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직업 세계
직업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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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넷이 만난 사람들
- 건축사 류춘수
기술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인 창조자
상암 월드컵 경기장을 건축한 건축사 류춘수
한 남자가 밤샘 작업 끝에 설계 사무실 책상 위에서 쪼그려 자고 일어나 퇴근이란 걸 해보자고 볼멘소리를 한다. 첫사랑의 기억으로 관객들의 가슴을 아리게 했던 영화 <건축학개론>의 첫 장면으로 건축인의 현실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우리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지내고 있는 건축물을 설계하려면 엄청난 공부와 노력 그리고 포괄적인 지식이 필요하다. 우리의 생활이 건축물 안에서 이루어지기에 건축사는 곧 인간의 삶을 설계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건축사란 어떤 직업인가요? 현재 하시는 일과 관련해서 본인을 소개해주세요.
건축사란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는 자격을 국가로부터 취득한 사람입니다. 건축사는 주택이나 아파트, 학교, 백화점, 병원 등 건물의 안팎은 물론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부분까지 종이 위에 도면으로 설계를 합니다. 건축사가 국가시험에 합격함으로써 주어지는 공식적인 자격증이라면, 건축가란 건축사 중에서도 훌륭한 건축물을 남기는 작가로서 건축인에게 주어지는 명예로운 호칭입니다. 이러한 건축가를 영어로는 ARCHITECT라고 합니다. 기술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인 창조자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지요. 건축은 과학과 예술의 어느 한편으로 치우칠 수 없는 그 중간에 우뚝 선 분야이며 건축사는 곧 기술적인 경험과 예술적인 안목을 동시에 갖추어야하는 매력적인 전문직종입니다. 그런 건축사로 일한지 어느덧 45년이 흘렀습니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것부터 치자면 반세기를 건축에 몸담은 셈이지요. 서울 월드컵 경기장, 말레이시아 사라와크 주경기장, 리츠칼튼 호텔, 경복궁역사 등 스포츠 경기장을 비롯해 다양한 건축물을 설계했으며 현재 ‘이공건축’ 대표로 있습니다.
어린 시절, 선생님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고등학교 때 경북 그림대회에서 장원을 할 정도로 그림을 잘 그렸지만 수학과 물리를 더 좋아해 이과를 공부했습니다. 고 3때 적성검사에서 건축이 1위로 나와 별 고민 없이 건축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의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나요?
평소에 자연을 가까이 합니다.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고요히 바라보고 바람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하지요. 이러한 자연에 대한 사랑, 느낌을 갖는 것이 영감을 얻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덧붙여 우리의 전통, 역사 공부를 통해 한국사람 특유의 정서를 알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이것이 결국 세계적으로도 통하는 경험을 종종 합니다.
동양적인 사상에서도 영감을 얻곤 합니다. 중국 해남에 있는 868 설계 공모에서 서로 달라야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노자의 사상을 건축에 반영해 높이와 소재가 전혀 다른 두 개의 타워를 설계했습니다. 그 당시 노자의 음양사상을 담은 김시습의 시를 영어로 브리핑하면서 중국인의 호평을 받아 만장일치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하루 일과는 대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나요?
건축사의 일이란 시간과 장소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매일 아침 내가 설계한 올림픽 공원에서 한 시간 가량 조깅을 하고 9시 반 정도 출근해서 신문을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회사에서도 일을 하지만 퇴근해서 집에서 회사 일을 처리하기도 합니다. 늘 갖고 다니는 핸드폰으로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메모를 하기에 항상 일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말에는 가급적 도시를 떠나 자연과 교감하며 휴식을 취합니다.
일을 하며 이 일을 하길 잘 했다 하는 때는 언제인가요?
그동안 한 번도 이 일에 후회가 없습니다. 일은 매일 힘들지만 과학과 예술을 접목할 수 있는 이런 직업이 있다는 자체가 고맙습니다. 내 적성에 딱 맞는 직업이라서 늘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을 하며 가장 힘들고 지칠 때는 언제인가요?
건축사는 기다리는 직업입니다. 건축주가 건축사를 선정해서 일을 주기 때문에 일 년 내내 일이 한 건도 없을 수 있고 때로는 한꺼번에 일이 몰리기도 합니다. 건축사무소를 운영하는데 일이 없을 때도 직원들 월급을 줘야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무척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보다는 건축에 대한 정부나 일반인의 이해가 부족할 때 제일 힘듭니다. 모든 정부의 설계엔 심의를 거치게 되는데 사실상 설계 경력이 없는 교수나 일반인이 수십 년간 설계를 해온 건축사를 컨트롤하려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그럴 때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위해 설득을 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가장 어렵습니다.
건축사가 되기 위해 갖추어야할 자질과 능력은 무엇인가요?
건축사가 되려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설계하는 능력, 도형에 대한 이해력, 창의성과 미적 감각, 사무능력 등이 있어야 합니다. 건축물은 미적으로 아름다우면서도 기능적으로도 우수해야 하기 때문에 건축사는 공간지각력은 물론 공학적 지식도 갖추어야 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과 일을 하기 때문에 통솔할 수 있는 지도력과 협동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창조적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열정이 가장 필요합니다.
훌륭한 건축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집을 잘 지으려면 그 집에서 살아갈 사람의 삶을 통찰하고 계획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생활조건이란 사람마다 제각각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축사는 사람의 삶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공부가 필요합니다.
안전하고 편안한 동시에 예술과 문화로서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건축물 설계하려면 무엇보다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서울 월드컵 경기장의 경우, 경기장은 둥글어야한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탈피해 팔각으로 설계하니 선수와 관객을 가장 가깝게 모아주는 활기찬 경기장이 되었습니다. 경복궁 역사의 경우 지하철을 타고 내리는 공간으로만 보지 않고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갤러리처럼 지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역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조선의 멋이 살아 숨 쉬는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김포공항역은 하늘에서 빛을 끌어와 지하는 깜깜하다는 고정관념을 깼습니다.
건축사님께서 멘토로 삼는 분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대학을 졸업하고 건축사로 일하면서 제 인생의 스승님을 만났습니다. 마흔 한 살까지 ‘공간 건축’이라는 곳에서 일했는데 그곳에서 김수근 선생님께 건축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김수근 선생님은 건축이 단지 집을 짓는 기술이 아니라 예술이자 문화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공간 건축’에서는 공연장을 두어 김덕수의 사물놀이패를 공연하고 ‘공간’이라는 종합예술지를 만들었습니다. 미술과 예술이 공존하는 장소이자 수많은 작가들과 교류하는 장으로서 가장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한마디로 건축사의 위상을 드높인 분입니다. 그러면서도 일찍이 국제적인 안목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 분과 함께 세계적인 건축물을 설계하게 되었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독립한 후에도 국제적인 굵직한 건축물을 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평소 더 나은 자기의 모습을 위해 노력하는 점은 무엇이 있나요?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건축사무소에 들어가 일을 시작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고 졸업 한지 10년 만에 대학원에 진학하여 다시 5년 만에 조경학 석사가 되었습니다. 건축사 시험도 세 번 만에 합격했습니다. 1964년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에 건축사가 되었으니 건축을 공부하기 시작해서 약 15년이 걸린 셈이며 이것은 이 분야에서 그리 늦은 편이 아닙니다. 그만큼 건축사 국가 자격을 따기가 쉽지 않습니다. 좋은 건축사가 되려면 마라톤 선수처럼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꾸준히 공부하는 자세를 갖추고 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 앞날을 설계해야합니다.
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건축은 과학과 예술 어느 한편으로 치우칠 수 없는 특수한 분야입니다. 그림에 소질이 있으면서 아울러 수학적, 과학적 사고를 동시에 갖춘 사람에게 가장 적합한 진로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을 전공한 뒤 각자의 적성에 따라 기술자의 길과 예술적인 설계자의 길이 있으며 건축행정 등 폭넓은 선택의 기회가 있습니다. 적성은 노력에 의해 개발될 수 있으므로 누구에게나 도전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건축사
건축사는 예술적인 재능과 창의력을 발휘해서 건물을 설계하고 설계에 따라 건물이 완성되는 과정을 감독하는 일을 한다. 건축 설계 사무소를 운영할 수 있는 면허를 가진 사람을 법적으로 ‘건축사’라고 부른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교부하는 면허로서 대략 그 과정을 요약하면, 5년 이상의 건축학 학위과정이 개설되어 인증을 받은 대학이나 혹은 건축(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3년 이상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건축사사무소에서 수련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건축사 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갖추게 된다. 1차 시험 합격자에게 한하여 2차 시험을 응시하게 되며 약사나 의사처럼 일정한 커트라인을 넘으면 거의 다 합격하는 시험이 아니기에 더욱 어려운 시험이다. 건축사는 다른 사람의 재산과 안전에 관한 사회적인 책임을 지는 중요한 전문가로서 큰 기업에 소속되어 일할 수 있고 변호사, 의사처럼 개인적으로 독립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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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년 창직자 인터뷰
- 가치공유컨설턴트
중장년의 가치로 중소기업의 가치를 높이자
김훈(65세) | 창직 아이템 :가치공유 컨설턴트
가치공유컨설턴트는 어떤 직업인가요?
전문업무종사자가 퇴직 후 자신의 분야 기업체에서 쌓은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 등에게 업무를 지원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문제해결을 컨설팅해주는 직업입니다. 청년실업이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젊은이들은 중소기업을 기피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도 대기업처럼 좋은 환경을 갖출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올리고 생산성을 높여야겠지요. 대기업 입장에서는 아주 작은 문제인데도, 중소기업에겐 회사의 생사가 걸려있는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솔루션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간단한 기계고장 수리방법에서부터 전문 업무 수행이나 제품생산 중 문제 발생 시 조치내용을 컨설팅해주고 직접 방문이 어려우면 스마트 폰으로 화상통화를 통해 원격으로 처리하는 방안도 고려중입니다. 또 유사사례가 탑재되어 있는 검색엔진을 통해 고객이 직접 문제원인과 해결책을 찾아서 볼 수도 있습니다.창직 아이템으로 선정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중소기업을 돕는 것이 가장 큰 취지이고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역량을 쌓은 퇴직자들에게 일자리가 생긴다는 점에서 무척 매력적이라 생각했습 니다. 현장의 전문성을 갖춘 분들의 노하우는 어떤 책자나 사이트에서도 찾을 수 없는 보물같은 소중한 경험입니다. 책에는 잘 나와 있지 않지만 실제 현장에서 빈번하게 부딪히는 문제들을 이분들은 체감하여 잘 알고 있고, 이를 필요로 하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쉽게 해결할 수 있지요. 미국에선 다양한 업종에서 이미 활성화가 되어 있는 직업이기도 합니다.창직을 사업화 하는 과정에서 예상되는 어려움은 무엇인지요?
20년 넘게 대기업에서 근무했었고 중공업, 전자, 정보기술 등 다양한 분야의 현장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컴퓨터사이언스를 7년간 공부하기도 했었구요. 또 2002년부터는 작게나마 회사도 운영하고 있는데 창직아이템과 관련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회사는 유사사례검색(CBR)시스템을 운영하는 곳으로 전문경험, 제품생산 및 품질관련 사례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보관하고 재활용하는 시스템입니다. 현재의 상황과 가장 유사한 과거 사례를 찾아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이지요. 유사한 일을 했었고 이것을 중장년의 경험과 결부한 컨설팅으로 발전시킨것이 바로 저의 창직 아이템입니다. 현장 경험이 충분히 있고, 시장상황을 파악하고 있다보니 다른 분들보다 예상되는 어려움은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앞으로의 계획은 어떤 것인지요?
퇴직자들, 혹은 본인의 일에 경험있는 사람들이 모인 협동조합을 만드는 것입니다. 회사와 고객을 연결하는 일을 하는 것이지요. 중장년의 노하우와 경험은 하루아침에 쌓이는 것이 아니고 귀한 것이지만 이 분들이 실제로 고객을 대상으로 컨설팅을 해줄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래서 컨설팅과 관련하여 태도, 자세, 기법 등을 잘 알기 위해 배우고자 합니다. IT는 그동안 해킹, 보이스피싱 등의 역기능도 많았지요. 컴퓨터를 이용해서 사람들이 순화되고 평화를 누리고 행복과 안정,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습니다. 삭막한 컴퓨터 안에 가치 있는 경험이 쌓여 있고 그 가치를 누군가 활용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누군가 첨단기술로 옆에서 도와주면 훨씬 생산성도 높고 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절된 아이디어와 경험을 이어주고 싶고, 가치로 더 큰 가치를 만드는 것이 저의 꿈이자 포부입니다.창직을 고민중인 중장년층에게 전할 말씀은?
물론 실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할 때까지 할 것이라는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또 주위의 반대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교훈을 구해야 합니다. 왜 반대를 하는지... 그리고 창직 아카데미나 창직 관련한 강좌에 적극 참여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창직은 책상에서 되는 게 아닙니다.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의견을 들어야 좋은 아이템도 만들어집니다. 또한 중장년층도 스마트 시대에 걸맞게 IT 기기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 속에 무궁무진한 아이디어가 숨어 있기도 하니까요. 젊은이의 감각도 높게 평가해 주어야 합니다. 혹 본인의 아이디어에 젊은이가 코멘트를 한다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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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창직자 인터뷰
- 소셜데이팅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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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있는 일(사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
‘이음 ’은 매일 낮 12시 30분, 20~30대 싱글남녀에게 하루에 한 명씩 운명의 짝을 소개해 주는 새로운 컨셉(=소셜데이팅)의 온라인데이팅 서비스입니다. 2010년 세계 최초로 ‘소셜데이팅’의 개념을 도입했으며 국내에 소셜데이팅 붐을 만들며 지금은 업계 1위로 성장했습니다. 설립 2년 만에 40쌍에 달하는 결혼 커플을 탄생시켜 주목을 받았으며, 현재까지 회원 수는 35만 명, 누적 매칭 성공 건수는 28만 쌍에 이릅니다.
사업아이템의 가치를 인정받아 실리콘밸리에서 20억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으며, 제 11회 여성창업경진대회 대상, 제6회 인터넷대상 국무총리상, KOTRA [나는 글로벌 벤처다 2012] 콘테스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이음’ 등장 전까지 국내에는 대학생에서 사회 초년생(20~30대)이 신뢰를 가지고 이용할 만한 소개팅의 주도적인 브랜드가 없었습니다. 크게 결혼정보시장과 ‘일회성 만남’을 목적으로 하는 음란성채팅시장으로 양극화된 상황이었죠. 특히 음란성채팅사이트 위주의 국내 온라인데이팅 서비스들은 공통적으로 ‘무제한 회원 검색, 무한정 데이트신청’을 제공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들 브랜드는 개인정보의 과잉노출과 깔끔하지 못한 구성으로 여성들에게 거부감을 형성해 대중성을 확보하지 못했고, 결국 브랜드화에도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음은 기존에 없던 하루에 한 명이라는 컨셉과 운명을 강조한 스토리텔링, 자신의 취향과 선호도를 TAG(키워드)형태로 입력하는 모바일 최적화 데이터구조, 여성에게 신뢰와 호감을 얻는 인터페이스(검색불가!), Push형 서비스(한 번만 데이터를 입력하면 유저가 할 일은 zero)와 같은 차별점을 통해 런칭할 때부터 지금까지 2년에 걸쳐 온라인데이팅 서비스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 처음 어떻게 이 아이디어(일)를 생각하게 된 건가요?
- 처음부터 창업에 큰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는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NC소프트에 근무하고 있던 시절에 같은 뜻을 가진 지인 한 분을 만나 의기투합하게 되었고, 파트타임으로 서비스를 개발해주는 친구들 3명의 도움을 받아서 서비스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시초였습니다. 그 때가 2010년 3월 무렵이었습니다.(이후 2010년 5월에 OBT 버전을 출시했습니다.) 사실 실행에 옮길 수 있었던 것은 직장 입사 초기의 경험에서 어느 정도 확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다닐 때 소개팅을 정말 많이 한 편이었고, 직장에 들어가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직장에 들어가니까 소개팅을 시켜주겠다는 사람도, 누군가를 만날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을 텐데 왜 소개팅을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제대로 없는 거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창직 아이템의 시장성은 어떻게 파악하였나요?
- 엔씨소프트 사업팀에 근무하며 해외 서비스 동향을 살펴보던 중 온라인데이팅 시장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또 스마트폰으로 인해 SNS가 급성장하고 있는 시기이기 때문에 지금이 이 시장을 활성화하는 데 적기라는 생각에 망설임 없이 도전하게 됐습니다. 경험이 없었으니 무서운 줄 모르고 용기 있게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남 서비스가 레드오션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음란성 온라인 채팅 서비스와 결혼정보업체만 있을 뿐, 그 사이의 ‘가볍고 밝은 소개팅’에 대한 온라인 사업은 전무한 상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틈새시장을 개척해 블루오션에 발을 들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온라인 데이팅시장은 4조원 규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 본인의 능력, 지식, 대학의 전공은 창직과 연관성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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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했는데 학창시절부터 ‘채널’에 대한 관심이 무척 많았습니다.
똑같은 사람을 상대하는데도 메일, 전화, 문자와 같이 채널이 바뀌면 대화양식이나 대화내용이 달라지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채널’을 연구하고 싶은 마음에 이를 이론적으로 공부하는 커뮤니케이션학부터 미대 미디어 프로그래밍, 정신분석학까지 과나 학점에 상관없이 다양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또한 정보문화학이라는 연합전공을 전공한 것이 지금의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게임이나 미디어아트를 만드는 데 컴퓨터 공학과 친구들이 개발하고 디자인과 친구들이 디자인하고 저는 기획을 맡았습니다. 이때 새로운 채널에 대한 호기심이 더 많아졌습니다. 이음 또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새로운 채널이라는 측면에서 제가 가진 호기심과 맞닿아 있었고 이것이 자연스럽게 ‘이음’으로 연결된 것 같습니다 - 창직 준비 과정에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들었나요?
- 초창기에는 같이 사업을 시작한 친구들끼리 사비를 털어서 진행하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엔젤투자자들을 구한 덕분에 그 이후로는 자금 압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초기 모델을 시연하고 몇 천만 원 정도의 자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그 후 2010년 여성창업경진대회 대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언론에도 많이 소개가 되었고 1,000만원이라는 창업자금도 지원받게 되어서 수월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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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해주세요. -
퇴사 이후 서울대 동문 친구들과 함께 서울 서초구 잠원동의 한 회사 사무실을 임대해 사업을 시작했었습니다. 책상 2개, 컴퓨터 2대로 시작한 사업이었습니다. 처음엔 저를 포함해 3~4명 정도가 학원 사무실 일부를 빌려 비는 시간에 모여서 일했습니다. 모바일 환경에서 각자에게 맞는 상대를 찾을 수 있는 로직을 만들고 프로그램화 하는 과정에서 두 번의 고비가 있었습니다.
시범서비스가 끝나고 유료화를 해야 할 시점인데 주변에서 앞서 프리챌 등 유료화를 시도했다가 주저앉은 예를 들면서 부정적으로 봤습니다. 각자 주머니를 털어 일하는데 한계가 왔기 때문에 동시에 투자자도 물색해야 했습니다. 금융가를 돌면서 여러 차례 미팅했고, 한번 실패할 때마다 그들이 지적했던 것, 궁금해 했던 점들을 보강해 나갔습니다. 그래서 초기 창업자금은 엔씨소프트를 다니기 전 벤처인들의 모임에서 만난 고영하 ‘고벤처’ 대표의 주선을 통해 9,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출발했고 사업 중간 중간에 증자를 했습니다.
서비스적으로는 이음이라는 서비스에 대한 구상과 성공에 대한 확신은 있었지만, 프로그램 개발과 데이터 관리 등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기도 했습니다. 초기 개발자들과 의견 조율을 제대로 하지 못해 사이트 론칭 시기가 두 달 넘게 미뤄지기도 했습니다. 서비스를 앞두고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출범 날짜를 받았던 게 실수였습니다. 이 같은 문제를 경험하고 나서 자연스럽게 개발 뿐 아니라 경영, 마케팅, 인사 등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더 공부했습니다. - 창직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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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 회원가입 절차는 생각보다 까다롭습니다.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이음신국에 입국할 수 없습니다. 우선 자신의 기본정보 입력은 필수이고 이어 이음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프로필 작성입니다. 필수 키워드는 성격/캐릭터, 취미, 외모, Place, I Like, I Have, I Want 등 7개, 선택 키워드는 출신학교와 직업 2가지입니다.
여기에 회원 검색 자체가 불가능하고 운영자가 헤게모니를 가지고 있는 푸시형 서비스라는 점도 믿음을 줍니다. 운영자가 하루에 한 명씩 매칭해주는 사람 외에는 다른 사람의 정보를 이용자가 직접 확인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듯 정보가 함부로 공개되지 않는 점이 온라인 데이팅의 위험성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개인 신상이 함부로 노출되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에 기존의 온라인 만남보다 믿을 만합니다. 또 가입 절차가 까다로운 만큼 가벼운 만남보다 자신의 이상형을 만날 확률도 높아 회원들이 만족해하고 있습니다.
이음은 현재 40만 명의 회원이 등록되었고 월 매출은 약 2억 정도입니다 아직 '성공'이라는 마침표를 찍기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적은 수준은 아닙니다. 이 수준에 오르기까지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 이처럼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과 목표를 잊지 않고 끈질기게 노력한 결과 만들어진 게 바로 이음입니다. 그만큼 이음에 대한 기대도 높습니다. 현재 이음의 직원 수는 40명입니다. 정직원 2명, 파트타임 3명으로 다른 회사의 사무실 한편에 책상 몇 개를 빌려서 시작했던 것에 비하면 덩치가 많이 커졌습니다. 회원 수 100만 명 정도가 되면 이제 한 단계 뛰어 넘었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음소시어스의 최종 목표가 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장 잘 연결해주는 회사가 되는 것인 만큼 한 단계 성공했다고 여기는 시점은 100만 명을 넘어 섰을 때일 듯합니다.- 창작아이디어 도출 후 창직에 이르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면?
- 초창기에는 같이 사업을 시작한 친구들끼리 사비를 털어서 진행하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엔젤투자자들을 구한 덕분에 그 이후로는 자금 압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초기 모델을 시연하고 몇 천 만원정도의 자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그 후 2010년 11월말에 정식 런칭을 했는데 런칭 1개월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는 성과를 냈습니다. 그 덕분에 실리콘밸리에서 20억 이상의 투자금도 유치했습니다.
투자자금 유치의 노하우는 특별히 없습니다. 현재의 수치를 잘 관리하고 검증 받아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비전이나 경영진의 의지를 증명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이런 부분들을 주시하고 그 속에서 인사이트를 찾아 개선하고 비전을 세우는 것에 주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창직 과정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 창업 초기 개발자들과 의견 조율을 제대로 못해 사이트 런칭 시기가 두 달 넘게 미뤄진 적이 있는데 그때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어떤 서비스를 할 때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계산을 못하고 무조건 출범 날짜를 못 박아 뒀던 것이 실수였습니다. 그 때 이후로 개발뿐만 아니라 경영, 마케팅, 인사 등 부족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더 공부하게 됐습니다. 투자를 유치하려면 사업 현황과 관련된 수치를 잘 관리하고 검증 받는 게 중요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비전이나 경영진의 의지를 증명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그래서 항상 이런 부분들을 언제나 주시할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인사이트를 찾아 개선하고 비전을 세우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창직 과정에서 제3기관, 인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면?
어떤 인물, 어떤 기관, 어떤 내용인가요?
- 초기에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우수 중소기업에 주는 ‘벤처투자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또 여성창업 경진대회에 수상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이 연락을 해왔고 이를 통해 수월하게 기관투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의 약점(경험)을 보완해주는 것은 풍부한 경험을 가진 주주 및 고문진입니다.
고영하 고벤처 회장이 주주이자 고문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고벤처포럼은 10여명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한 회에 300명씩 참석하는 대규모 모임이 되었습니다. 그만큼 창업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고벤처포럼을 많이 찾고 있으며 고벤처포럼이 창업 붐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스타트업 기업들에겐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과 정보, 네트워크 등이 절실한데요, 이런 목마름을 채워주는 곳이 바로 고벤처포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이음 역시 고벤처로부터 단순히 금전적인 투자만 받은 것이 아니었고 인력 소개에서부터 사무실 및 관련업체 담당자 소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있는 좋은 분들과의 네트워크 및 정보를 지원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는 창업 초기에 회사를 꾸려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창직인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세가 있다면?- 확실히 예전보다 벤처회사를 시작하기 좋은 환경인 건 맞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시작하는데, 결국은 끈기인 것 같아요. 어떤 서비스가 출시하자마자 성공할 확률은 적습니다. 그래서 끈기가 제일 중요할 것 같습니다. 열정은 창업하는 사람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고 그 열정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끈기있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 롤모델이 있나요?
- 물리학자 리처드파인만과 버진인터랙티브의 리처드브랜슨을 존경합니다.
-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 창직 전선에 들어선 저에게 ‘안락함’이라는 단어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입니다. 안정된 서비스를 만들어 내기 위한 사업기획은 물론, 이음만의 문화를 담은 스토리텔링, 서비스를 온라인상에서 구현해내는 유능한 개발자를 찾아 개발자와 함께 밤을 새워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물론,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까지 어느 것 하나 손길이 미치지 않는 부분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살아있다’는 만족감에 더 큰 꿈을 꿀 수 있는 용기와 열정을 채워가고 있죠. 저는 문화, 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이음의 성공적인 경영을 통해 현장경험을 쌓아 언젠가는 우리나라 문화, 예술분야의 저변을 확대하고 성장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그 꿈은 문화예술분야 사업가로 혹은, 문화, 예술의 정책을 관장하는 수장이 되어 실현시켜낼지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건 제가 이뤄내고자 하는 목표는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일상의 삶 속에 예술의 향기를 향유하며 행복하게 사는 삶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후배에게 전하고 싶은 말?
- 물론 창직은 고되고 힘듭니다. 대신 그 외에 떨어지는 가치들이 엄청나게 많지요. 주말까지 일 생각을 해야 할 정도로 바쁘지만, 일반 회사를 다닐 때보다 체감 노동은 오히려 적습니다. 자기가 주체가 되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무실 분위기를 내 뜻대로 활기차게 가져갈 수 있는 그런 행위는 ‘그 자체로 일에 대한 보상’입니다.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그만큼 크게 성장하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딱 한 가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꾸준할 것’입니다. 열정과 톡톡 튀는 사고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20대의 매력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않고 꾸준히 가는 것’은 20대에게 부족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이를 지속적으로 상기하면서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직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끈기’를 가져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실 20대는 그 어떤 시기보다 열정과 패기로 뭉쳐있는 나이이고, 그것을 자산으로 창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열정에 쉽게 지치지 않고 일을 밀고 나가는 ‘끈기 있는 태도’까지 가지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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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직 성공기
- 온라인평판관리사
한승범 | 맥신 코리아 대표
현재 하고 있는 사업을 소개해 주시지요.
저는 현재 ‘맥신 코리아’라는 온라인 평판관리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평판관리란 기업, 개인의 온라인상의 평판을 관리, 제고하는 것으로 크게 온라인 상의 원치 않는 사진이나 글, 동영상 등의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공인이나 회사브랜드의 온라인 명성을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설정해 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창직 이전에는 어떤 경력이 있으셨는지요?
2000년 부모님의 한복사업을 돕고자 독학으로 컴퓨터와 홈페이지 제작을 공부하여 한복홈페이지를 만들어드렸는데 당시 야후코리아에 검색 1위가 되면서 매출이 1억에 달했습니다. 이후 전공을 살려 대학강단에도 섰고 2006년에는 경기도 지사 선거캠프에 사이버팀장으로 활약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때 포털사이트 알고리즘의 99%를 이해했다고 호언할 정도로 포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이후 한양대에서 연구교수로 있다가 2008년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는데 온라인 마케팅에서 최고의 실력을 갖추었다는 자신감에서 과감히 안정적인 대학을 포기한 것입니다. 물론 부모님사업을 도와드리는 것이 1차 목표였는데 2년 만에 한복대여 1위 브랜드가 되고 19개의 지점을 두기기까지 성공시켰습니다. 당연히 돈도 많이 벌었지요. 그러나 금융위기로 인해 매출이 급감했을 때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프랜차이즈 사업실패 후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받았고 절치부심하던 차에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일이 뭔가를 심각하게 고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온라인평판관리>였습니다. 이 분야만큼은 남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있고 남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실력도 갖추었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사업을 시작해서 오늘의 맥신코리아를 세우게 되었습니다.그래도 ‘온라인평판관리’는 생소한 분야였을텐데요?
프랜차이즈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겪고 나서 저의 진정한 경쟁력은 무엇인가 심각한 고민을 했습니다. 한복대여 프랜차이즈 사업의 성공도 결국 ‘온라인평판관리’의 힘이었습니다.
2년 만에 싸구려 한복을 명품한복으로 탈바꿈시키는 작업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닙니다. 브랜딩 작업이 대부분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것을 감안할 때 온라인을 지배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저의 온라인상의 경쟁력을 적절한 용어로 규정할 수 없었는데‘온라인평판 관리’가 가장 잘 들어맞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온라인에 대한 남다른 이해도, 온라인에 대한 남다른 호기심, 그리고 통찰력이 결국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였습니다.창직 아이템을 구상하면서 생긴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온라인평판관리란 창직 아이템을 결정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세상에 없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모르는 직업과 일을 어떻게 홍보할 것인가가 가장 난관이었습니다. 이 일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데 누가 우리 회사에 의뢰를 합니까? 더구나 전 사업의 실패로 8억의 빚을 지고 있는 상태에서 투자는 언감생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온라인이 주가 되는 세상에는 온라인상의 평판을 좌지우지할 수만 있다면 커다란 이익이 발생할 것이란 확신이 있었습니다. 악플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듯이 선플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온라인상의 악의적인 게시물들로 고통받고 자살도 결심하는 사람들을 막겠다는 선에 대한 의지도 있었습니다. 가장 큰 난관이었던 자금 부족과 인식의 결핍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스스로 ‘온라인평판관리’란 일과 ‘맥신코리아’를 널리 알리지 못한다면 과연 고객의 평판을 관리할 수 있을까?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즉, 스스로 알려야한다는 당위성이 있었고 날이 갈수록 사람들의 ‘온라인평판관리’ 일에 대한 이해도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상의 기업위기가 터지면서 맥신코리아가 주목 받기 시작했고 결국 약간의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습니다.다른 사람보다 먼저 아이템을 찾아‘선점’하는 것이 성공요인이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새로운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선점효과’입니다. ‘퐁퐁’처럼 브랜드를 보통명사화 시키는 것이 사업에서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저 역시 ‘선점효과’를 위해 목숨걸고 뛰었고 오늘의 브랜드파워 1위에 오르는데도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선점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은 자금부족으로 투자여력이 전혀 없었다는 점과 아무도 몰라주는 일이었습니다. 자금부족은 피눈물나는 과정을 거쳐 차츰 극복했고 온라인 평판관리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회사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대대적인 ‘온라인 평판관리’를 했습니다. 물론 운도 어느 정도 따라주었던 것 같습니다.창직 준비 과정에서 특별히 주의할 점이나 알아야 할 점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창직이란 새로운 변화가 저절로 오기도 하지만 스스로 변화를 만들기도 합니다. 또 불확실한 미래의 직업을 만들어내는 약간은 황당한 일일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직접 만들어 내거나 아니면 미래의 직업을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얻기 위해서는 절대로 남들과 같이 행동하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신문, 잡지, 책 등을 통해 미래의 변화를 감지하고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하지요.
창직 준비는 일반 치킨집 창업과는 다릅니다. 치킨집이야 상권 좋은 곳을 고르고, 맛있는 치킨 만드는 비법을 알면되지만 ‘창직’이란 세상에 없는 것을 찾아내거나 만들어내야 하니까요. 제대로 창직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감수해야 하는 험난한 길입니다. 이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공부와 경험을 통해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깊이있는 준비가 실패에 따른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온라인 마케팅 실력을 믿고 겁 없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회계와 세무에 대한 지식이 없다보니 세금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창직을 준비중인 다른 분들도 본인의 관심분야뿐만 아니라 회계, 세무 등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알고 계시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자살을 결심한 고객의 목숨을 살려준 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원치 않는 인터넷 게시물에 의해 상처받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남들은 쉽게 생각하고 올리는 단 한 장의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주말에 고객으로부터 급한 연락을 받았습니다. 어릴적 장난삼아 찍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어 죽음까지 고민하며 혹시나 하고 연락을 했다고 하더군요. 저희가 동영상을 찾아 삭제했고 그 고객은 현재 잘 지내고 있는걸 보면서 일의 보람도 크게 느낍니다.창직을 고민중인 분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보통 사업에 성공하는 확률을 5%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사업가의 1%만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창직은 아마도 0.1%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힘들어도 그 과실은 달콤할 것입니다.
누구나 스티브 잡스와 같은 위대한 사업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통찰력(Insight)를 키워야 합니다. 통찰력은 사업가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입니다. 미래에 대한 혜안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며 남들과 같이 살아서는 절대로 통찰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저는 50살입니다. 앞으로 최소한 30년을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막막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 공부했던 것과 2000년 공부했던 HTML과 같은 것으로 지금까지 버텨왔었습니다. 하지만 그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30년을 더 일하며 먹고 살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19 Again!” 프로젝트를 가동했습니다. 19살 고3 시절 체력, 건강, 공부,열정을 다시 가지고자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120kg 초고도 비만에서 75kg의 정상인으로 만들었고, 10가지도 넘던 만성질병을 극복했습니다. 뇌도 다시 젊게 가동해 현재는 하루에 한 권 책을 읽을 정도의 지적능력을 확보했습니다. 여러분도 제 나이와 비슷할 겁니다. 여러분도 최소 30년을 열심히 일하고 50년을 건강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도 20대와 같이 만들고 뇌도 어린애처럼 만들어야 합니다.
창직의 길은 힘듭니다. 그만한 준비가 되어야 과실이 여러분께 돌아갈 것입니다. 요즘에 부업으로 책을 쓰고 있습니다. 첫 장에“신이시여 정녕 제가 이 책을 썼습니까?”라고 적었습니다.
여러분이 위대한 창직으로 “신이시여 정녕 제가 이 회사를 만들었습니까?”라고 말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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