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직업 세계
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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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넷이 만난 사람들
- 크리에이티브디렉터 유영규
- 단순함의 미학! 행동하는 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디렉터 유영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유영규. 그는 지금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제품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줄줄이 발표하고 있는 홀로렌즈, 엑스박스 등의 최첨단 제품들도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제주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제주 출신의 디자이너인 그가 한국을 넘어 세계 디자이너들과 당당하게 경쟁하고 있다.
20년 전 삼성전자의 일명 ‘깍두기폰’이라는 모바일폰이 있었다. 디자이너 유영규의 첫 번째 디자인 제품으로, 삼성 모바일폰 역사상 처음으로 알루미늄 소재가 적용되었다. 그는 이 제품에 단순함의 미학이라는 그의 디자인 철학을 담았다. 당시 경제가 좋지 않았던 IMF 시기인데다가 디자인이 너무 단순하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제품은 불필요한 장식을 최소화한 삼성만의 절제미로 기존 장년층의 선호브랜드였던 ‘애니콜’을 젊은 층으로 확산시켰다. 또한 단순한 디자인이 시장에서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매우 중요한 계기와 확신을 갖게 해 주었다. 이후부터 소비자접점에서 제품, 전시까지 감성적이면서 일관성 있는 경험디자인을 접목시키면서 결정권자들이 쉽게 선택하지 않았던 단순한 디자인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그로인해 좀 더 매력적이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었던 제품과 브랜드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렇게 그만의 디자인철학을 고집스럽게 유지하고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 현실로 만들어 내는 그를 해외 동료디자이너들은 ‘Doer’ 라고 부른다. 행동하는 디자이너, 발로 뛰는 디자이너라는 뜻이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리고 또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유영규 디자이너는 어렸을 적부터 미적 감각이 뛰어났다. 특히 여러 가지 제품들의 디자인에 흥미가 있었지만 막상 제품 디자이너가 될 줄은 몰랐다고 한다. 대학도 그래픽 전공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故)이기후 교수님의 인상적인 제품디자인들을 접하면서 산업디자인 전공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래픽을 전공하면 이렇게 멋진 제품디자인을 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산업디자인으로 전공을 바꾸었죠.”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삼성전자의 무선사업부 디자이너로 일했지만 해외에서 더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겠다는 새로운 계획을 세웠다. 그는 국제무대에서 활동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어학연수를 위해 벤쿠버로 갔다. 그리고 6개월 후, 그동안 꿈꿔왔던 나이키 본사(비버튼)에서 하루 종일 면접을 보고 최종 오퍼를 받게 되었다. “나이키라는 회사를 다닌다는 건 마치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전 세계의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모두 모여 양산품을 만들기 위해 서로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선의의 경쟁을 벌입니다. 그리고 TV로만 봐 왔던 유명한 운동선수들이 나이키 캠퍼스에서 테스트를 받고 이런 결과들이 디자인에 반영이 되는 게 매우 흥미로웠어요. 이후 나이키의 핵심 사업 중 하나인 트라이엑스 타이밍 제품디자인에 참여해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때 참여했던 특허는 아직까지 나이키의 핵심제품에 사용 중입니다.”
그는 나이키 재직 중 LG전자로부터 스카웃 제안을 받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LG 와인폰을 디자인했고, 그 후 산업디자인뿐만 아니라 더 폭넓은 분야까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아이리버로 옮겨 전체를 총괄하는 책임을 맡았다. 2년 후, ‘아이리버는 곧 디자인’이라는 공식이 생겨날 정도로 좋은 이미지가 생겨 전 세계 글로벌 기업으로부터 다양한 협업 제안도 들어왔지만, 꼭 필요한 혁신적인 기술, 엔지니어링 지원, 에코시스템의 부재로 소비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디자인을 하기가 어려웠다.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고자 그는 독립 디자인 스튜디오인 ‘클라우드 앤코’를 창립했다. “클라우드 앤코는 수익보다는 가치를 실현하고 개인적으로 도전하고 싶었던 디자인과 좋아하는 브랜드들과 같이 협업 하는 스튜디오입니다. 오픈하면서 무인양품의 디자인을 시작으로 독일 아우디, 핀란드 슈퍼셀, 월트디즈니, 미국의 쿠퍼휴잇디자인 뮤지엄 등 국내에서 누구도 하지 못한 해외굴지의 기업, 해외 스타디자이너, 뮤지엄 등과의 협업과 컨설팅을 이끌어 내게 되었습니다. 특히 월트 디즈니와 협업은 최근 개봉한 스타워즈, 베이맥스등의 제품들을 우리의 철학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을 의뢰 받아서 디자인을 진행했죠. 그 성과로 글로벌 플래그쉽 스토어 디자인에도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해외 유명스타디자이너인 제스퍼모리슨이 참여하는 전시에 초대받아 전시를 밀라노와 일본에서 하였고, 전세계 63명의 아티스트, 디자이너, 패션, 건축가가 참여하는 전시를 뉴욕 쿠퍼휴잇 디자인뮤지엄에서 하게 되었습니다. 이 스튜디오만의 멘토링에 함께했던 엔트리 디자이너들은 지금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오퍼를 받고 글로벌기업에서 핵심디자이너로 근무 중입니다.”
디자이너로서 기술과 여러 혁신을 기반으로 한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그동안 관심이 없었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두 번째 연락이 왔다. 마침 그 즈음이 마이크로소프트가 혁신의 길로 들어설 때였다. “제가 마이크로소프트에 끌린 이유는 제 호기심을 자극했던 ‘키넥트’란 제품과 기존의 디자인과 다른 심플한 ‘메트로 UI’ 발표 때문이었습니다. 이정도면 제가 기여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이 어느 정도 형성이 된듯했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면서 운 좋게 홀로렌즈와 최신 엑스박스 디자인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엑스박스는 워낙 오랜 역사를 가진 제품이기 때문에 고유의 디자인을 버리기가 쉽지는 않았다. 제품 자체의 좋은 DNA를 이어가면서 어떻게 변화를 줄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결국 답은 게임과 라이프스타일의 조화에서 찾았다.
홀로렌즈는 세상에 한 번도 없던 제품이었기에 디자인 방향에서 많은 고민이 필요했던 프로젝트였다. 이전에 타사 제품들의 폼펙터들이 가지고 있는 세련되지 않은 형태들을 바꿀 수 없다는 선입견을 깨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는 2000년 초 잉골쉬타트 아우디 모바일 뮤지엄에서 봤던 ‘아우디 TT’의 미래적이면서 심플한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어, 인체공학적이면서도 쿨하고 멋진 디자인을 적용시켰다. 5년여에 걸쳐 수많은 전문가들과 많은 디자이너들이 함께 만들어낸 이 제품은 마이크로소프트 제품 역사상 최고의 디자인과 제품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세상을 바꿀 제품으로 업계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작품이 발표되고 난 뒤 평가가 굉장히 좋아 기쁘고 뿌듯했다고 한다. “영광스럽게도 ‘마이크로소프트의 미래디자이너 4인’에 선정되었으니 몸이 좀 힘들더라도 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즐겁게 활동할 생각입니다.”
그는 지난 5년간 마이크로소프트와 클라우드 앤코의 일을 병행해왔다. 마이크로소프트 일을 마치고 저녁부터는 한국시간에 맞춰 클라우드앤코 일을 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그가 하고 싶은 일들을 위주로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라서 오히려 디자인에 활력이 생기기에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끌고 나갈 계획이다.
그는 무인양품의 아트디렉터였던 세계적인 디자이너인 하라 켄야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이리버에 있을 때 우연히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어요. 바쁜 스케줄 때문에 다음 미팅 전까지 얼마간의 시간동안 서로의 디자인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디자인에 대한 열정에 공감하고 이후 스케줄을 취소하고 긴 시간 동안 저와 많은 이야기를 이어갔죠. 이후에는 무인양품 디자인을 의뢰해주었고, 디자인 협업으로 까지 이어졌습니다. 제가 지향하는 디자인철학이 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여러 공통점을 가지고 있고, 특히 군더더기 없는 ‘엠티니스’라는 디자인철학은 이후 제 디자인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습니다.”
디자인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그의 철학은 ‘오래 사용해도 가치를 잃지 않고, 이유가 있는 심플한 디자인’이다. 언제부터인지 산업디자인이 지나치게 불필요한 장식들로 치장되고, 너무 트렌디한 제품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이런 제품들은 대부분 쉽게 질리게 되어 그만큼 제품으로서의 생명력이 짧다. “‘이유가 있는 심플한 디자인’은 사용할수록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시장에서 계속 사랑받는 제품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는 디자인 과정에 정성을 쏟는 동시에 제품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에도 무척 공을 들인다. 특히 사람들이 지나쳐버릴 수도 있는 작은 디테일까지도 집요하게 신경을 쓰는 건 그 디테일을 발견해 감동을 느끼는 단 몇 명의 눈 높은 소비자들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동은 그 제품에 대한 관심과 소비자 충성도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동안 ‘좋은 디자인에 대한 고민’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일과 무관한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디자이너의 특권 중 하나가 일과 취미, 삶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점입니다. 하고 싶은 디자인이 있다면 어디를 막론하고 전 세계를 누볐고, 연봉이나 비용에 상관없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면 좋은 디자인을 위해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디자인의 제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행복해요.”
디자인을 본업으로 할 후배들이 프로젝트나 회사를 고를 때 돈이 아니라 본인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는지에 따라 결정한다면 더 큰 결과로 보상받게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 디자인의 가치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나쁜 클라이언트를 만나면 대부분 좋은 결과를 얻기 어렵고 이런 결과는 좋은 프로젝트를 하는데 제약이 될 수 있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디자이너로서의 수명을 단축시키게 된다고 한다. 또한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 시장을 상대해야 합니다.”면서 “실력이 뛰어난 한국의 후배 디자이너들이 많은데, 해외 진출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실력을 믿고 해외에 도전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바람도 덧붙였다.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이 좋은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라고 말하는 유영규 디자이너. 그가 그 동안 걸어온 길보다도 앞으로 걸어갈 길이 더욱 빛나고 값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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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창직자 인터뷰
- KFood외교관
우리의 한식을 세계인의 식탁에
윤상진(42세) | 창직 아이템 : K-Food 외교관
K-Food 외교관은 한식을 알리는 직업인가요?
이름 그대로 우리의 음식을 외국인에게 소개하는 직업입니다. 전 대학에서 호텔요리를 전공했었고 계속 조리나 제과제빵관련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다 베트남 아내와 결혼 후 자연스럽게 다문화가족을 많이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들이 한국에서 적응하면서 잘 생활하는데 음식이 아주 중요한 가교역할을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말이 잘 안통하고, 생각이 달라도 같은 음식을 먹다보면 공감대도 형성되고 정도 들잖아요. 제가 잘 할 수 있는 분야와 관심분야를 접목하여 생각해 낸 아이템입니다. 한국에 있는 다문화가족이나 외국인에게 한식 요리법도 가르쳐주고, 이들이 모이는 행사에서 한국요리를 알리는 일도 하고 싶습니다. 전에도 이주여성을 대상으로 한식 요리법 강좌 같은 것을 했었는데 좀 더 저만의 아이템으로 차별화하고 아이디어를 구체화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본인의 경험이 창직 아이템으로 발전한 경우네요.
네 그렇습니다. 전 제과제빵공장도 운영했었고, 요리 강좌도 운영했었고 음식과 관련한 여러 일을 했었습니다. 10여 년 전부터 창업에 줄곧 관심이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식당이나 외식업은 경쟁도 심하고, 차별화가 되지 않으면 문을 많이 닫는 업종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다보니 쉽게 음식점을 차려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었습니다.
요리와 관련된 일을 좋아하고, 잘해서 계속 이분야 일을 했었지만 큰 만족감이 들지 않아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계속 질문하게 되더군요. 저의 경험과 관심을 녹여서 담되, 차별화된 것이 없을지 계속 고민을 하다가 창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창직관련된 세미나, 수업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서 참여했고 창직 아카데미에 참여해서도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다른 요리관련 직업과 차별화전략은 무엇인지요?
저도 계속 고민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그래서 지금 방문요리쉐프과정도 따로 배우고 있습니다. 물론 기존에 출장요리하시는 분도 계시지만 저는 다문화가족을 대상으로 가정에 방문하거나 교육강좌를 열어서 한국요리도 알리고, 또 음식과 관련한 한국의 문화도 함께 알리고 싶습니다. 설날에 먹는 흰떡국의 의미는 무엇인지, 지역별로 김치는 어떤 특색이 있는지 등 음식과 우리 문화를 함께 알리는 스토리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점이 기존의 조리사 영역과 차별화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단순히 음식조리법을 알리고, 재료손질을 가르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저는 음식과 문화를 함께 알리고 한국에 있는 다문화가족이나 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더 잘 이해하고 빨리 적응하도록 돕고 싶습니다.앞으로의 포부는 무엇인지요?
요리 전공도 했었고 다양한 분야의 외식업에도 종사했었지만 계속 전문성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배우려 합니다. 사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K-Food 외교관이라는 창직 아이템이 당장은 수익창출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창직을 하신 분 가운데 모든 것이 쉬웠다는 분은 안 계시더군요. 창직특강이나 수업에서 여러 분을 만났는데 모두 고생하신 경험이 다 있으셨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제과제빵분야에 취업하여 일을 하면서 다문화 가족이나 외국인을 위한 스토리가 결부된 요리 아이템을 개발하고 구체화하는 일을 병행하고자 합니다.창직을 고민중인 분들께 한마디 전하신다면?
저도 이제 시작단계여서 앞으로도 많은 시행착오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일을 하면서 조금씩 새로운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구체화하는 작업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창직계획서를 적으려하니 막막하더군요. 취업이나 창업보다 훨씬 어렵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아이템 개발이 어려웠습니다. 창직하신 많은 분들을 만나뵈니 본인의 경험을 살려야 성공가능성이 높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더군요. 더욱이 중장년층은 기존의 경력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데는 상당한 부담과 위험이 따른다는 말씀도 계셨습니다. 본인의 업무경험, 혹은 그동안 취미나 관심사로 접해 본 경험이 있는 것들을 창직아이템으로 구체화시키는 것이 가장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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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직자 인터뷰
- 소셜데이팅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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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는 일(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
‘이음 ’은 매일 낮 12시 30분, 20~30대 싱글남녀에게 하루에 한 명씩 운명의 짝을 소개해 주는 새로운 컨셉(=소셜데이팅)의 온라인데이팅 서비스입니다. 2010년 세계 최초로 ‘소셜데이팅’의 개념을 도입했으며 국내에 소셜데이팅 붐을 만들며 지금은 업계 1위로 성장했습니다. 설립 2년 만에 40쌍에 달하는 결혼 커플을 탄생시켜 주목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회원 수는 35만 명, 누적 매칭 성공 건수는 28만 쌍에 이릅니다.
사업아이템의 가치를 인정받아 실리콘밸리에서 20억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으며, 제 11회 여성창업경진대회 대상, 제6회 인터넷대상 국무총리상, KOTRA [나는 글로벌 벤처다 2012] 콘테스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음’ 등장 전까지 국내에는 대학생에서 사회 초년생(20~30대)이 신뢰를 가지고 이용할 만한 소개팅의 주도적인 브랜드가 없었습니다. 크게 결혼정보시장과 ‘일회성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음란성채팅시장으로 양극화된 상황이었죠. 특히 음란성채팅사이트 위주의 국내 온라인데이팅 서비스들은 공통적으로 ‘무제한 회원 검색, 무한정 데이트신청’을 제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들 브랜드는 개인정보의 과잉노출과 깔끔하지 못한 구성으로 여성들에게 거부감을 형성해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브랜드화에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음은 기존에 없던 하루에 한 명이라는 컨셉과 운명을 강조한 스토리텔링, 자신의 취향과 선호도를 TAG(키워드)형태로 입력하는 모바일 최적화 데이터구조, 여성에게 신뢰와 호감을 얻는 인터페이스(검색불가!), Push형 서비스(한 번만 데이터를 입력하면 유저가 할 일은 zero)와 같은 차별점을 통해 런칭할 때부터 지금까지 2년에 걸쳐 온라인데이팅 서비스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처음 어떻게 이 아이디어(일)를 생각하게 된 건가요?
- 처음부터 창업에 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NC소프트에 근무하고 있던 시절에 같은 뜻을 가진 지인 한 분을 만나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파트타임으로 서비스를 개발해주는 친구들 3명의 도움을 받아서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습니다. 그 때가 2010년 3월 무렵이었습니다.(이후 2010년 5월에 OBT 버전을 출시했습니다.) 사실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직장 입사 초기의 경험에서 어느 정도 확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다닐 때 소개팅을 정말 많이 한 편이었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직장에 들어가니까 소개팅을 시켜주겠다는 사람도, 누군가를 만날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을 텐데 왜 소개팅을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제대로 없는 거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창직 아이템의 시장성은 어떻게 파악하였나요?
- 엔씨소프트 사업팀에 근무하며 해외 서비스 동향을 살펴보던 중 온라인데이팅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또 스마트폰으로 인해 SNS가 급성장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지금이 이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적기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도전하게 됐습니다. 경험이 없었으니 무서운 줄 모르고 용기 있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남 서비스가 레드오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음란성 온라인 채팅 서비스와 결혼정보업체만 있을 뿐, 그 사이의 ‘가볍고 밝은 소개팅’에 대한 온라인 사업은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틈새시장을 개척해 블루오션에 발을 들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온라인 데이팅시장은 4조원 규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본인의 능력, 지식, 대학의 전공은 창직과 연관성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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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했는데 학창시절부터 ‘채널’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았습니다.
똑같은 사람을 상대하는데도 메일, 전화, 문자와 같이 채널이 바뀌면 대화양식이나 대화내용이 달라지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채널’을 연구하고 싶은 마음에 이를 이론적으로 공부하는 커뮤니케이션학부터 미대 미디어 프로그래밍, 정신분석학까지 과나 학점에 상관없이 다양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또한 정보문화학이라는 연합전공을 전공한 것이 지금의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게임이나 미디어아트를 만드는 데 컴퓨터 공학과 친구들이 개발하고 디자인과 친구들이 디자인하고 저는 기획을 맡았습니다. 이때 새로운 채널에 대한 호기심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음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새로운 채널이라는 측면에서 제가 가진 호기심과 맞닿아 있었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이음’으로 연결된 것 같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 초창기에는 같이 사업을 시작한 친구들끼리 사비를 털어서 진행하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엔젤투자자들을 구한 덕분에 그 이후로는 자금 압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초기 모델을 시연하고 몇 천만 원 정도의 자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그 후 2010년 여성창업경진대회 대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언론에도 많이 소개가 되었고 1,000만원이라는 창업자금도 지원받게 되어서 수월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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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
퇴사 이후 서울대 동문 친구들과 함께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회사 사무실을 임대해 사업을 시작했었습니다. 책상 2개, 컴퓨터 2대로 시작한 사업이었습니다. 처음엔 저를 포함해 3~4명 정도가 학원 사무실 일부를 빌려 비는 시간에 모여서 일했습니다. 모바일 환경에서 각자에게 맞는 상대를 찾을 수 있는 로직을 만들고 프로그램화 하는 과정에서 두 번의 고비가 있었습니다.
시범서비스가 끝나고 유료화를 해야 할 시점인데 주변에서 앞서 프리챌 등 유료화를 시도했다가 주저앉은 예를 들면서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각자 주머니를 털어 일하는데 한계가 왔기 때문에 동시에 투자자도 물색해야 했습니다. 금융가를 돌면서 여러 차례 미팅했고, 한번 실패할 때마다 그들이 지적했던 것, 궁금해 했던 점들을 보강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초기 창업자금은 엔씨소프트를 다니기 전 벤처인들의 모임에서 만난 고영하 ‘고벤처’ 대표의 주선을 통해 9,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출발했고 사업 중간 중간에 증자를 했습니다.
서비스적으로는 이음이라는 서비스에 대한 구상과 성공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프로그램 개발과 데이터 관리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초기 개발자들과 의견 조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사이트 론칭 시기가 두 달 넘게 미뤄지기도 했습니다. 서비스를 앞두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출범 날짜를 받았던 게 실수였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경험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개발 뿐 아니라 경영, 마케팅, 인사 등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더 공부했습니다. - 창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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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 회원가입 절차는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음신국에 입국할 수 없습니다. 우선 자신의 기본정보 입력은 필수이고 이어 이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프로필 작성입니다. 필수 키워드는 성격/캐릭터, 취미, 외모, Place, I Like, I Have, I Want 등 7개, 선택 키워드는 출신학교와 직업 2가지입니다.
여기에 회원 검색 자체가 불가능하고 운영자가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푸시형 서비스라는 점도 믿음을 줍니다. 운영자가 하루에 한 명씩 매칭해주는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의 정보를 이용자가 직접 확인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정보가 함부로 공개되지 않는 점이 온라인 데이팅의 위험성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개인 신상이 함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에 기존의 온라인 만남보다 믿을 만합니다. 또 가입 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가벼운 만남보다 자신의 이상형을 만날 확률도 높아 회원들이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이음은 현재 40만 명의 회원이 등록되었고 월 매출은 약 2억 정도입니다 아직 '성공'이라는 마침표를 찍기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적은 수준은 아닙니다. 이 수준에 오르기까지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 이처럼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과 목표를 잊지 않고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만들어진 게 바로 이음입니다. 그만큼 이음에 대한 기대도 높습니다. 현재 이음의 직원 수는 40명입니다. 정직원 2명, 파트타임 3명으로 다른 회사의 사무실 한편에 책상 몇 개를 빌려서 시작했던 것에 비하면 덩치가 많이 커졌습니다. 회원 수 100만 명 정도가 되면 이제 한 단계 뛰어 넘었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음소시어스의 최종 목표가 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장 잘 연결해주는 회사가 되는 것인 만큼 한 단계 성공했다고 여기는 시점은 100만 명을 넘어 섰을 때일 듯합니다.- 창작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 초창기에는 같이 사업을 시작한 친구들끼리 사비를 털어서 진행하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엔젤투자자들을 구한 덕분에 그 이후로는 자금 압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초기 모델을 시연하고 몇 천 만원정도의 자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그 후 2010년 11월말에 정식 런칭을 했는데 런칭 1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는 성과를 냈습니다. 그 덕분에 실리콘밸리에서 20억 이상의 투자금도 유치했습니다.
투자자금 유치의 노하우는 특별히 없습니다. 현재의 수치를 잘 관리하고 검증 받아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비전이나 경영진의 의지를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이런 부분들을 주시하고 그 속에서 인사이트를 찾아 개선하고 비전을 세우는 것에 주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직 과정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 창업 초기 개발자들과 의견 조율을 제대로 못해 사이트 런칭 시기가 두 달 넘게 미뤄진 적이 있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어떤 서비스를 할 때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계산을 못하고 무조건 출범 날짜를 못 박아 뒀던 것이 실수였습니다. 그 때 이후로 개발뿐만 아니라 경영, 마케팅, 인사 등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더 공부하게 됐습니다. 투자를 유치하려면 사업 현황과 관련된 수치를 잘 관리하고 검증 받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비전이나 경영진의 의지를 증명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그래서 항상 이런 부분들을 언제나 주시할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인사이트를 찾아 개선하고 비전을 세우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창직 과정에서 제3기관, 인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인물, 어떤 기관, 어떤 내용인가요?
- 초기에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우수 중소기업에 주는 ‘벤처투자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또 여성창업 경진대회에 수상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이 연락을 해왔고 이를 통해 수월하게 기관투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의 약점(경험)을 보완해주는 것은 풍부한 경험을 가진 주주 및 고문진입니다.
고영하 고벤처 회장이 주주이자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고벤처포럼은 10여명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한 회에 300명씩 참석하는 대규모 모임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창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고벤처포럼을 많이 찾고 있으며 고벤처포럼이 창업 붐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스타트업 기업들에겐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정보, 네트워크 등이 절실한데요, 이런 목마름을 채워주는 곳이 바로 고벤처포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음 역시 고벤처로부터 단순히 금전적인 투자만 받은 것이 아니었고 인력 소개에서부터 사무실 및 관련업체 담당자 소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있는 좋은 분들과의 네트워크 및 정보를 지원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창업 초기에 회사를 꾸려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창직인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확실히 예전보다 벤처회사를 시작하기 좋은 환경인 건 맞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작하는데, 결국은 끈기인 것 같아요. 어떤 서비스가 출시하자마자 성공할 확률은 적습니다. 그래서 끈기가 제일 중요할 것 같습니다. 열정은 창업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고 그 열정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끈기있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 롤모델이 있나요?
- 물리학자 리처드파인만과 버진인터랙티브의 리처드브랜슨을 존경합니다.
-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 창직 전선에 들어선 저에게 ‘안락함’이라는 단어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입니다. 안정된 서비스를 만들어 내기 위한 사업기획은 물론, 이음만의 문화를 담은 스토리텔링, 서비스를 온라인상에서 구현해내는 유능한 개발자를 찾아 개발자와 함께 밤을 새워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물론,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까지 어느 것 하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부분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만족감에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용기와 열정을 채워가고 있죠. 저는 문화, 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음의 성공적인 경영을 통해 현장경험을 쌓아 언젠가는 우리나라 문화, 예술분야의 저변을 확대하고 성장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 꿈은 문화예술분야 사업가로 혹은, 문화, 예술의 정책을 관장하는 수장이 되어 실현시켜낼지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건 제가 이뤄내고자 하는 목표는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일상의 삶 속에 예술의 향기를 향유하며 행복하게 사는 삶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
- 물론 창직은 고되고 힘듭니다. 대신 그 외에 떨어지는 가치들이 엄청나게 많지요. 주말까지 일 생각을 해야 할 정도로 바쁘지만, 일반 회사를 다닐 때보다 체감 노동은 오히려 적습니다. 자기가 주체가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무실 분위기를 내 뜻대로 활기차게 가져갈 수 있는 그런 행위는 ‘그 자체로 일에 대한 보상’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그만큼 크게 성장하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딱 한 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꾸준할 것’입니다. 열정과 톡톡 튀는 사고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20대의 매력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은 20대에게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를 지속적으로 상기하면서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직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끈기’를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20대는 그 어떤 시기보다 열정과 패기로 뭉쳐있는 나이이고, 그것을 자산으로 창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열정에 쉽게 지치지 않고 일을 밀고 나가는 ‘끈기 있는 태도’까지 가지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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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성공기
- 재능세공사
이기찬 | 열정재능공작소 대표
‘재능세공사’란 직업이 생소한데,어떤 일을 하시나요?
많은 분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이나 강점을 잘 알지 못하지요. 저는 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재능을 찾고 그 재능을 바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갤럽의 재능검사 도구인 스트렝스파인더(StrengthFinder)를 활용하여 재능해석(강점찾기), 재능세공(평생직업 찾기)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외에 10인 내외로 신청을 받아 ‘재능중심 직업궁합 탐색 워크샵’, ‘팀빌딩 강점혁명 워크샵’, 창업 및 재능관련 외부 특강 등을 진행하고 있기도 합니다.
스트렝스파인드 검사결과와 상담의뢰자가 제공하는 여러 정보들을 종합해 재능과 하고 싶은 일을 찾도록 상담해 드립니다. 상담은 1:1로 이뤄지며 2시간 내외이지만 개인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이일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직장생활을 10년 가까이 하다 보니 조직생활에 점점 찌들어 갔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가족을 생각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상황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 저같이 낙천적인 사람이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을 맞이했고 아내에게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2006년 4월 퇴사를 결심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던 중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이 커뮤니티에 올려진 게시물과 커뮤니티 사람들의 삶을 관찰하면서 자기계발 분야에서 재능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사람들을 돕는 이들은 아직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갤럽의 재능검사 도구 스트렝스파인더의 잠재가치를 볼 때 충분히 차별화에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이전에 하시던 일과 연관이 있으신가요?
국민대에서 MIS(경영정보)를 전공하고, GS홈쇼핑 정보기획팀에서 9년간 프로젝트 관리자로 근무했었고, CJ시스템즈에서 1년간 CJ홈쇼핑 SM팀 파트리더로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정보화시대의 경영학을 전공하다 보니 1인기업 창직 후 블로그, 카페, 소셜미디어 활용에 도움을 받았으며 직무성격 자체가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하고 조율하는 성격이 강하여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기질과 재능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적 노하우로 작용했다고 판단됩니다.재능을 찾아준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의 재능을 찬찬히 찾아볼 여유가 없으실 겁니다. 생각은 있지만 막상 내가 갖고 있는 재능이 뭔지, 또 뭘 잘하는지를 잘 알지 못하지요. 저 역시 그랬었구요. 갤럽의 프로그램은 30년 동안 각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2백만 명을 인터뷰한 결과에 기반하고 있는 자기발견프로그램이어서 신뢰도가 높은 편이지요. 또 그 결과에 기반하여 맞춤 상담을 해드리기 때문에 만족도도 높습니다. 단, 검사를 하고 상담을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느냐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재능이나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고 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직업을 만드는 것은 또다른 일이니까요.창직 아이템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창직 아이템을 다른 분들에 비해 쉽게 찾은 편이었지만 우리나라 자기계발 시장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데다가 선진국에 비해 전문가에게 상담을 청하거나 유료로 상담을 받는다는 것이 익숙지 않다는 점 때문에 새로운 직업으로 인정받을 만한 수입을 올리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의 재능을 알고 싶어하고 직업으로 연결시키고 싶어 하는 잠재수요만큼은 크다는 확신이 있었죠.
구본형 선생님의 조언을 듣고 1년 반 동안 무료상담을 진행하면서 체험 중심의 연구개발 기간을 거쳤고 이 기간 동안 150명 정도의 고객을 상담하면서 재능상담의 기초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재능상담에 대한 가능성과 자신감을 확인한 상태에서 유료화를 단행했고 아주 천천히 가격을 적정수준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그리고 충성고객의 입소문과 추천, 파워블로거 선정으로 인지도 상승 등의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 저만의 블루오션을 개척하는데 성공했다고 자평합니다.창직을 준비중이면서 도움 많은 곳을 소개해주세요.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곳은 위에서 몇 번 언급한 것처럼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커뮤니티입니다. 구본형 선생님의 저서 중 ‘내가 직업이다’,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등의 책이 큰 도움이 되었고 자기다움을 바탕으로 창업이나 창직을 시도하는 다른 커뮤니티 멤버들의 사례를 직접 관찰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것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밖에 다니엘 핑크의 ‘프리에이전트의 시대가 온다’, 제레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 페이스팝콘의 ‘미래생활사전’ 같은 책들도 창직과정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또한 비즈니스판 싸이월드라고 할 수 있는 이콥월드 김이숙 대표의 도움도 컸습니다. 재능과 잠재력을 가진 이들과 자본력과 경험이 많은 분들을 탁월하게 연결해 주는 김 대표님의 멘토링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1인창조기업협회 멘토로 활동하게 된 것도 김 대표님의 도움이 컸죠. 김한상 회장님과의 인연도 마찬가지 였구요.창직준비중인 분들께 선배로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스스로에 대한 자기탐색을 충분히 하시지 않았다면 창업이나 창직 모두 위험한 선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해서 알았다면 창직에 얼마나 어울리는 사람인지를 객관적으로 확인받는 것 또한 생략해서는 안 됩니다.
창직의 길을 선택하기 전에 지나치게 확신을 느끼고 시작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은데, 미리 말씀드리면 확신은 시도하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누적되어 느껴지는 것이지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알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죠.
남들이 시도하지 않았지만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수요가 많은 아이템이라면 창직의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결국 차별화 된 아이템으로 검증만 된다면 도전할만 하다는 뜻이고 만들어 가는 과정의 성공여부 역시 남다른 관점과 방식을 취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