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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성공수기

취업의 모든 것 취업이야기 취업성공수기

나에게 보증 수표가
되어준 워크넷

세월이 변천하고 발전을 이룩하면서 붙게되는 단어가 있다면 내 생각에는 “발전”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싶다. 우리나라는 이른바 산업화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에 이르면서 점차적으로 시대의 기능이 발전하고 동시에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중반에는 인터넷이 존재하였지만 아직은 보편화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1990년대 후반 들어서 대폭적으로 보급되어 누구에게나 더 편하고 더 신속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되었던 것을 지난날의 세월을 돌이켜 보며 깨닫게 된다. 그와 맞물려 취업사이트 또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게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적성에 맞고 교통이 편리하고 근무환경이 좋은 곳에 취업을 하여 일하기를 열망한다. 그 두 가지 조건을 알아보려 사람들은 각종 취업사이트에서 그 조건들을 찾고 조금이라도 자기의 조건에 근접한 곳에 입사지원을 하고 면접을 보고 취업을 하게 된다. 지금 현재 현존하는 수많은 취업사이트가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내가 가야 할 길을 알려주고 사람에게 할 수 있다는 확고한 희망을 소유하고 있을 때 장애는 결코 장애가 될 수 없다는 크나큰 진리를 알게 해 준 고용노동부 워크넷 취업사이트가 큰 보배가 아닐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현재 지체장애 4급을 판정받은 상태다. 몸이 심하게 불편한 것은 아니지만 다리를 어려서부터 약간 절고 있다. 중학교 시절 내가 가진 장애에 설상가상으로 폐렴까지 앓게 되어 중학교 3학년 때 학교를 자퇴하게 되었다. 검정고시로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7년, 그때 당시에 나는 인터넷을 모를 때였다. 그래서 ‘벼*시장’이나 ‘*차로’ 등의 지역신문을 보고 일자리를 알아보게 되었다. 여러 가지 직종의 일이 있었지만 나는 어딜 가나 내가 가진 장애로 인하여 퇴짜를 맞기 일쑤였고 무슨 일 인가를 하게 되면 적응을 하지 못하여 얼마 안가서 그만두게 되었다.


6년 동안을 제대로 된 직장을 가져보지 못했던 나는 2003년도 어느 날부터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여러 취업 사이트 중에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취업사이트인 워크넷에 접속을 하게 되었다. 우선 워크넷이라는 취업사이트가 온라인상에 보편화되기 이전에는 고용노동부에서 운영하는 서울인력은행이라는 것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1990년대 후반에 나도 그곳에서 일자리를 알아보았던 때가 있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서울인력은행을 통해 오프라인상으로 이루어졌던 구인, 구직업무는 서서히 온라인상에 뿌리를 내려 워크넷으로 통합되었던 것을 기억해 보게 된다. 난생처음으로 워크넷에 접속하여 여러 직종을 검색하던 중 내 눈에 들어왔던 것은 노인요양원에서 노인들을 돌보는 8개월 단기직의 ‘노인돌보미’를 구하고 있다는 구인광고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한 번 지원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고 그 곳의 채용담당자에게 전화를 해보게 되었다.


“여보세요.”
“네, 노인요양원입니다.”
“궁금한게 있어서 전화드렸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노인돌보미를 구하시신다고 해서 전화드렸는데요. 제가 장애인인데 지원이 가능합니까?”
“네, 특별히 상관은 없는데 많이 불편하신가요?”
“아뇨, 그냥 다리를 약간 저는 수준입니다.”
“그럼, 면접 보러 한번 와보시지요.”


그래서 나는 경기도 양주시에 위치한 그 노인요양원에 면접을 보고자 방문을 하게 되었다. 채용담당자와 면접을 보게 되었고 채용담당자는 내게 물었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대부분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돌보는 일이기에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 수 있을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시켜만 주신다면 힘이 들더라도 감수하고 열심히 한 번 해보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돌아 가시구요. 제가 며칠 후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채용담당자와 그렇게 면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그 후로 며칠 동안 계속 노인요양원에서 내게 연락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게 되었다. 10일정도가 지났을까? 내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네, 000씨 되시죠?”
“네, 그렇습니다.”
“여기 저번에 면접 보셨던 노인요양원인데요. 내일부터 근무가능하세요?”
“네, 가능합니다. 그럼 저를 채용하시겠다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내일 9시까지 요양원으로 오시면 되겠습니다.”


채용확정 소식을 듣고 그토록 기분이 좋았던 적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몸이 불편한 장애인이지만 나를 채용해 준 것에 대해 나는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그 다음날부터 그 곳에서 전임자에게 업무요령을 지시받고 조금씩, 조금씩 업무를 파악하며 적응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그곳에 처음 와서 하는 일은 거동이 불편하신 노인들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목욕을 시키는 일과 노인들의 침상을 깨끗이 청소하며 침대에 침대보를 새것으로 깔아드리는 일을 하게 되었고, 대걸레로 병동바닥을 닦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고나면 내 마음도 닦는 것 같아 기분이 상쾌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요양보호사라는 생각보다 자원봉사자라고 생각하고 일을 하니 어떠한 일이 생기건 무난히 해낼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 곳에서 그렇게 8개월 동안 일을 하며 중간에 나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계약기간이 만료되고 나는 노인요양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또 다시 워크넷을 통해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는데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니 내가 갈 수 있는 곳의 범위가 더욱 폭넓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여러 곳에서 면접을 보는데 모든 채용담당자들이 내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보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장애를 딛고 8개월간 이어왔던 나의 경력을 높이 샀던 기억이 있다. 나는 현재 경기도 의정부시에 있는 노인요양원에서 경력직으로 대우를 받고 보다 높은 임금을 받게 되었고 전에 일하던 직장보다 더욱 좋은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


나는 8년째 근무를 하고 있으며 내가 일했던 경험을 잘 살려 노인복지사가 되고자 하는 꿈을 꾸며 서울사이버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을 하여 현재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워크넷은 그렇게 지체장애자인 나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알게 해줬고 앞으로 내가 가야할 길을 안내해 주었다. 무엇보다 워크넷에 감사한 것은 내가 장애인이라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아 준 것이라는 것이다. 워크넷이 없었다면 현재 노인복지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나는 없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 나는 누구일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며 정체성을 비관했던 나에게 꿈을 심어주고 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준 것은 누가 뭐래도 나는 ‘워크넷’이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고로 워크넷을 통하여 얻은 은혜는 내 평생에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와 같이 장애를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워크넷이라는 축복의 통로를 알려주어 그들도 용기를 얻고 자신의 일을 갖고 더 밝은 미래로 힘차게 발돋움 할 수 있게 하고 싶다. 내가 장애를 갖고 있는 장애인으로서 누군가가 나에게 “너는 할 수 있어.”라는 말 한마디보다 어디선가 나를 믿고 채용해 줄 수 있도록 연결고리가 되어주고 나의 보증수표가 되어준 워크넷이 오늘날까지 보다 더 큰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나는 오늘도 나의 경험과 관련된 어떠한 일들이 구인광고에 올라와 있나? 스마트폰을 통해 워크넷에 접속해 본다. 모든 이의 손 안에 있는 영원한 취업길잡이 워크넷이 아직은 일을 할 수 있는 체력과 일을 하고자 하는 열망이 강한 노인들과 일손을 놓고 있는 청년들에게 양질의 취업정보를 제공하여 노인들에게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즐거움을 청년들에게는 일을 통한 밝은 미래를 안겨주고 청년실업률을 낮추어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취업의 기쁨을 누리며 자기가 가야 할 길을 찾고 그 길에 들어섰을 때 기쁨을 충만하게 누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히 가져 본다. 일하는 모습이 있어 아름다운 경제대국 대한민국을 나는 이 순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