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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라는 기적

“절박했던 나, 그리고 가장이 되기까지”

누구나 때가 되면 사회 구성원으로서 경제활동을 해내기 위해 어느 정도는 떠밀리듯, 그렇지만 기대와 간절함으로 첫 일자리를 찾아 나서곤 합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없겠으나 대략 1년 반 전의 저는 조금 더 절박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7년 전 대학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저는 결혼했습니다. 흔히 결혼적령기라고 하는 나이보다 일찍 결혼한 이유를 굳이 꼽자면 키보드를 치는 손가락이 오므라들지만, 서로 많이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여섯 살 연상인 남편은 이미 직장인으로 자리를 잡은 상태였고, 제가 취업하고 안정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서로 마음이 급했던 것 같습니다. 결혼 후 만 3년이 될 때 까지 저희 부부는 ‘신혼’이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과 미숙한 만큼 아옹다옹하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결혼기념일 3주년을 앞둔 어느 날, 제 남편은 ‘급성기 만성골수성백혈병’이라는 혈액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청천벽력이었으나 서울의 어느 대학 병원 응급실에서 닷새 넘게 쪽잠을 자며 입원실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다 맞이한 결혼기념일은 당시 저와 남편에겐 현실이었습니다. 일주일 만에 겨우 입원한 1인실은 1박에 50만 원 가까이 되어서 가격만큼은 특급호텔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평범한 중소기업의 대리였던 남편과 소소하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던 제게 병원비를 감당할 능력은 없었지만, 다행히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와 개인 보험 등 크고 작은 도움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여러 차례의 항암 치료와 16번의 방사선치료, 남편의 친누나에게 받은 조혈모세포 이식이 하나씩 하나씩 무사히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식 후 반드시 나타난다는 부작용을 이겨내느라 남편에게는 또다시 회복 기간이 필요했기에 여전히 집에서 돌봐줄 사람이 있어야 했습니다. 이식 후 첫 1년간 심하게 나타났던 몸 곳곳의 부작용들이 서서히 가라앉고 드디어 남편이 혼자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였습니다. 마침 생활비로 조금씩 쓰던 남편의 퇴직금과 보험금이 어느새 통장에서 초라한 잔액을 드러냈지요.
그제야 돌아보니 당장 직장을 구해야 하는 제게 있는 이력이라곤 대학교 졸업장과 남편의 투병 생활 동안 유효 기간이 지난 토익 성적뿐이었습니다. 심지어 사무직으로서는 인턴 경력조차 없었습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앞이 깜깜했습니다. 간절히 기도하면서 이곳저곳에 이력서를 내던 중이었습니다. 같은 시기에 취직을 준비하고 있던 동생이 집에서 가까운 어느 중소기업의 구인 공고를 공유해주었습니다. 다른 조건보다도 ‘청년내일채움공제’가 가능하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와 일단 지원했습니다. ‘청년내일채움공제’라는 제도에 대한 정보도 이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현재 그 중소기업에서 1년 반 가까이 잘 근무하고 있습니다.

“하루를 견디게 하는 원동력, 청년내일채움공제”

사실 대부분 중소기업이 그러하듯 우리 회사도 자금 부족에 따른 인력 부족을 어느 정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청년 신입사원들이 중소기업에서 오래 견디지 못하고 빨리 퇴직하게 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입사 후 만 1년이 될 때까지는 3개월에 한 번씩 퇴사를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다만 그 시기를 잘 넘겼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우선, 제 직속 상사인 과장님께선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부터 지금껏 업무에 대해 잘 가르쳐주셨고, 어려운 일들은 대신 도맡아주셨습니다. 때론 인생의 좋은 상담자가 돼주시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로 우리 회사는 업무 시간에는 화장실 가기도 힘들 만큼 바쁘지만, 본인 업무를 마쳤다면 모두가 6시 정각에 사무실을 박차고 나갑니다.
그런데도 아주 가끔은 품 안에 있는 사직서를 비장하게 꺼내놓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제가 청년내일채움공제 가입자라는 사실은 저에게 있어 힘든 그 하루를 또 견디게 하는 원동력이었습니다. 쉽지 않지만, 이 회사에서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제 경력이 채워질 뿐 아니라 실제로 장래를 준비할 목돈이 마련된다는 것. 그것은 저에게 있어 큰 희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이 된 지 얼마 안 된 제가 사회로 다시 나아가야 할 또 다른 가족을 위해 단기간에 준비 자금을 마련해 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희망찬 일상, 꿈이 현실이 되기까지”

오래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했던 제 남편은 제가 직장을 다닐 무렵부터 집안일을 조금씩 도와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청년내일채움공제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면 결코 꿈꾸지 못했을 창업은 저희 부부에게 있어 더욱 현실적인 계획이 된 것입니다.
저는 아직도 모든 것이 신기합니다. 퇴근하고 돌아온 제가 서서 설거지하는 남편을 볼 때, 바리스타 실기 시험을 위해 연습한 남편의 라테 아트를 볼 때, 휴일에 그저 함께 산책할 때도 이 모든 평화롭고 희망찬 일상이 다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에 한없이 감사합니다. 취업이 막막했던 제게 일자리가 생겼고, 열심히 일하는 오늘이 쌓이면 남편과 우리 가정에 밝은 내일이 다가오게 되는 것. 이것이 저희에겐 또 하나의 기적입니다. 노력해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수고가 세상엔 많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닥쳤던 아픔을 통해 새삼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제때 좋은 병원, 좋은 의료진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제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청년내일채움공제는 저에게 있어 좋은 제도이자 기회이고, 나아가 저희 가정의 미래가 되어 주고 있습니다. 물론 모든 제도가 완벽하지 않기에 앞으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더욱 개인과 사회, 기업 모두에게 유익이 되고 부작용은 개선해 나가야 하겠지요.
앞으로도 청년내일채움공제가 계속해서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청년내일채움공제의 덕을 볼 수 있었던 저와 제 남편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도움을 주는, 값진 인생을 살아가길 꿈꿉니다. 잠시간의 행복한 상상만이 아니라 실제 오늘을 살아가는 저와 제 가정에 희망이 되어 준 청년내일채움공제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