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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성공수기

취업의 모든 것 취업이야기 취업성공수기

2주 초고속 취업 성공기

다른 많은 학생들이 그러하듯, 저 또한 대학을 다니며 아르바이트와 학업, 가사를 병행하였습니다. 특히 저의 경우에는, 자녀 양육까지 병행하다 보니 대학 입학 후 졸업장을 따기까지 무려 9년 6개월이라는 세월이 소요되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대학을 졸업하자, 제 손에 남는 것이라고는 사랑하는 아이 두 명이 있는 가정과 졸업장 뿐이었습니다. 나이는 어느새 (한국 나이로) 30줄을 넘겨, 앞길이 막막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아는 고졸 언니는 서른이 되자 그 어느 곳에도 취직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용 의사를 밝히는 곳이라고는 유흥업소나 전화로 물건을 판매하는 텔레마케팅, 아웃바운드 직종 뿐이었습니다. 가까스로 취업에 성공한 아는 친구는 한 중소기업에 들어가기까지 부모님이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가운데 무려 800통의 이력서를 써야 했습니다.
마지막 희망이라고 여겼던 고시에 불합격하자, 아이들과 살아갈 미래, 우리 가족의 앞길이 정말 막막했습니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대전청년인력센터에 갔습니다. 그 곳에서는 워크넷 가입 여부를 물으며 이력서를 작성하게 하였습니다. 마침 대학교에서 졸업하기 1년 전, 취업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워크넷에 가입한터라 아이디는 이미 존재하였습니다. 희망 직종과 희망 임금을 묻더니, 워크넷에 올라온 두 가지의 구인 공고를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그러나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속담처럼, 한 곳에서는 묵묵부답이었고, 다른 한 곳에서는 오직 남자만을 고용 대상으로 선호한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워크넷에서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자, 구인공고에서 고용 대상으로는 성별을 고지하지 않고, 이력서 단계에서 모두 성별을 이유로 불합격시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 벼룩시장 신문을 읽고 지원한 곳에서는 무려 세 시간이나 기다리게 해 놓고 면접을 보러 와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주욱 훑어보더니, (아마도 외모를 이유로) 불합격시켰습니다. 때마침 연이어 들려오던 기업들의 불합격 소식은 저를 더욱 움츠러들고 의기소침하게 했습니다. 마치나 자신이 아무 쓸모없는 잉여인간이 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조차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공부하여 대학에 입학한 저였기에, 한시라도 빨리 알바 인생을 청산하고 정규직으로 입사하여 정년퇴직까지 일하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하였습니다. 월 매출을 1천만원 상승시키는 등, 아무리 열심히 일하더라도 알바를 하는 내내 돌아오는 것이라고는 괄시와 모욕, 자유로운 해고 뿐이었습니다. 그마저도 서른이 넘는 사람들은 알바 고용주가 거절하기 일쑤였습니다. “29살 여성이래. 나이가 너무 많아.” 어떤 알바지원자의 이력서를 단칼에 거절하면서 50세가 넘는 사장님(남성)이 하신 말씀입니다.
대학을 졸업하면 최소한 이러한 일회용품 알바 인생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그런데 막상 백수가 되어 계속해서 이력서를 쓰게 되자, 일회용품보다 더욱 가치가 없는, 쓸모없는 잉여인간이 되었다는 자괴감과 좌절감이 계속해서 저를 괴롭혔습니다. 아이들의 웃는 얼굴을 보면 조바심이 더욱 심해졌습니다. 계속해서 취업한 친구나 고시에 합격한 선후배들과 저를 비교하며 전공 선택이나 학점에 대한 후회와 자책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대전청년인력센터에 날마다 찾아가 보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이라고는 “우리도 오직 워크넷만을 인터넷으로 뒤지며 구인공고를 확인해서 지원자에게 알선해주고 있다.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 너무 많다. 구직자 스스로 열심히 찾아보아야 한다.” 뿐이었습니다. 더구나 저보다 더욱 절박해 보이는 40대 이상의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이 날마다 줄을 서서 센터에서 상담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확실히 구직자가 구인공고보다는 많아 보였습니다.
아는 친구가 자신의 외삼촌을 소개시켜 주었고, 외삼촌 역시 저를 고용하는 데 적극적이었지만, 아쉽게도 그 분은 인사권자가 아니었고, 인사권자의 거절로 결국 친구 외삼촌 회사에서 일하는 것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일주일 동안 계속해서 불합격 통보를 받고, 친구 외삼촌으로부터 미안하다는 전화를 받자, 저는 말 그대로 ‘멘붕’상태에 빠졌습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저를 원하는 곳은 아무데도 없을 것만 같았고, 세상은 너무나 차갑고 냉정한 것만 같았습니다. 늙어서 폐지를 줍고 있는 제 모습이 연상되었습니다. 아이들의웃는 얼굴과 이런저런 상념들이 겹쳐지면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남몰래 흐느껴 운적도 여러 번입니다.
때마침 맞선을 보기 위하여 제가 사는 지역에 들른 친구가, “난 대학졸업 후 어학연수 다녀와서 8개월 동안 직업을 구하지 못했고, 그 동안 100통이 넘는 이력서를 썼어. 너 역시 그 정도는 각오하고 있어야 할 거야. 난 그 때 26세였지만, 넌 나이도 많잖아.”라고 충고해 주었습니다. 나 자신의 진정한 재능과 능력에 관계없이 성별이나 여성으로서의 외모, 나이 따위로 차별받는 현실이 비참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계속해서 저의 재능과 능력을 최대한 설득력 있게 담은 이력서를 써서 회사에 지원하였습니다. 제 전공과 관련 없는 다른 곳에도 계속해서 입사지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구직을 시작한 그 주 주말에는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아이들을 돌보며 워크넷을 뒤져 무려 8통이나 되는 이력서를 써서 8개의 기업에 제출하였습니다. 모든 이력서를 회사에 맞추어 각각 다르게 작성하였고, 공통적으로 저의 장점인 영어실력, 전공지식, 그리고 번역 능력을 계속 강조하였습니다. 봉사활동 증서 따위를 받지 않고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남들을 도왔던 봉사활동 경험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확히 구직을 시작한지 열흘째 되는 수요일, 제가 열심히 대기업에서 진행하는 협력업체 internship 및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신청서를 쓰고 있는데, 아무 메시지도 오지 않던 텅 빈 휴대폰 화면에 문자 메시지가 팝업되었습니다. 한 주식회사 에서 연락이 온 것입니다. 이 주식회사가 모집하고 있는 업무는 사실 저의 전공과는 일견 관련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 아이들이 모두 회사 업무관련 아이템을 열렬히 사랑하는 강력한 팬이었고, 저 역시 기록물을 정리하며 이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이력서를 넣었던 회사였습니다. 미리 ‘안 되겠지’라는 생각을 깔고 반쯤 아무생각 없이 이력서를 넣었을 만큼, 당시의 저는 삶이 주는 무게에 눌려 지쳐 있었습니다.
수신된 문자메시지는 제게 면접을 보러 와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이 회사에 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검색하였습니다. 그러자 서울 신문에 났었던 기사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재직 중에도 학사, 석사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모든 사원의 교육을 지원해 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신문에 난 사진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당 회사에 취직한 정사원이, 회사의 지원을 받아 한 대학에 다니며 회사대표이사님과 더불어 밝게 웃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진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았습니다. 저 역시 회사에 다니며 대학원과정을 이수하며 나 자신의 소질을 더욱 계발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날 아침, 면접 장소에 가서 30분 정도 기다리자, 대표이사님이 비서실장을 대동하고 직접 모습을 보였습니다. 저의 이력서를 읽고 감동했다고 하시며, 원래 아르바이트를 모집하려던 전형을 대표이사의 재량으로 바꿔 신입사원 채용절차로 변경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 역시 직원을 교육시켜 함께 전진하고자 하는 점 등 회사에 대하여 받은 긍정적인 인상과 입사지원하게 된 소감을 밝히며, 입사포부와 미래에 대한 vision을 밝혔습니다. 알고 보니 이 회사는 본사는 서울에 있고 공기업이 발주하는 업무를 맡아 수행하는 용역회사였습니다. 본사에서 제가 사는 지역까지의 거리가 문제점으로 등장하자, 저는 KTX를 타고 출퇴근할 용의를 보였습니다. 그러자 대표이사님은 감동한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회사에서 통근비 또는 여직원기숙사건립을 지원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1차 면접이 끝났습니다.
2차 면접에서는 회사의 조직과 구성, 주요 업무를 대표이사님이 직접 소개해 주셨습니다. 저 역시 한마디 한 마디를 새겨 들으며 놓치지 않으려고 온 마음을 다 했습니다.
3차 면접에서는 이미 채용된 아르바이트생들과 함께 철도청에서의 구체적인 업무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며칠에 걸친 복잡한 채용절차가 끝나고, 드디어 신입사원으로서 첫 출근을 시작했습니다.
비록 업무 첫 날부터 야근을 하는 등 할 일은 많고, 공기업 자체가 아닌 외부 용역업체로서 불특정 공기업직원들로 받는 보이지 않는 차별 등 넘어야 할 산은 높지만, 저를 한 번 쓰다 버리는 알바 일회용품이 아닌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대우해주는 대표이사님 밑에서 일하게 되어 매우 만족합니다. 함께 일하는 다섯 명의 팀원들도 성격이 원만하고 뒤끝이 없어 마음이 편합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대기업 간판, 높은 연봉에 대한 갈망을 버리고 사람 대 사람으로 접근하니, 제게 맞는 일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보너스로, 집에 돌아가서 아이들에게 회사 업무와 아이템에 대해 새로 알게 된 이야기를 해 주고 있노라면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제가 이 회사의 존재에 대해 인지하고 입사지원서를 내기까지는, 사람인, 인크루트, 잡코리아 등 국내에 있는 거의 모든 구인구직사이트의 구인공고를 연결하여 읽을 수 있게 해 준 워크넷의 존재가 거의 절대적이었습니다. 워크넷이 만약 다른 홈페이지에 있는 구인공고를 바로 바로 자사 사이트와 연계하여 주지 않았다면, 저는 아직도 직업을 찾아 헤메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거의 모든 구직사이트와 연결되어 있다는 워크넷의 장점은, 제가 입사한 다음, 이 회사와 거의 동시에 이력서를 제출했었던 여덟 개의 회사로부터 모두 합격통지가 왔다는 점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정성껏 써서 워크넷에 등록한 제 이력서를 읽은 거의 모든 회사가-아쉽게도 한 발 늦었지만-저를 채용하고자 하는 의사를 표명해 왔습니다.
저는 거절과 사과의 말씀을 드리느라 진땀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 중에는 제 전공과 부합하는 회사들과 국내 유수의 대기업 협력업체도 있었습니다.
원하는 회사에 들어갈 수 없어 좌절에 휩싸여 슬픈 눈물을 흘리며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하루 빨리 자신에게 맞는 회사를 찾아 한 사람의 떳떳한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제가 2주만에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돈이나 기업의 크기, 인지도가 아닌 사람을 보자.’였습니다. 대표이사님의 인재에 대한 열정과 사람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삼고초려의 정신이, 저로 하여금 제 직장과 평생 함께 가고 싶다는 마음을 갖도록 이끌었습니다. 제가 10년 넘게 알바를 한 끝에 얻은 깨달음으로, 저는 더욱 높은 연봉이나 처우가 아닌, 그 회사를 지배하는 대표이사의 인격을 선택하였습니다.
어쩌면 제 선택이 최선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제가 거절한 여덟 개의 회사가 더욱 전망이 밝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첫눈에 파악한 대표이사님의 인격이 진실과 다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언제나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마련이고, 저는 당시의 상황에서 저의 가치관으로 스스로에게 맞는 최적의 회사를 선택하였습니다. 저와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밝힐 수 있습니다.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들 및 인생의 동반자에게 사랑과 고마움을 표하며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