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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성공수기

취업의 모든 것 취업이야기 취업성공수기

“공허”의 가름은 “바램”을 비상 시킨다.

가늘게 떠지는 실눈 사이로 어둑해진 초저녁의 기운이 나를 일으켜 세우고 깊게 드리운 커튼 사이사이를 물들이듯 거뭇거뭇한 공기의 흐름은 이내 나만의 특별한 아침을 맞이하게 한다. 나는 밤과 낮이 뒤바뀐 삶을 이어가고 있으며, 그렇게 뒤바뀐 시간의 흐름에 편승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어느 노모의 아들, 그리고 어느새 훌쩍 커버린 외동딸아이의 아버지란 이름이 무척 잘 어울릴 법한 한 중년의 사내다.


이불속 경련적인 기지개를 켜며 다소 가벼워진 듯 한 귓가 사이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더욱 짙어진 공기의 매질을 통해 울려져온다.
“애비야 얼른 일어나 씻고 밥 먹어라!”
“네...”
나는 다소 기계적인 단발의 대답 신호와 함께 부스스한 눈을 비벼가며 단숨에 몇 리터 이상의 공기를 들이마셔 내 뱉을 것 같은 기세의 하품은 나를 휘적휘적 화장실로 자연스레 인도한다.


나는 요즘 들어 종종 화장실 거울 앞에 서있는 시간이 길어져만 가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거무튀튀한 얼굴에 촘촘히 박힌 수염위로 면도기를 들이댈라치면 문득문득 무념무상의 한 사내가 나를 향해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시선의 따가움이 자주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그 사내의 자글자글한 눈가 잔주름은 이젠 그가 제법 세월의 풍파에 농익었음을 말해주는 듯하였고, 한층 더 깊어진 눈망울은 기억의 한 조각 속에만 존재하는 빚 바랜 사진속의 아버지란 이름의 그분과 오버랩 되어 이내 엷은 쓴웃음을 짓게 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시선의 붙들림도 잠시 “아! 나도 어느덧 지천명을 넘어 섰구나” 하는 공허함의 메아리와 함께 언제 그랬냐는 듯 현실로의 초대는 나를 일상의 삶 위에 다시 세워 놓곤 한다.


“나”라는 형상을 가진 그 거울 속 중년의 사내는 무척이나 다양한 분야의 관심 속에 특수용접기능사, 지게차운전기능사, 굴삭기운전기능사, 건축도장기능사, 항해사, 소형선박조종사, 요트선장 등 꽤나 특이하고 이채로운 사회적 명함들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재미있는 점 하나는 매번 피땀 어린 노력 끝에 얻은 그 하나하나의 명함이 사회적 직함으로서 현재의 삶에 온전히 투영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Irony)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 대하여 스스로 “왜 일까?” 라는 질문을 던져보며 잠시 망각의 강을 거슬러 과거 기억의 뭍으로 종종 올라서 볼 때도 있었다.


내 인생의 항해 기상 중 가장 아름답고 청명하게 빛났던 이삼십 대의 날씨는, 경찰공무원으로 공채 입직 후 주로 강력계 형사의 소임을 다하였고, 밤낮이 있을 수 없는 치안의 사선 속에 무한 발전의 속력이 붙은 “범죄의 진화”란 강물은 나를 수많은 사건현장 속으로 끌어들이곤 하였다. 당시의 척박한 근무 환경에도 나름 “거리의 판사이며, 정의를 지향한다”라는 직업정신은 현실과의 타협을 불허했던 젊은 나의 많은 것을 바꿔 놓기에 충분하였고, 천직이라는 직업적 자긍심까지 가져다주었다. 그랬었기에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까지도 남다른 자부심과 함께 마음 속 한 구석의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걸 보면 당시 얼마만큼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부었고 그 일에 미쳐 최선을 다했었는지 나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으리라.


그러나 관운이 길지 않았던 탓이었을까? 뜻하지 않은 직무상의 문제 발생으로 인해 당시 초급간부였던 나는 책임성 면직과 함께 평생직장이란 직업개념 논리를 통째로 바꾸어 놓을 수밖에 없었던 삶의 변곡점에 서고야 말았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가정사 또한 선천적 장애를 안고 태어난 딸아이를 홀로 키워야 할 홀아비의 처지에 놓이게 되다보니 앞으로 닥칠 내 인생의 1막이 그다지 평탄하지 않으리라는 것쯤은 불을 보듯 뻔했던 것 같다.
더욱이 철썩 같이 믿었던 지인의 금전적 배신으로 인해 퇴직금 한 푼 손에 쥐지 못한 채 이 넓은 세상에 별안간 내 팽개쳐져 다시 홀로서기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현실은 무척이나 원망스러웠고 차가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 시절, 쇠도 씹어 먹을 것 같았던 젊음이 있었기에 안정적인 여타의 직장생활 보다는 홀로 자생하는 잡초의 모험을 택하였고 시련의 눈물보다는 “다시” 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매순간 치열한 삶을 이어갔었다.


그 후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냉동, 냉장창고 개발 사업이란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경기도 전 역을 내 집 앞마당 쓸고 다니듯 매일같이 승용차의 킬로수를 갱신해 가며 머릿속의 뇌를 통째로 내 놓아 얻었던 결과는 남들보다 많이 벌어 봤고, 많이 벌었던 것들을 남들 보다는 조금 더 잃어 봤다는 궁극의 경험치 외엔 소득이 없었다. 결국 사람을 너무 믿었던 내 자신 행태의 끝맺음은 “손해난 장사”라는 초라한 성적표와 함께 소중한 시간을 허무하게 허비한 샘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면 난 그 “다시” 라는 단어 속에 감춰진 시행착오의 대가와 들쑥날쑥한 가정 살림 형편, 그리고 딸아이의 성장이라는 아주 중요한 부분을 먼 미래의 행복이란 이름 아래 너무 쉽게 간과하였던 엄청난 실수를 범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적지 않은 나이에 또 다시 값비싼 인생의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래서 일까? 묘하게도 사십대의 즐거움이나 행복감 같은 추억은 아직도 기억 한편에서 조차 존재하질 않는다. 그리고 당시의 막막한 현실에 가끔은 서글퍼지고 우울해지기도 하였는데 그것들은 이내 두려움으로 변하여 성큼 내 앞에 다가서기도 하였다.
어쩌면 그런 이유의 잠재적 심리가 맘속 깊은 곳에 자리 잡혀 있어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그 시기쯤부터 사회적 명함이라 할 수 있는 각종 국가자격증 취득에 몰두하게 되었던 것 같다. 마치 그것이 미래의 안정적인 삶을 담보해 줄 수 있는 보험 인 냥...


그러나 그 와중에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라 할 수 있었던 부분은 마치 롤러코스터와도 같았던 내 인생의 경험치는 그 당시 현실의 중요한 사실 하나쯤은 일찍이 깨우쳐 주었다. 애써 취득한 각종 국가자격증은 기존의 생업위에 연계되어 빛을 발하지 않는 이상 당장의 안정을 필요로 한 내 현실의 가정사에는 그렇게 많은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을...
그리곤 이내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또 다른 물음의 조약돌을 만지작거리며 힘들게 취득하였으나 당장 활용 할 수 없음에 아쉬움의 입맛만 다셔야했던 여러 분야의 국가자격증의 활용방법! 그리고 당장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직장! 난 이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기위해 장고의 물수제비를 뜨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내 던져야 할 분야의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하였고, 그중 가장 효율적이 방법은 구인, 구직포털 사이트의 적절한 이용이란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때 까지만 해도 아무리 작은 규모의 사업이라도 나만의 개인적인 일을 고집해 왔던 터라 온라인 상 구인, 구직을 전문으로 하는 포털사이트가 그토록 크고 전문적으로 존재 할 것이라고는 솔직히 생각지 못했었다. 아니 그간 관심 밖에 일이었으니 충분히 그랬으리라. 그래도 막상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는 상위 포털사이트 몇 군데를 접속하여 검색을 시작해보긴 하였는데 그러한 작업들은 생각보다 여간 짜증나고 까다로운 일이 아닐 수 없음을 느끼게 되었다.
첫째 회원 가입이 되어 있지 않으면 해당 구직 정보의 전체 열람을 차단해 놓기 일쑤였고, 둘째는 구체적 업무 내용과 급여부분, 그리고 해당 회사의 제반 정보 등 구직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내용들은 모호하기 짝이 없어 수시로 그 답답함이 밀려오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간 걸었던 기대치의 크기만큼 그에 따른 실망감도 점점 커갈 즈음, 그래도 궁하면 평소 안보이던 것도 보이는 것인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정부의 한 기관인 “평택 노동고용센터”란 곳이 있음을 우연히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토록 지나다니던 길이었는데...” 못내 헛웃음까지 새어 나왔다.
당시 단 걸음에 그곳을 방문하여 이런저런 궁금한 점과 구직에 대한 질문 등 여러 가지의 많은 것을 단번에 해결 해 보고 싶었던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몸은 그와 반대로 잘 움직여 주질 않았다. 아마도 처음 접해본 일인데다 나이 또한 적지 않은 터라 실패 시 다가올 창피함과 두려움에 갖가지 핑계를 만들어 가며 망설임의 나날이 이어져 갔고 그렇게 무의미한 시일이 지나면 지날수록 스스로도 답답한 놈 이라는 생각까지 들 즈음 별안간 나의 등짝을 세차게 후려치는 엄니의 매운 손길과 함께 “중요한 고민 일수록 짧고 굵게 하는 것이다 잉” 하는 호통에 “그래 밑져야 본전이겠지?” 란 생각이 불현 듯 밀려왔다.


그리고 이내 가깝고도 멀기만 하였던 그 고용센터를 막상 방문을 하여 보니 우선 생각보다 큰 규모와 세분화된 부서에 놀라움이 앞섰다.
또한 국적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신과 맞는 일과 직장, 그리고 갖가지 민원을 해결하기 위해 분주히 오가며 상담을 받고 있는 다양한 분야의 연령층 및 많은 사람들의 북적거림에 잠시 넋 놓고 보고 있자니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이 이렇게도 많았고 참 열심히들 살려고 애쓰는 구나” 하는 생각에 그간 변변치 못한 나의 짧은 고민은 이내 부끄러움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것은 이유 없는 작은 위안과 함께 또 다른 용기를 가져다주기도 하였다.


대기 번호표를 뽑고 얼마간의 시간의 흘렀을까? 마침내 고대하던 직업 상담관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그간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책없이 풀어 놓게 되었는데 그분 또한 일면식 없는 나의 이야기에 대해 많은 부분 공감하며 들음의 시간을 같이 흘려보내 주었다. 그리고 이내 그것들은 소소한 따스함으로 변하여 나의 마음속을 향해 살며시 전해져 옴을 느낄 수 있었고, 그것들은 예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색깔의 울림이었던 것 같다. 그분들은 통상의 업무상 상담 과정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나에겐 그러한 공감의 형성은 절박한 입장에 선 한 가정의 가장이 과거와는 다른 형태의 “다시”라는 단어를 새삼 떠올려 보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곳 상담관을 통해 워크넷이란 구인, 구직 전용 정부 포털사이트의 이용 설명과 함께 “내일배움카드”란 것도 함께 신청하여 발급 받을 수 있었고, 그날부터 워크넷을 통한 본격적인 구직 작업에 매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름 구직 활동도 같은 곳을 목표로 하는 다른 이와 피치 못할 경쟁을 해야 하는 사회적 구조이기에 기업의 면접 담당자 입장에 서서 합리적인 전략을 세워보는 것이 짧은 시간 내 합격률을 높이는 최선의 방법이란 생각이 들어 우선 잘 나온 사진을 준비해 워크넷에서 요구하는 이력서 및 자기소개서를 최대한 충실히 작성하여 등록하였고, 구직을 원하는 분야의 모바일 매칭 서비스를 신청해 수시로 구인에 대한 정보를 문자로 받아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내 인생에 있어 어쩌면 마지막 직장이 될 수도 있다” 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시작하였던 탓에 작은 부분까지 세심히 관찰하였으며, 어떤 부분은 노동고용센터의 담당관 또는 구인 기업의 담당자에게 직접 연락을 시도해 가며 궁금한 점들을 해소해 나가는 작업을 반복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구직 작업의 과정이 원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우선 워크넷이란 포털사이트의 운영 주체가 정부라는 점에서 그 공신력에 대한 믿음이 컷고, 궁금해 하는 정보에 대한 검색 방법 또한 구체적 지역을 특정 할 수 있다는 점과 직업군을 분야별로 디테일(Detail)하게 나눌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검색 조건 등의 편리성을 복합적으로 이용해 보니 내가 원하는 기업의 구체적 정보 및 구인 등에 대한 정보만을 족집게처럼 PC 창에 올릴 수 있어 원하는 구인, 구직 정보를 짧은 시간 내 집중적으로 탐독할 수 있다는 큰 이점이 있었다.
이는 전국 수만 개의 기업체 구인 정보를 일일이 다 훑어보지 않아도 된다는 시간적 절약과 함께 입사를 원하는 업체에 대한 재무구조 등 전반적인 정보를 취합, 정리 할 수 있었으므로 나의 조건과 맞는 범위내의 구직대상 기업을 추출할 수 있어 보다 적극적인 대응도 가능하였고 이런 부분들이 꽤나 좋은 장점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물론 여타 포털업체의 구인, 구직에 대한 검색 서비스 또한 비슷한 패턴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PC 상단 즐겨찾기에 유독 워크넷 만을 올려 두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검색 시, 창에 올라온 해당 정보의 구성 및 배열이 일단 시각적으로 한눈에 들어온다는데 있었다. 달리 말해 한눈에 보기 쉽다는 뜻이다. 구인 기업을 클릭하지 않아도 업체 명, 업체 위치, 해당 근무내용과 시간 그리고 해당 임금 등의 정보가 정해진 레이아웃(Layout)에 일목요연하게 펼쳐지게 되어있는 구조인데 이것은 당시 하루하루가 아쉬웠던 구직 활동의 검색 피로도와 함께 검색, 열람 시간을 최대한 줄여 줄 수 있었던 아주 매력적인 부분이었다.
그리고 실시간 올라오는 구인 정보나 지정해 둔 직업군의 매칭 서비스 정보는 내가 입사지원을 할 만한 업체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을 빨리 할 수 있게 함으로서 그만큼 불필요한 검색시간을 줄여 즉시즉시 원하는 기업을 찾는데 중요한 포인트가 되었던 것 같다. 대부분의 구인과 구직은 상호 필요성에 따라 실시간 정보를 올리기 마련인데 이는 대다수가 평균 2~3일 이내에 구인, 구직여부가 결정된다는 뜻이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실시간 제공되는 생생한 구인, 구직 정보가 가장 중요 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고, 이미 기재된 구인 모집기간의 마감 시한을 기준으로 한 타 포털사이트의 연속적인 매칭서비스는 크나큰 의미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나는 이러한 조건들을 토대로 입사지원이 가능할만한 기업 정보의 수집과 워크넷의 생 정보들을 충분히 활용한 결과, 제법 큰 한 페인트 유통 및 판매 기업에 입사지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3일이 채 되지 않은 기간에 면접 및 합격 통보를 받아 불혹 말년의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출발선에 설 수 있었었다. 이렇듯 남들보다는 짧은 기간에 취업 성공을 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비결은 아마도 워크넷 이용에 대한 장점을 나름 충분히 파악하고 적극 활용하였다는 점이 주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와 더불어 유쾌한 에피소드(Episode) 한 가지를 더 풀어 놔 볼까 한다.
그렇게 입사 후 약 3개월여에 거쳐 어느 정도 회사의 업무 파악 및 적응기가 끝나갈 무렵 영업에 대한 압박감 및 일에 대한 승부욕이 슬금슬금 괴롭히기 시작 할 때가 있었었다. 공업용 페인팅을 하는 공장 및 기업들은 작업 환경적 측면 상 외부에서 그 존재 유무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방문해야 할 영업대상의 선별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당시 무작정 발품만을 파는 영업기획으로는 원하는 효과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고민 끝에 때마침 떠오른 아이디어가 “워크넷” 이었다. 짧은 취업 준비 기간 중 워크넷의 정보 구성과 활용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이를 영업 분야에 접목시켜 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날부터 퇴근 후 워크넷을 검색해 가며 도장공을 구인하는 업체나 공업용 페인팅을 할 만한 업체를 선별 한 뒤, 다음 날 부터 일일이 방문 해 가며 영업을 시작해봤다. 결과는 예상 보다 많은 실적을 나에게 가져다주었으며, 큰 유통 기업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 타 경쟁 업체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한 장거리의 납품 대상 업체를 새로 발굴함으로서 좋은 도료를 경쟁력 있는 가격에 제공 할 수 있어 수급업체나 공급업체인 우리 회사에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여러 가지 부분의 공로를 인정받아 입사한지 12개월 만에 전폭적인 급여의 인상과 함께 업무를 총괄하는 책임자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도 있었었다. 아마도 그러했던 부분은 나라는 사람이 특출 나서가 아니라 그래도 나름 내 직업에 대한 애착을 갖고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에 대하여 최선을 다했었다는 부분이 사장님 눈에는 보기 좋으셨던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그렇듯 시간이 흘러 미래의 어느 지점에 다다랐을 때 나의 과거 중 한때를 돌이켜보아 “그래... 그래도 그때 그 일은 참 열심히 잘했던 것 같아! 라는 여운을 남길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는 생각은 아직도 늘 변함없이 가지고 사는 나만의 인생철학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은 훌쩍 흘러갔고 그곳에서 나의 흔적을 서서히 지워야 할 시기가 다가옴을 느낄 즈음 사장님의 온갖 만류에도 어렵사리 이직을 결심하게 되었던 나는 또 다시 워크넷 앞에 앉게 되었다.
그래도 언제나 변함없는 벗처럼 워크넷이란 친구는 그 자리에서 그간 좀 더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한 새로운 모습의 취업 정보를 내게 전달해 주었고, 나는 그러한 정보를 재해석 해가며 내가 원하는 갈증을 아낌없이 해소함에 이내 관심이 가는 한 회사를 새로이 찾아 다시 입사지원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엔 기존에 신청해 두었던 모바일 매칭서비스가 제 몫을 톡톡히 해 주었다.
문뜩 휴대폰을 통해 울리는 구인기업 매칭 문자를 보고 즉시 워크넷 앞에 앉아 해당 상세 정보를 재차 검색하여 확인해 보았다.
“회사명 주식회사 주식회사 ○○○○○○ 담당업무 제약회사 야간 소독업무라...”
“음! 야간 소독업무가 과연 어떤 종류의 일 일까?”
우선 컨슈머 리포트와 유사한 기능인 기업리뷰를 살펴보았다. 파견직 기업의 특징인 많은 사원의 수와 함께 기업평가 부분은 “법은 잘 준수하나 최저임금 수준”이란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야간 고정근무 탓인지 제시된 급여는 생각보다 무난한 수준이었고, 3일 근무에 1일 휴무라는 제안이 유독 업무에 대한 궁금증 깊이를 더하게 했다. 아울러 면접 장소에 대한 부분 또한 나의 관심도를 더욱 끌어올리는 한 요인이 되기도 하였던 것 같다.
운이 좋았던 탓이었을까?
구인 마감일과 같이하여 서류 심사에 합격하였으므로 지정된 일시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평택 노동고용센터 담당관의 문자 메세지가 도착 하였다. 면접 장소는 예고했던 바와 같이 평택노동고용센터 2층 상설면접장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면접 당일!
20분 정도 일찍 도착한 나는 사뭇 긴장된 마음을 추스르고 평택 고용노동센터 직원의 안내에 따라 면접 대기실로 이동을 하였다. 깔끔하게 잘 정돈된 공간과 편안함을 더 하기 위한 커튼가림 옆으로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탁자와 의자들이 나를 맞이하여 주었고, 나와 같은 목적의 면접을 보기위해 대기 중인 여러 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옷매무새를 고쳐가며 직원이 건넨 한 잔의 커피에 잠시 긴장을 풀어 보려 애쓰는 모습들은 이내 안쓰러움으로 다가와 나의 시야에 녹아들었다. 그리고 간단한 회사의 소개와 면접진행 절차의 순서를 전하며 합격 기원의 당부를 잊지 않고 미소 짓는 직원의 뒷모습에 그나마 다들 약간의 안면 근육은 부드러워진 표정들이다.


구직 시 대부분 입사를 원하는 기업 방문을 통한 면접이 통상의 그것이겠으나 이곳에서의 면접장소 제공과 그 방법은 입사 기업의 면접담당자와 응시자 간 제3의 중간 역할을 해 주는 그 어떤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모든 응시자들에게는 다소 여유를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는 기업 면접담당자의 일방적 질문과 응시자는 그에 상응한 대답만을 해야 하는 그간의 다소 보수적인 구조의 틀에서 조금은 벗어나 “나”라는 사람에 대한 어필(Appeal)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소통의 공간이 되기도 하였던 것 같다.


당시 기업의 면접담당자로 나를 기다리시던 편안한 인상의 장 소장님과의 첫 대면 후 약 20여분에 거친 면접을 무사히 마쳤고, 그 후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입사 6개월째를 앞둔 오늘 저녁의 출근 길!
잔뜩 부풀어 오른 면도거품을 깎아 내리는 나의 손놀림은 그 가볍고도 날렵함에 지금 현실의 시간이 어떤 형태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작게나마 대변하여 주는듯하고, “아마 내일 퇴근길에도 어김없이 만추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동녘 하늘의 샛별을 여유롭게 볼 수 있겠지?” 라는 다소 희망 섞인 설렘을 품어 느껴보기도 한다.
그리고 매일 밤을 하얗게 보내야 하는 야간 소독 작업은 그 특수성과 세밀함, 더욱이 밤과 낮이 바뀌어 생활해야 한다는 부분에 다소 그 역할의 버거움이 전해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남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아주 독특하고 재밌는 직업군에 속함을 내심 만족스러워 하며, 그와 어우러진 많은 동료들, 그리고 상설면접장에서 긴장된 얼굴로 첫 만남을 가졌던 몇몇의 늦깍이 입사 동기들과 어느새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그들의 맛깔난 인생 무용담과 함께 “바램”이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을 조심스레 비상시켜 보고도 싶다.


우리네 삶은 누구나 그렇듯 잔잔한 바다 위의 평화로운 항해 보다는 수시로 다가서는 폭풍우와 거친 파도 속에서 청명한 하늘을 기다리는 날이 더 많을 것이다. 그래도 저마다 삶을 이어가야 할 목적과 책임이 존재하기에 그 거친 파도의 때림을 견디고 견뎌가며 묵묵히 항진하는 것 일 것이다.


그렇게 쉼 없이 가다보면 어느새 더욱더 단단하고 간절해진 나만의 솟대를 통해 힘든 현실의 “공허”를 가르고 “바램”이란 희망의 이야기를 조금씩 이라도 비상시켜 볼 수 있지 않을까?


왜냐면, 우리는 오늘 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일을 지향하며 살아가야하는 누군가의 소중한 사람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