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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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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일과 성공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꿈을 찾고 미래를 계획하는 기회가 되길 바랍니다.

워크넷이 만난 사람들 - 캘리그래퍼 강병인

한글에 디자인을 새기는 예술가

캘리그래퍼 강병인

 

대중매체와 각종 상품에 한글 캘리그래피가 사용되면서 한글이 지닌 문자 고유의 아름다움이 주목받고 있다. 한글 캘리그래피를 논할 때면 이 분야의 권위자인 강병인 작가를 빼놓을 수 없다. 소주 참이슬’,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등 그의 손으로 재창조된 한글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창의적이고 경이롭기까지 하다. 상업적 흥행은 물론 순수 작품으로도 주목받고 있는 그를 만났다

 

 

어원적으로 아름답게 쓰다라는 뜻을 지닌 캘리그라피(calligraphy)는 이미 대중에게 상당히 친숙한 분야다. 제품 패키지를 비롯해 TV 프로그램명과 영화·광고 포스터, 책 표지 등 일상의 매 순간에서 우리는 캘리그라피를 만나고 있다.  

지금이야 흔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캘리그라피가 일상화됐고 더불어 손 글씨 붐까지 일고 있지만 예술적 장르로 각광받은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강병인 작가가 있다. 산사춘, 참이슬, 풀무원, 화요, 미생, 송곳, 엄마가 뿔났다 등 웬만큼 알려진 글씨체가 모두 그의 것이다. 수많은 캘리그래피 작품을 쓴 그는 현재 강병인캘리그라피연구소 술통을 운영하고 있다. 숱통이라는 이름은 술을 워낙 좋아하기도 하지만 좋은 글씨로 술술 잘 통하는 세상이라는 뜻도 있다고 이야기 한다. 글씨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 안에 있는 재밌는 이야기와 감정들이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고 포근하고 기쁘게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글씨 하나로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자는 의미인 거죠.”

 


 

강병인 작가는 어렸을 적부터 서예 수업을 특히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 대회에 나가 상도 여러 번 탔고, 중학생 때는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를 보고 매료되어 나중에 어른이 되면 김정희 선생 같은 서예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때쯤 영원히 묵을 가는 사람이 되겠다는 의미로 영묵이라는 호도 지었다.

서예를 독학으로 배운 그는 외롭고 힘들 때마다 잘 쓰든 못쓰든 늘 글씨를 썼다. 가정환경이 어려워 중학교 졸업 후 공장에 다니면서 검정고시로 고등학교 졸업장을 따고 출판사 디자이너로 출발해서 광고디자이너로 일할 때도 붓글씨를 놓지 않았다. 배움에도 정진해 늦깎이로 디자인을 전공하고 대학원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그는 광고회사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서예를 디자인처럼 만들어내면 어떤 새로운 분야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꾸준히 고민해왔다. 오래전부터 캘리그래피 시장이 활성화된 일본에 갈 때마다 캘리그래피 시장의 흐름을 살펴보면서 조금씩 생각을 구체화시켜 나갔다. 특히 디자인 로고를 만들 때 붓글씨, 활자를 섞어서 보내면 붓글씨를 더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 가능성을 확인했어요.”

그는 2002년 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처음 캘리그래피 작업을 할 때 두 가지 생각을 했어요.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해보자는 것이 첫 번째였어요. 그 둘이 만나면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생각한 거죠. 사실 거기엔 현실적 문제도 포함돼 있었어요. 제가 광고회사 디자이너로 오래 생활했지만 만족도 없었고 발전도 없었던 거예요. 그렇다고 순수 작가로서는 생활이 어려우니 제가 쓰고 싶은 글씨도 쓰면서 경제적으로도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쪽으로 접목한 겁니다. 또 하나는 한글의 아름다움, 멋스러움, 심도 깊음을 알려보자는 것이었어요. 그건 순수 작품을 통해 보여주겠다고 생각했죠.”

사업에 실패한 뒤 절실한 마음으로 시작한 한글 캘리그래피는 그의 인생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판에 박힌 듯 똑같은 손멋글씨가 아닌 한글 단어의 각기 다른 의미와 개성을 살린 그의 작품은 시나브로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기 시작했고, 순수예술로 예술계의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캘리그라피가 주목받기 시작한 건 상업적 작업이 먼저였다. 지난 2006참이슬이라는 소주 브랜드 손 글씨가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캘리그라피는 점점 다양한 분야의 산업으로 확대되었다.

한국 영화 제목에 손 글씨와 붓글씨가 사용되고 책 제목, 제품명, 브랜드에 적용되면서 인식의 변화가 컸죠. 소주만 예로 들어도 하루에 소비자와 대면하는 정도가 엄청나잖아요. 기업 입장에서 보면 차별화 요소가 강한 데다 캘리그라피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스토리 때문에 소비자 반응까지 좋으니 적극 활용하게 된 거죠.”

그의 주 업무는 제품이나 광고에 쓰일 글씨를 쓰는 것이다.예를 들어, 어떤 기업이 아침 해라는 음료 이름의 캘리그래피를 의뢰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럼 일단 아침 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와 느낌에 대해 생각해봐요. 그리고 음료의 맛과 향 등 그 음료만이 가진 특징을 파악하죠. 또 음료를 주로 구입하는 사람들의 성별이나 연령 등 주요 타깃층의 분석도 꼭 필요해요. 기업이 원하는 마케팅 전략과 디자인 요소까지 고려해야 하고요. ‘아침 해세 글자에 이 모든 게 다 담겨 있어야 하는 거예요.”

 


 

글씨를 여러 번 쓰면서 의뢰인이 원하는 콘셉트의 글씨를 완성하는 데는 보통 일주일 정도 시간이 걸린다. 의뢰인 요청에 따라 수정을 해야 할 때도 많다. 그는 주로 의뢰를 받아 글씨를 쓰지만, 진정한 캘리그래퍼가 되려면 자신만의 작품 활동도 꾸준히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만의 글씨를 만드는 거죠. 또한 아무리 나만의 글씨를 찾았다 해도 그 속에서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거든요. 독창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점이 캘리그래퍼로서 가장 힘든 일이면서도 가장 큰 성취감을 느끼는 부분이죠.”

사람이 수천, 수만 가지 표정을 짓듯이 글씨에도 희로애락을 비롯한 수많은 감정이 있는데, 캘리그래퍼는 그것을 잘 표현해야 한다.예를 들어, ‘들국화라는 글자 하나를 쓸 때도 야생의 거친 이미지와 꽃이라는 아름다운 이미지를 동시에 보이도록 하는 거지요.”

어찌 보면 회화나 조각 같은 순수미술 장르보다 작업 과정이 더 어려워 보인다.

단순히 멋있게 보이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한글의 제작원리를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해 여러 고민을 해요. 가령 엄마가 뿔났다의 경우 에서 연상되는 소가 희생의 이미지고 주인공인 엄마도 늘 희생하는 존재라는 점을 그 안에 녹여내고 싶었죠. 결국 글씨를 쓰는 과정은 이해인 것 같아요. ‘봄날이라는 단어를 예로 들어볼까요. 봄이 오는 과정들이 참 많죠. 겨우내 얼었던 것들이 녹아내리는 과정, 그 과정에서 따뜻한 햇살의 존재감, 또 어떤 꽃은 빨리 피고 늦게 피기도 하는 등 말입니다. 그 과정들을 이해하고 해석하지 않은 채 그냥 봄날이라고 쓰면 결코 좋은 글씨가 나올 수 없겠죠.”

 


 

그의 이야기 속에는 한글에 대한 사랑이 뚝뚝 묻어난다. 그는 한글에 사물의 형상도 보이고, 뜻도 보이고, 자연의 이치와 속성도 보인다고 말한다. 그래서 글씨를 쓸 때 서법보다는 배움을 통한 앎, 앎을 통한 변화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수많은 정보를 직간접적으로 부딪치는 경험이 필요해요. 저 스스로도 늘 안테나를 꽂아놓고 있어요. 등산을 하다가도 이상하게 생긴 나무가 있으면 그냥 지나가지 못하고 관찰하고 상상하고 그래요. 늘 머릿속이 복잡하죠.”

그래서일까. 그의 글씨에서는 유독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생동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그의 글씨 중 ''엔 피어나고자 온몸을 꿈틀거리는 봄의 모습이 선명하다. ''라는 글씨에서는 정말 개가 살아서 짖는 듯하다. ''이라는 글씨에서는 엉덩이 사이에서 똥이 뚝! 떨어진다.

캘리그래퍼라면 한글을 분석하는 자세도 필요하다. 특히 한글에 담긴 철학과 가치를 알면 글씨를 쓰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또한 기본에 충실하고 싶다면 서예학과를, 미술적 감각을 키우고 싶다면 디자인 관련 학과를 추천하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한다.캘리그래퍼가 되고 싶다면 관찰력을 키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나비 한 마리를 보더라도 유심히 들여다보는 거예요. 나비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나는지 등 찬찬히 뜯어보는 거죠. 컵이 보이면 저 컵은 왜 저렇게 생겼지?’ 하고 생각해보기도 하고요. 내가 보고 듣고 만지고 맛보고 느끼는 모든 경험이 글씨 쓰는 데 도움이 돼요. 우리 주변에 있는 물체나 생명에 모두 관심을 가져보세요.”

 


 

캘리그래퍼로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글씨를 좋아해야 한다고 한다. 무슨 일이든 잘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도 이 분야를 좋아했기 때문에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하다 보니 한글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더 공부해서 한글을 풍성하게 표현하고, 가치 있게 만들 꿈을 꾸고 있다.

담당부서 : 미래직업연구팀
담당자 : 이랑, 이유진(1577-7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