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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성공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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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단녀에게
청년내일채움공제란

“경단녀1)가 되기 전의 나와 ‘청년내일채움공제’”

제 업무는 현장 검사를 겸하는 선박 도장 품질보증이었는데, 전국 조선소 중 도장 품질 직에 종사하는 여직원은 삼성중공업 1명, 대우중공업 1명에 저를 포함한 단 3명이었습니다. 조선소 내의 여성 비율이 낮기도 했지만, 도장 품질 특유의 최후 공정 때문에 특히 더 높고 위험한 환경이어서 많은 여성 검사원들이 버텨 내질 못하였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24살부터 시작한 품질검사 일은 아파트 몇 채 크기의 대형 선박 위를 누비는 특별함이 있으므로 재밌었고, 1, 2년 만에 능력을 인정받아 특수 선박 프로젝트에 주로 임했으며, 사원으로는 이례적으로 KEY PERSON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 갔습니다. 응시료만 몇 백만 원 하는 국제 시험을 치기 위해 중국까지 가서 자격증을 취득하기도 하였습니다.
학창 시절엔 교수님 산하 연구실에서 각종 경진대회와 연구에 참여하며 TRIGON / ANSYS / A.M / CATIA / AUTO CAD 등의 설계프로그램을 접하였습니다. 조선·해양 연구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인 KTCT 실험유체역학 콘테스트에서 신설학과로 참여해 전통 있는 서울대, 울산대 등을 제치고 최우수상까지 받고, 취준생이 주로 참여하는 포트폴리오 경진대회에서 대학교 2학년으로서는 유일하게 수상을 하기도 하였고, 학과를 대표해 지역신문에 실리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이력은 아무 의미 없이, 임신 육아 후에 돌쟁이 아기가 있는, 곧 30대가 되는 평범한 경단녀가 되었습니다.
2010년 조선해양공학과에 입학했을 땐 대한민국이 세계 1위 타이틀을 가진 조선 최대 호황기였고, 대기업과 취업이 연계된 국립대였기에 경남권에서 소위 “제일 높은 학과”에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졸업 시기부터 조선 경기 불황이 시작되었고, 취업난 속에서도 운 좋게 졸업과 동시에 취업할 수 있었지만 5년을 넘기지 못하고 모든 중형 조선소들이 폐업하게 되었습니다. 그 타이밍에 결혼과 출산을 한 저는 조선소의 무거운 안전장비를 매고 대형 선박 위에서 일하던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평범한 전업주부였습니다. 같이 조선공학을 전공했던 남편도 경력만 단절되지 않았을 뿐이지 단기 프로젝트를 전전해야 하는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경남권의 기반이었던 조선/자동차 산업 위기로 능력 있는 경력자들도 정리 해고되는 상황에서 경력 인정은커녕 신입으로 입사하기도 어려웠고, 그나마 채용공고가 있는 부산은 출퇴근 비용이 50만 원이 넘게 들었으며, 아기가 있으니 기숙사를 들어갈 수도, 직장이 없으니 이사할 대출도 할 수 없는, 무엇을 준비하고 싶어도 거주지조차 정할 수가 없으니 어떤 계획도 세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가 2018년이었고,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 제도가 생긴 해였습니다.

1)경단녀 : 결혼과 육아 탓으로 퇴사해 직장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이르는 말.

“암담했던 미래에 ‘계획’을 세울 기회가 주어지다”

청년내일채움공제 제도로 저희 부부는 미래의 계획이 가능해졌습니다. 임신·육아로 1년 이상 무직 상태였던 저는 2년형으로 1,600만 원, 재직 중이었던 남편은 청년재직자 내일채움공제 5년으로 3,000만 원, 둘이 합쳐 4,600만 원 있으면 은행 대출을 더 해 집을 구할 수 있으니 지역의 제한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5년 뒤에는 아이도 초등학생이 되는 해였으니 이사 후 정착하기도 딱 적절한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저희 부부는 부산의 한 회사에 같이 취업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업과 무관한 곳이었기에 경력 인정 없이 사원으로 입사하였습니다. 2년 동안 300만 원만 적립하면 1,60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청년내일채움공제가 연봉 3,000만 원 직장을 3,700만 원 직장처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습니다. 타 지역에 4년이 넘는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니 청년내일채움공제가 없었다면 분명 망설였을 테고, 그러는 동안 경력의 단절은 점점 길어지고 재취업이 더 힘들어졌을 수도 있겠죠. 재직자 본인은 월 12만 5천 원을 넣고 실제로는 5배가 넘는 월 67만 원가량이 적립되면서도 기업의 부담이 없으니 회사에서도 흔쾌히 가입을 지원을 주었습니다.

“이 시대의 청년들에게 ‘청년내일채움공제’란”

매년 있는 취업난이라지만 오랫동안 대한민국을 지탱한 조선업이 흔들리고 코로나19와 같은 세계적인 전염병이 창궐하는 각종 악재가 겹친 현 상황에서, 이 제도가 저에게만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기업으로서도 청년내일채움공제로 청년중소기업을 꺼리는 청년들이 눈을 돌릴 기회를 얻는 것이고, 재직자 내일채움공제로 더 나은 연봉을 위해 이직하려는 경력직 직원의 이동을 방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느꼈습니다. 그래서 보고 자료를 작성하여 사장님께 1:1 브리핑을 하였고, 현재 우리 회사 모든 신입사원은 청년내일채움공제에 가입할 수 있고, 능력 있는 청년재직자는 재직자 내일채움공제로 성과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청년내일채움공제란 엄마이면서도 배정빈 대리가 될 수 있게 한 복권이었습니다. 기회조차 없던 상황에서 선택지가 생겼고, 이미 인정받았던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생겼습니다. 새로 취업한 곳은 전공은 아니었지만, 기계 가공 제조업으로 바탕이 비슷했고, 대학교 때 전공한 설계와 조선소에서 쌓은 품질, 생산 경력은 중소기업에서 더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19년 8월에 입사하여 4개월 만에 대리로 진급하고 충분한 연봉 인상이 있었던 건, 청년내일채움공제가 아니라면 시작하기 어려운 곳에서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뿐만 아니라 청년내일채움공제를 신청한 많은 청년이 공제 만기 후에도 현 직장을 유지한다는 기사를 접했는데, 저와 같이 공제기간 2년 안에 직장에서 충분히 인정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청년내일채움공제가 낮은 곳에서 시작하기를 망설이는 청년에겐 제약 없는 무대를 주고, 높은 급여의 고급인력을 망설였던 기업에 인재의 투자가치를 알게 해주는 가장 효율적인 제도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