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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성공수기

취업의 모든 것 취업이야기 취업성공수기

워크넷은
내 인생의 동반자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운이 좋게도 서울에 있는 작은 기업에 취업을 했다. 나도 매일 매일 출근할 곳이 있다는 설레임과 사회인으로서 무엇인가 기여할 수 있다는 것에 너무 기뻤다. 하지만 이러한 기쁨은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임신을 한 상태로 거래처에 가서 일을 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근무 하는데 아무렇지 않다고 했지만 사장님과 주변의 동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고 나도 회사에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출산하기 전에 그만 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직장생활 3년이 채 되기도 전에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그만두어야 했다. 서울에는 연고도 없고 본가와 시댁이 부산이라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 후 아이 하나를 더 낳았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남편의 월급만 쳐다보면서 아이 둘을 키우기란 쉽지 않았다. 남편은 작은 기업에서 기계 부품을 배달하여 주고 한 달에 100만원 조금 넘는 돈을 가져오는 것이 전부였다. 매달 매달 살아가는 것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그래도 “나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이 많을 거야. 젊으니까 다할 수 있어. 열심히 노력하면 잘 살 수 있을거야” 라고 늘 스스로를 위안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래도 남편의 월급이 매년 조금씩 오르긴 했지만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것은 고통에 가까웠다. 엄마로서 아이들을 남부럽게 키우지는 못해도 남들만큼을 해 주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뼈가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아이들을 올바로 키우고 나 자신의 삶도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 길은 바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5년 넘게 전업주부로서 있었던 나에게 대학졸업장 하나만 가지고 일자리를 얻는다는 것은 그때 당시에는 불가능이었다. 만일 그때 워크넷이 있었다면......
집 가까이에 있으면서 아이들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을 하다가 같은 동네에사는 언니들로부터 자동차 부품에 들어가는 전선을 연결하는 부업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부업도 그동안 동네 언니들과 원만하게 지낸 덕분이었다. 하루 종일 전선 케이블을 연결하고 받는 돈은 만원 남짓이었다. 손이 붙고 허리가 아파도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과 그 돈으로 아이들에게 맛있는 반찬 하나 더 해줄 수 있다는 게 큰 행복이었다. 하지만 ‘ 나는 여기서 멈출 수 없다 ’고 생각했다. 나도 어엿한 직장인으로 다시 사회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던 터라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생각을 했다.

우유배달과 자격증 공부를 병행하다

전선케이블을 연결하는 일은 시간에 비해서 버는 돈이 너무 작았다. 중학교시절 신문배달을 하면서 학교에 다녔던 생각이 떠올랐고, 인근 동네에 새벽에 우유배달을 하고 오후에 자격증 공부를 하면 좀 더 나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우유배달 대리점 사장님을 찾아갔다. 사장님께 우유배달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힘든 일이고, 수금을 제대로 해 와야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정말 할 수 있겠냐고 수차례 되묻는 것이었다. 나는 사장님께 그 일을 시켜주시면 열심히 하겠다고 수차례 말씀 드리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사장님은 나의 모습을 보고 한 달만 먼저 해 보라 하셨다. 난 그 일을 5년 동안이나 지속할 수 있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7시가 되기 전까지 우유배달을 했다. 추운 겨울날 새벽에 우유를 배달하는 일을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더 속상했던 것은 우유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다른 동네로 이사를 가는 사람들이었다. 사정이야 있겠지만 정말 미웠고 왜 그럴까? 하는 생각도 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받아야 할 아르바이트비에서 당연히 차감됐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어려움이 더 큰 용기가 되었다. 새벽에 우유를 배달하고 집에 와서 아이들을 돌본 후에 오후에 공부하는 데 집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더 새로웠고 내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유배달을 하면서 혼자 공부를 하다가 집근처에 여성인력개발센터라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곳에 가서보니 내가 부족한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처음 시작한 공부는 컴퓨터를 배우는 것이었다. 직장에서 필요로 하는 기초 컴퓨터 활용에 대해서 배우기 시작했고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었다. 그 후로 초등학교 돌봄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초등학교 수학지도사, 음악줄넘기 지도사, 논술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자격증을 하나씩 딸 때마다 행복했고, 그 성취감은 새벽에 우유 배달하면서 힘들었던 것들을 모두 날려 버릴 수 있었다. 드디어 나는 우유배달을 그만두고 집 근처에 보습학원에 시간제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초등학교 학생들의 학업 성취를 높일 수 있도록 부족한 공부를 도와주고 가르치는 일이었다. 우유배달과 학습을 병행한 첫 성취가 바로 보습학원에 선생님이 된것이었다. 그 동안 힘들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내가 직장을 그만 둔지 거의 7년 만에 집에서 나와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었다. 수입은 작았지만 그 동안 노력해서 취득한 자격증을 가지고 일자리를 얻었다는데 너무 행복했다.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워크넷과 만나다

언젠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누군가의 일자리를 찾아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평소 해오던 나는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직업상담사는 나처럼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보람 있는 일 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후에 보습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전에 오전에는 동네 평생학습관에서 직업상담사가 되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나에게 직업상담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심리상담이론, 직업학과 관련한 과목들은 아주 생소하여 처음에는 정말 어려움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노력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부족한 것은 인터넷강의를 듣기도 하면서 보충은 했다. 아이들을 챙기면서 공부를 하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고 지금도 많은 경력단절 여성들이 사회에 복귀하기 위해서 부족한 수면시간을 감수하면서 공부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나와 같은 길은 준비하는 많은 경력단절 여성분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고, 나라에서 운영하는 워크넷이라는 아주 좋은 싸이트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나는 1년 동안을 준비한 끝에 직업상담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내가 직업상담사를 준비하면서 가장 도움이 됐던 것이 바로 워크넷이었다. 취업과 관련한 다양한 정보들로 가득했고 편리하게 필요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으며, 내가 자격증을 취득하면 많은 일자리에 지원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자격증을 준비해도 갈 곳이 없거나 불확실 하다면 막연히 공부한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 뒤로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내일배움카드를 이용하여 직업상담사에게 필요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할 수 있었다. MBTI, 에니어그램, CAP+ 강사 양성과정 , 심리상담과정등을 이수할 수 있었다.

드디어 대학교 취업지원관이 되다

직업상담사,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워크넷을 통하여 민간 취업알선 기관에 정식 사원으로 취업을 하였다. 워크넷을 통해 계속 입사지원을 하던 중에 민간취업알선 기관으로부터 면접을 오라는 연락을 받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면접을 볼 때는 그냥 담담했는데 대학 졸업 후 10년이 다 되어가는 즈음에 다시 취업 면접 통보를 받으니 심장이 터질듯 기쁘면서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엄습해 왔다. 면접장에서 나는 그동안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정말로 내 일을 해보고 싶다고 했고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 드렸다. 그래서인지 3일 후에 합격통보를 받았고 정식사원으로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첫 출근 하던 날 버스 안에는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나 혼자 버스를 전세내서 타고 가는 기분 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정말 열심히 취업상담과 알선업무를 수행했고 그것이 오롯이 나의 경력이 되었다. 나는 여기서 머물지 않았다. 청년들의 취업진로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최근에는 많은 청년들이 취업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대학을 나와도 자신의 진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거나 어떻게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지 모르는 대학생이 너무 많다. 슬픈 현실이긴 하지만 얼마든지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워크넷이 많은 학생들의 앞길에도 나처럼 도움을 줄 것이라고 나는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 취업지원관에 도전하기로 했다. 당연히 워크넷이 있기에 내가 정보를 얻고 입사지원서를 작성하여 지원하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고, 워크넷은 늘 나와 함께하는 동반자기 때문이다. 나는 평소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워크넷에 작성되어 있는 내 이력서에 수정을 하여 올려 놓았다. 이런 점은 취업을 준비하면서 공부하고 있는 많은 경력단절 여성분들이 참고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워크넷 취업지원관 모집공고를 보고 나는 안양에 있는 D 대학교 외에 민간 취업 전문회사 3곳에 입사지원을 했다. 대학을 비롯하여 모든 곳에서 서류전형 합격을 하였고, 면접을 볼 수 있었다. 요즘같이 취업하기 어려운 시절에 지원한 기업 모든 곳에서 서류전형 합격 통보를 받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열심히 노력하고 올바른 준비를 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


나는 D 대학과 민간 취업기업 두 곳에서 최종합격 하였다. 대학의 취업지원관은 계약직이었고, 민간 취업전문기업은 정규직이었다. 나는 고심 끝에 대학교 취업지원관을 택했다. 그 이유는 대학생들의 진로와 관련하여 도움을 주는 것이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계속 공부하면서 나를 채찍하고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전문적인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대학교에 취업지원관으로 있으면서 한국기술교육대학교 대학원 인력개발학과 석사과정에 진학을 하였다.


워크넷이 노사발전재단에서 컨설턴트로 안내하다

대학원에서는 우리나라 고용정책과 직업정보, 기업 경영과 관련한 다양한 과목은 물론 전문 상담사가 되기 위해 심리상담기법, 실습 등 많은 과목들을 수강하였고, 이제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있다. 나의 목표는 취업과 진로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은 경험에 의해서 일을 해왔다면 전문지식을 가지고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기 때문이다. 나는 2년 동안 대학교 취업지원관을 마치고 전문기관을 찾기로 했다. 어느날 노사발전 재단에서 연락이 왔다. 워크넷에 있는 나의 이력사항을 보고 자격요건을 갖추고 있는데 입사지원을 하지 않겠냐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두말없이 입사지원을 했다. 워크넷에는 나의 모든 정보가 담겨있었기 때문에 입사지원은 너무 쉬웠다. 이것이 워크넷의 힘이고 대한민국 경단여성의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는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나는 지금 노사발전재단에서 컨설턴트로 일하고 있다. 워크넷이 나의 인생을 안내하고 바꾸어 주었다. 전선 연결하는 부업을 하고, 우유배달을 하던 전업주부가 컨설턴트로서 우리나라 일자리 고용창출에 미약하나마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워크넷의 전도사로서 일자리를 찾는 많은 경력단절 여성분들과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