들어왔지만, 꼭 필요한 혁신적인 기술, 엔지니어링 지원, 에코시스템의 부재로 소비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디자인을 하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고자 그는 독립 디자인 스튜디오인 ‘클라우드 앤코’를 창립했다. “클라우드 앤코는 수익보다는 가치를 실현하고 개인적으로 도전하고 싶었던 디자인과 좋아하는 브랜드들과 같이 협업 하는 스튜디오입니다. 오픈하면서 무인양품의 디자인을 시작으로 독일 아우디, 핀란드 슈퍼셀, 월트디즈니, 미국의 쿠퍼휴잇디자인 뮤지엄 등 국내에서 누구도 하지 못한 해외굴지의 기업, 해외 스타디자이너, 뮤지엄 등과의 협업과 컨설팅을 이끌어 내게 되었습니다. 특히 월트 디즈니와 협업은 최근 개봉한 스타워즈, 베이맥스등의 제품들을 우리의 철학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을 의뢰 받아서 디자인을 진행했죠. 그 성과로 글로벌 플래그쉽 스토어 디자인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해외 유명스타디자이너인 제스퍼모리슨이 참여하는 전시에 초대받아 전시를 밀라노와 일본에서 하였고, 전세계 63명의 아티스트, 디자이너, 패션, 건축가가 참여하는 전시를 뉴욕 쿠퍼휴잇 디자인뮤지엄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이 스튜디오만의 멘토링에 함께했던 엔트리 디자이너들은 지금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오퍼를 받고 글로벌기업에서 핵심디자이너로 근무 중입니다.”
디자이너로서 기술과 여러 혁신을 기반으로 한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그동안 관심이 없었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두 번째 연락이 왔다. 마침 그 즈음이 마이크로소프트가 혁신의 길로 들어설 때였다. “제가 마이크로소프트에 끌린 이유는 제 호기심을 자극했던 ‘키넥트’란 제품과 기존의 디자인과 다른 심플한 ‘메트로 UI’ 발표 때문이었습니다. 이정도면 제가 기여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이 어느 정도 형성이 된듯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운 좋게 홀로렌즈와 최신 엑스박스 디자인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엑스박스는 워낙 오랜 역사를 가진 제품이기 때문에 고유의 디자인을 버리기가 쉽지는 않았다. 제품 자체의 좋은 DNA를 이어가면서 어떻게 변화를 줄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결국 답은 게임과 라이프스타일의 조화에서 찾았다.
홀로렌즈는 세상에 한 번도 없던 제품이었기에 디자인 방향에서 많은 고민이 필요했던 프로젝트였다. 이전에 타사 제품들의 폼펙터들이 가지고 있는 세련되지 않은 형태들을 바꿀 수 없다는 선입견을 깨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는 2000년 초 잉골쉬타트 아우디 모바일 뮤지엄에서 봤던 ‘아우디 TT’의 미래적이면서 심플한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어, 인체공학적이면서도 쿨하고 멋진 디자인을 적용시켰다. 5년여에 걸쳐 수많은 전문가들과 많은 디자이너들이 함께 만들어낸 이 제품은 마이크로소프트 제품 역사상 최고의 디자인과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세상을 바꿀 제품으로 업계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작품이 발표되고 난 뒤 평가가 굉장히 좋아 기쁘고 뿌듯했다고 한다. “영광스럽게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디자이너 4인’에 선정되었으니 몸이 좀 힘들더라도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즐겁게 활동할 생각입니다.”
그는 지난 5년간 마이크로소프트와 클라우드 앤코의 일을 병행해왔다. 마이크로소프트 일을 마치고 저녁부터는 한국시간에 맞춰 클라우드앤코 일을 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그가 하고 싶은 일들을 위주로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라서 오히려 디자인에 활력이 생기기에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끌고 나갈 계획이다.
그는 무인양품의 아트디렉터였던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하라 켄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이리버에 있을 때 우연히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바쁜 스케줄 때문에 다음 미팅 전까지 얼마간의 시간동안 서로의 디자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디자인에 대한 열정에 공감하고 이후 스케줄을 취소하고 긴 시간 동안 저와 많은 이야기를 이어갔죠. 이후에는 무인양품 디자인을 의뢰해주었고, 디자인 협업으로 까지 이어졌습니다. 제가 지향하는 디자인철학이 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여러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특히 군더더기 없는 ‘엠티니스’라는 디자인철학은 이후 제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디자인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그의 철학은 ‘오래 사용해도 가치를 잃지 않고, 이유가 있는 심플한 디자인’이다. 언제부터인지 산업디자인이 지나치게 불필요한 장식들로 치장되고, 너무 트렌디한 제품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런 제품들은 대부분 쉽게 질리게 되어 그만큼 제품으로서의 생명력이 짧다. “‘이유가 있는 심플한 디자인’은 사용할수록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시장에서 계속 사랑받는 제품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는 디자인 과정에 정성을 쏟는 동시에 제품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에도 무척 공을 들인다. 특히 사람들이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작은 디테일까지도 집요하게 신경을 쓰는 건 그 디테일을 발견해 감동을 느끼는 단 몇 명의 눈 높은 소비자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동은 그 제품에 대한 관심과 소비자 충성도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동안 ‘좋은 디자인에 대한 고민’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일과 무관한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디자이너의 특권 중 하나가 일과 취미, 삶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하고 싶은 디자인이 있다면 어디를 막론하고 전 세계를 누볐고, 연봉이나 비용에 상관없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면 좋은 디자인을 위해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디자인의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행복해요.”
디자인을 본업으로 할 후배들이 프로젝트나 회사를 고를 때 돈이 아니라 본인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한다면 더 큰 결과로 보상받게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디자인의 가치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나쁜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대부분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고 이런 결과는 좋은 프로젝트를 하는데 제약이 될 수 있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디자이너로서의 수명을 단축시키게 된다고 한다. 또한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 시장을 상대해야 합니다.”면서 “실력이 뛰어난 한국의 후배 디자이너들이 많은데, 해외 진출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실력을 믿고 해외에 도전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바람도 덧붙였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이 좋은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하는 유영규 디자이너. 그가 그 동안 걸어온 길보다도 앞으로 걸어갈 길이 더욱 빛나고 값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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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창직자 인터뷰
- KFood외교관
우리의 한식을 세계인의 식탁에
윤상진(42세) | 창직 아이템 : K-Food 외교관
K-Food 외교관은 한식을 알리는 직업인가요?
이름 그대로 우리의 음식을 외국인에게 소개하는 직업입니다. 전 대학에서 호텔요리를 전공했었고 계속 조리나 제과제빵관련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베트남 아내와 결혼 후 자연스럽게 다문화가족을 많이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한국에서 적응하면서 잘 생활하는데 음식이 아주 중요한 가교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말이 잘 안통하고, 생각이 달라도 같은 음식을 먹다보면 공감대도 형성되고 정도 들잖아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와 관심분야를 접목하여 생각해 낸 아이템입니다. 한국에 있는 다문화가족이나 외국인에게 한식 요리법도 가르쳐주고, 이들이 모이는 행사에서 한국요리를 알리는 일도 하고 싶습니다. 전에도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식 요리법 강좌 같은 것을 했었는데 좀 더 저만의 아이템으로 차별화하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본인의 경험이 창직 아이템으로 발전한 경우네요.
네 그렇습니다. 전 제과제빵공장도 운영했었고, 요리 강좌도 운영했었고 음식과 관련한 여러 일을 했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창업에 줄곧 관심이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식당이나 외식업은 경쟁도 심하고, 차별화가 되지 않으면 문을 많이 닫는 업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다보니 쉽게 음식점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요리와 관련된 일을 좋아하고, 잘해서 계속 이분야 일을 했었지만 큰 만족감이 들지 않아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계속 질문하게 되더군요. 저의 경험과 관심을 녹여서 담되, 차별화된 것이 없을지 계속 고민을 하다가 창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창직관련된 세미나, 수업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서 참여했고 창직 아카데미에 참여해서도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다른 요리관련 직업과 차별화전략은 무엇인지요?
저도 계속 고민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지금 방문요리쉐프과정도 따로 배우고 있습니다. 물론 기존에 출장요리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저는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가정에 방문하거나 교육강좌를 열어서 한국요리도 알리고, 또 음식과 관련한 한국의 문화도 함께 알리고 싶습니다. 설날에 먹는 흰떡국의 의미는 무엇인지, 지역별로 김치는 어떤 특색이 있는지 등 음식과 우리 문화를 함께 알리는 스토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점이 기존의 조리사 영역과 차별화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단순히 음식조리법을 알리고, 재료손질을 가르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저는 음식과 문화를 함께 알리고 한국에 있는 다문화가족이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더 잘 이해하고 빨리 적응하도록 돕고 싶습니다.앞으로의 포부는 무엇인지요?
요리 전공도 했었고 다양한 분야의 외식업에도 종사했었지만 계속 전문성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배우려 합니다. 사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K-Food 외교관이라는 창직 아이템이 당장은 수익창출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창직을 하신 분 가운데 모든 것이 쉬웠다는 분은 안 계시더군요. 창직특강이나 수업에서 여러 분을 만났는데 모두 고생하신 경험이 다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제과제빵분야에 취업하여 일을 하면서 다문화 가족이나 외국인을 위한 스토리가 결부된 요리 아이템을 개발하고 구체화하는 일을 병행하고자 합니다.창직을 고민중인 분들께 한마디 전하신다면?
저도 이제 시작단계여서 앞으로도 많은 시행착오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일을 하면서 조금씩 새로운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구체화하는 작업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창직계획서를 적으려하니 막막하더군요. 취업이나 창업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템 개발이 어려웠습니다. 창직하신 많은 분들을 만나뵈니 본인의 경험을 살려야 성공가능성이 높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군요. 더욱이 중장년층은 기존의 경력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데는 상당한 부담과 위험이 따른다는 말씀도 계셨습니다. 본인의 업무경험, 혹은 그동안 취미나 관심사로 접해 본 경험이 있는 것들을 창직아이템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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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직자 인터뷰
- 청소년진로교육잡지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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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는 일(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
서울시교육청, 한국고용정보원과 함께 청소년진로월간잡지 MODU를 발행하고 있습니다. MODU는 청소년 진로월간잡지로서 진로정보, 학습법, 멘토링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재 서울지역 314개 모든 고등학교를 포함하여 전국 700여 개 중고등학교(주로 고등학교)에 배포하고 있으며, 9월부터 본격적으로 서울시 중학교에도 배포할 계획입니다.
잡지 발간뿐 아니라 EBSi 듀냐페이퍼, 한국고용정보원 웹진 ‘커리어엔진’,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대학의 합격생 수기를 전자책으로 출판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청소년에게 무료로 진로 및 교육 정보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청소년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진로, 꿈을 위해 살 수 있도록 선배로서 응원하고, 멘토가 되어 줌으로써 대한민국을 바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 처음 어떻게 이 아이디어(일)를 생각하게 된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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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접한 기사가 있습니다. ‘강남 학생의 꿈은 의사, 교수, 금융인, 강북 학생의 꿈은 교사와 회사원’이라는 기사로 부모님의 소득 수준에 따라 자녀의 진로 목표나 꿈까지도 달라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출신 지역과 출신 배경에 따라 꿈이 달라지는 현실이 안타까웠고, 진정으로 자신만의 진로를 찾지 못한 청소년이 가여웠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의 행복과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MODU는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재 진로/적성/꿈을 진단해 주고 정보를 제공해 주는 사설 기관들은 학생들에게 수십, 수백만 원의 수강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런 현실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모든 학생이 평등하게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단순히 진로와 꿈에 대한 콘텐츠를 무료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나아가 이를 기업의 형태로 영속할 수 있도록 하나의 탄탄한 시스템을 만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 창직 아이템의 시장성은 어떻게 파악하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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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대신, 기업들의 광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형태의 무가지 비즈니스는 이미 다년간의 사례를 통해 충분히 검증되었습니다. ‘FOCUS’, ‘메트로’, ‘대학내일’, ‘M25’와 같은 다양한 무가지들이 이미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검증받고 시장을 형성하며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고 있습니다. 구독료가 아니라 광고를 중심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무가지 비즈니스 모델은 충분히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검증받았습니다.
MODU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매체가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일차적인 사업의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또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광고할 유인이 있는 광고주로서 대학, 온오프라인 교육 회사, 참고서 및 문제집 출판사, 휴대전화와 PMP 등 전자기기, 패션업체 등 다양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시장의 규모가 크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청소년과 직접 만나고 소통하면서 청소년이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진로 정보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니즈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창직에 도전하면서 두려움은 없었나요?
- 솔직히 실패하더라도 그 경험 자체가 스스로에게 큰 성장과 교훈을 줄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창직에 도전한다거나 혹은 취업을 하더라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이 있기는 했지만 내가 잃을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 있게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 본인의 능력, 지식, 대학의 전공은 창직과 연관성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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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였고 관련해서 마케팅과 전략 등을 재미있게 공부했었습니다. 그런데 MODU는 청소년 진로잡지이자 동시에 교육 콘텐츠 개발을 목표로 하는 회사입니다. 사범대나 교육학과 전공생들이 가장 관련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창직하는 과정과 운영 자체가 경영학과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었으며 사업계획서 작성 등에서 전공 지식이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잡지, 그리고 교육 콘텐츠라는 부분에서도 비록 제가 언론정보학과나 교육학과가 아니었지만 해당 전공 출신의 친구들에게 많은 조언을 구하며 공부하고, 또한 그 친구들을 파트너로서 함께 일하면서 보완이 가능하였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 창직 후 몇 개월이 지나면서 초기에 생각했던 것만큼 성과가 나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예상과 다른 부분들이 많이 발생하였을 때입니다. 대부분 사업계획서의 예측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1년이 지나서 막상 현실로 그 결과를 받아들이게 되면 불안감과 동시에 향후에 대한 걱정을 하기 마련입니다. 저 역시 초기 예측과는 달리 회사의 성장 속도가 다르고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있는 것에 힘들기도 했었습니다.
- 그러한 난관, 고비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 가장 힘들 때 마다 버팀목이 되어 준 건‘ 꿈’과‘ 사람’입니다. 저희는 전국 모든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고 싶다는 확고한 목표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힘들어도 다시 그 목표를 되새기며 열심히 업무에 복귀했지요. 그리고 슬럼프가 있을 때마다, 고비가 올 때마다 저를 붙잡아 준 것은 저희 잡지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청소년 독자들과 함께 일하는 동료 직원들입니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창직을 하고 대표가 되어 회사를 이끌어 가더라도, 결국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회사의 상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국가 차원의 지원을 받은 사항이 있다면?
- 저희는 사회적기업진흥원과 경기복지재단(사회적기업경기재단)에서 주관하는 청년 등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되어 약 1년간 멘토링, 컨설팅 및 사업자금 일부를 지원받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기술신용보증기금으로부터 자본금 일부를 융자받았으며 현재 서울특별시교육청과의 제휴를 통해 잡지 배포 및 홍보를 효과적으로 실시하고 있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도움을 받은 정보가 있다면?
- 저는 경영학과 출신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조직 운영이나 기업 경영에 관한 지식은 풍부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쇄업, 잡지업, 교육업 등에 대한 정보는 부족하였기에 관련 도서 및 월간지를 통해 정보를 얻고 업계와 관련된 행사 및 세미나에 참석하며 정보를 얻고 네트워킹을 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창직을 하고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얻기 위해서 사회적기업진흥원 등의 웹사이트에서 정보를 얻었습니다.
- 어떤 인물, 어떤 기관?
- 삼성전자에서 수십 년간 개발 관련 부서에서 근무를 하시다가 퇴직을 하고 제조업으로 창업을 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창업교육을 듣다가 우연히 알게 되어 지금까지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데, 그 수십 년간의 노하우와 경험이 있으셨기에 제가 하는 방향에 대해서 많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항상 고민이나 문제점이 생기면 같이 고민해 주는 분을 만나게 되어 지금까지 올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 창직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면?
- 일반적인 창직자들은 사업에 관계된 법률적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법무, 세무, 노무 등의 영역의 지식은 사업을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미리 공부를 하거나, 비용을 아끼려고 하지 말고 전문가에게 필히 상담을 받는 것을 추천합니다. 사업자 등록 과정, 상표 등록 과정, 계약서 작성 및 세금 신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나중에 발생할 위협을 줄이는 길입니다. 동시에 자신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버는 길이기도 합니다.
- 창직 과정에서 꼭 알아야 할 점이 있다면?
- 첫째로는 사업 아이디어에 집중하기보다는 좋은 팀을 만나는 데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사업 아이디어는 트렌드와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수정 가능하지만 같이 일하는 파트너는 바꾸기 힘들며 기회비용도 대단히 큽니다. 무슨 일을 하느냐보다는 누구와 함께 일하느냐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둘째로는, 아이디어로만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많은 창직자들은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상품, 서비스만 있으면 저절로 돈이 벌릴 것이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탄탄한 사업모델과 수익분석이 없이는 절대로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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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 아이디어에서 창직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요한 점이 있다면 비즈니스 모델을 구체화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니즈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채우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지속시키는 것은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저희는 저희의 아이디어에 가장 어울리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잡지의 유가 판매도 저희의 고려 대상이었지만 처음에 생각했던 기회의 평등이라는 아이디어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무가지 비즈니스 모델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진로 콘텐츠와 무가지 비즈니스 모델. 두 가지 결합이 지금의 창직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창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있다면?
- 잘 몰랐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성공의 시점을 어느 시점으로 보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저희의 사업으로 누군가가 조금이라도 변화된다면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는 시장에 대해서 충분한 조사를 했지만, 실제로 겪은 사업의 현실은 달랐습니다. 이것들에 대해서 충분히 알았다면 우리는 사업을 시작할 수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적당히 몰랐지만 용감하게 실행했던 용기가 있었고, 그 덕분에 창직에까지 이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행인 것 같습니다.
- 창작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 사람들을 구하기는 하였지만 막상 회사처럼 능수능란하게 조직을 운영하는 부분에서 약간의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저희의 경우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도 많았기 때문에 더욱 시간의 효율적 사용과 업무 시간 효율성 제고가 어려웠었습니다. 몇 시간을 일할 것이며 어떻게 서로 업무 공유 및 소통할 것인지 등에서 시행착오를 꽤 겪었던 것 같습니다.
- 이를 어떻게 극복하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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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는 편집팀과 운영팀으로 나누어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또 운영팀은 다시 광고, 대외협력팀과 배포담당팀으로 나누어져 조직화되었습니다.
창업멤버들의 스케줄에 따라 유동적으로 움직이되, 하나의 보고체계를 이루어 서로의 업무를 보고했고, 여러 업무들은 부딪히면서 배워나갔습니다.
처음 MODU 창간호를 배포할 200여개의 학교에 전화하고 방문하는 일, 광고를 위해 100개가 넘는 재단과 기업들에 일일이 전화와 방문을 했던 일. 100Page의 잡지를 처음으로 만들고 편집했던 일은 한 사람의 PM 아래 조직된 팀이 업무를 분담하는 시스템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창업멤버 모두가 학생이었기에 각자의 업무 능력과 가용시간에 따라 업무를 분담하고 PM의 책임하게 업무분담이 이루어졌던 점이 저토록 많은 일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창직 과정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 창간호가 배포된 이후에 P&G에서 위스퍼를 학교에 샘플링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서울시내 여고에 학생들에게 직접 제품을 전달하고 이벤트에 참여시키는 일이었는데, 더운 여름날 일일이 박스를 날라야 했습니다. 엘리베이터조차 제대로 없던 사무실에 2만개가 넘는 위스퍼와 잡지를 나르며 땀을 흘렸던 일을 모두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프로모션과 이벤트는 대성공을 거두었고, 힘들었지만 학생들과 클라이언트, 그리고 MODU 모두가 만족했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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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과정에서 제3기관, 인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인물, 어떤 기관, 어떤 내용인가요?
- 경기복지재단의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에 선정되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업 실비 지원과 함께 사업 멘토링, 각종 강의를 통해 유무형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정부의 재원을 이용하게 되면서 여러 서류 작성 등을 실제 업무로 부딪히면서 배울 수 있었고, 재단에서 알려주는 정보들을 통해 많은 기회를 열 수 있었습니다.
- 창직 구체화 과정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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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구체화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 가능성이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에서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필요로 하는가를 확인하고, 그 니즈를 꾸준히 충족시킬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회적으로 반짝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의 창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가를 확인해야 합니다. 기존의 사업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만 진정한 의미의 ‘창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끊임없이 시장 조사를 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창직에 대한 답은 회의 테이블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
창직인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 열린 자세와 행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연하게 시장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고, 소비자의 새로운 요구를 즉각적으로 반응하여 사업을 지속적으로 영위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시장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열린 자세와 새로운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바로바로 행동으로 실행할 수 있는 행동력이 창직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 창직의 장점, 매력이 있다면?
- 창직의 가장 큰 매력은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앞장선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치,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것을 넘어서 시장 자체를 새로이 창출한다는 사실이 창직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요? 또, 창직 초창기에는 시스템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이 아주 중요합니다. 소규모에서 시작해서 점점 기업을 키워나가는 것이기 때문이죠.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내가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사실’이 즉각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창직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롤모델이 있나요?
- 영국의 버진그룹을 만든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롤 모델입니다. 처음 창직을 결심하게 된 것도 이 분의 기사를 접하고 자서전과 책을 읽으면서입니다. 자신이 가장 재미있어하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택하여 직접 회사를 운영하면서 큰 대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과정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특히 대기업이 된 이후에도 아직까지 회사 운영 원칙과 경영 스타일은 ‘재미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인데 저도 꼭 실천하고 싶은 원칙입니다.
-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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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적인 ‘NO!’를 말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절대로 ‘NO!’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필요할 때에는 ‘NO!’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NO!’는 소비자의 소리, 주변 선배나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충고, 내부 회의에서의 다른 의견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NO!’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의 가장 큰 강점은 유연하고,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그 강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의견이라거나 듣기 싫은 소리라고 하더라도 ‘NO!’라고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그 말을 곱씹어보고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소한 조언과 다른 의견이 쌓이고 싸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더욱더 강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 평소 성격은 어떤 편인가요?
- 직관적이고 감성적인 편입니다. 힘들 때는 쉬어주고 나에게 맞는 방식으로 (혼자 여행을 간다거나 음악을 듣는 등) 감성에 빠지기도 한답니다. 이러한 성격 탓에 어떠한 일을 할 때 틀에 얽매이지 않으려 하고 논리나 숫자라는 정량적 부분 외에도 느낌이라는 것을 중시하곤 합니다. 또한 재미있는 것에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완전히 몰입해버리는 성격이기도 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시하면서 사교적인 성격입니다.
-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 대한민국을 자랑스럽게 만들 수 있는 세계 최고의 기업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만든 회사로 인해 사람들이 새로운 가치를 얻을 수 있고 더 재미있고 행복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을 이루고 행복하고 재미있게 살면서 일과 생활의 밸런스를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
-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큼 즐거운 삶, 성공한 삶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슴 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 용기를 내십시오.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할 용기조차 내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십시오. 그리고 항상 열린 자세와 적극적인 행동력으로 사업에 임하십시오.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여러분이 하고 싶었던 일을 이왕 시작했다면 멋지게 성공하시길 MODU가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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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성공기
- 온라인평판관리사
한승범 | 맥신 코리아 대표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을 소개해 주시지요.
저는 현재 ‘맥신 코리아’라는 온라인 평판관리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평판관리란 기업, 개인의 온라인상의 평판을 관리, 제고하는 것으로 크게 온라인 상의 원치 않는 사진이나 글, 동영상 등의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공인이나 회사브랜드의 온라인 명성을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설정해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창직 이전에는 어떤 경력이 있으셨는지요?
2000년 부모님의 한복사업을 돕고자 독학으로 컴퓨터와 홈페이지 제작을 공부하여 한복홈페이지를 만들어드렸는데 당시 야후코리아에 검색 1위가 되면서 매출이 1억에 달했습니다. 이후 전공을 살려 대학강단에도 섰고 2006년에는 경기도 지사 선거캠프에 사이버팀장으로 활약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때 포털사이트 알고리즘의 99%를 이해했다고 호언할 정도로 포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이후 한양대에서 연구교수로 있다가 2008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온라인 마케팅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다는 자신감에서 과감히 안정적인 대학을 포기한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사업을 도와드리는 것이 1차 목표였는데 2년 만에 한복대여 1위 브랜드가 되고 19개의 지점을 두기기까지 성공시켰습니다. 당연히 돈도 많이 벌었지요. 그러나 금융위기로 인해 매출이 급감했을 때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프랜차이즈 사업실패 후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받았고 절치부심하던 차에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일이 뭔가를 심각하게 고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온라인평판관리>였습니다. 이 분야만큼은 남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있고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실력도 갖추었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사업을 시작해서 오늘의 맥신코리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그래도 ‘온라인평판관리’는 생소한 분야였을텐데요?
프랜차이즈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겪고 나서 저의 진정한 경쟁력은 무엇인가 심각한 고민을 했습니다. 한복대여 프랜차이즈 사업의 성공도 결국 ‘온라인평판관리’의 힘이었습니다.
2년 만에 싸구려 한복을 명품한복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브랜딩 작업이 대부분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것을 감안할 때 온라인을 지배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의 온라인상의 경쟁력을 적절한 용어로 규정할 수 없었는데‘온라인평판 관리’가 가장 잘 들어맞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온라인에 대한 남다른 이해도, 온라인에 대한 남다른 호기심, 그리고 통찰력이 결국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습니다.창직 아이템을 구상하면서 생긴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온라인평판관리란 창직 아이템을 결정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세상에 없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모르는 직업과 일을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가 가장 난관이었습니다. 이 일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데 누가 우리 회사에 의뢰를 합니까? 더구나 전 사업의 실패로 8억의 빚을 지고 있는 상태에서 투자는 언감생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이 주가 되는 세상에는 온라인상의 평판을 좌지우지할 수만 있다면 커다란 이익이 발생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악플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듯이 선플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온라인상의 악의적인 게시물들로 고통받고 자살도 결심하는 사람들을 막겠다는 선에 대한 의지도 있었습니다. 가장 큰 난관이었던 자금 부족과 인식의 결핍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스스로 ‘온라인평판관리’란 일과 ‘맥신코리아’를 널리 알리지 못한다면 과연 고객의 평판을 관리할 수 있을까?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즉, 스스로 알려야한다는 당위성이 있었고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온라인평판관리’ 일에 대한 이해도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상의 기업위기가 터지면서 맥신코리아가 주목 받기 시작했고 결국 약간의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습니다.다른 사람보다 먼저 아이템을 찾아‘선점’하는 것이 성공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새로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선점효과’입니다. ‘퐁퐁’처럼 브랜드를 보통명사화 시키는 것이 사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저 역시 ‘선점효과’를 위해 목숨걸고 뛰었고 오늘의 브랜드파워 1위에 오르는데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선점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은 자금부족으로 투자여력이 전혀 없었다는 점과 아무도 몰라주는 일이었습니다. 자금부족은 피눈물나는 과정을 거쳐 차츰 극복했고 온라인 평판관리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회사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온라인 평판관리’를 했습니다. 물론 운도 어느 정도 따라주었던 것 같습니다.창직 준비 과정에서 특별히 주의할 점이나 알아야 할 점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창직이란 새로운 변화가 저절로 오기도 하지만 스스로 변화를 만들기도 합니다. 또 불확실한 미래의 직업을 만들어내는 약간은 황당한 일일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미래의 직업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절대로 남들과 같이 행동하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문, 잡지, 책 등을 통해 미래의 변화를 감지하고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하지요.
창직 준비는 일반 치킨집 창업과는 다릅니다. 치킨집이야 상권 좋은 곳을 고르고, 맛있는 치킨 만드는 비법을 알면되지만 ‘창직’이란 세상에 없는 것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내야 하니까요. 제대로 창직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감수해야 하는 험난한 길입니다. 이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공부와 경험을 통해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깊이있는 준비가 실패에 따른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온라인 마케팅 실력을 믿고 겁 없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회계와 세무에 대한 지식이 없다보니 세금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창직을 준비중인 다른 분들도 본인의 관심분야뿐만 아니라 회계, 세무 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계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자살을 결심한 고객의 목숨을 살려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원치 않는 인터넷 게시물에 의해 상처받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남들은 쉽게 생각하고 올리는 단 한 장의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주말에 고객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릴적 장난삼아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어 죽음까지 고민하며 혹시나 하고 연락을 했다고 하더군요. 저희가 동영상을 찾아 삭제했고 그 고객은 현재 잘 지내고 있는걸 보면서 일의 보람도 크게 느낍니다.창직을 고민중인 분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보통 사업에 성공하는 확률을 5%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사업가의 1%만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창직은 아마도 0.1%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힘들어도 그 과실은 달콤할 것입니다.
누구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위대한 사업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통찰력(Insight)를 키워야 합니다. 통찰력은 사업가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입니다. 미래에 대한 혜안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며 남들과 같이 살아서는 절대로 통찰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50살입니다. 앞으로 최소한 30년을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막막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공부했던 것과 2000년 공부했던 HTML과 같은 것으로 지금까지 버텨왔었습니다. 하지만 그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30년을 더 일하며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19 Again!” 프로젝트를 가동했습니다. 19살 고3 시절 체력, 건강, 공부,열정을 다시 가지고자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120kg 초고도 비만에서 75kg의 정상인으로 만들었고, 10가지도 넘던 만성질병을 극복했습니다. 뇌도 다시 젊게 가동해 현재는 하루에 한 권 책을 읽을 정도의 지적능력을 확보했습니다. 여러분도 제 나이와 비슷할 겁니다. 여러분도 최소 30년을 열심히 일하고 50년을 건강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도 20대와 같이 만들고 뇌도 어린애처럼 만들어야 합니다.
창직의 길은 힘듭니다. 그만한 준비가 되어야 과실이 여러분께 돌아갈 것입니다. 요즘에 부업으로 책을 쓰고 있습니다. 첫 장에“신이시여 정녕 제가 이 책을 썼습니까?”라고 적었습니다.
여러분이 위대한 창직으로 “신이시여 정녕 제가 이 회사를 만들었습니까?”라고 말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