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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성공수기

취업의 모든 것 취업이야기 취업성공수기

내게 ‘내일’이란
기회를 주어 고맙습니다

“잦은 이직이 일상이었던 삶과 청년내일채움공제”

현재 나는 31살의 직장인으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오랜 시간 일을 하며 단기간 프로젝트 성 일을 진행하다 보니 급변하는 환경에 곧잘 적응했고 늘 새로운 일을 찾아 나서는 게 익숙한 사람이었다. 조금 더 좋은 환경, 복지, 연봉이 있는 곳이라면 주저앉고 떠났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잦은 취직과 이직을 했고 결국은 프리랜서로 전향해 몇 년을 지내왔다. 그렇게 누리는 자유와 여유로움도 좋았지만 향후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삶이란 생각에 다시 한번 취직을 결심했고 지금 있는 작은 식품회사 디자이너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중소기업에 대한 상처도, 안 좋은 기억도 많았던 터라 조심스러웠던 입사였는데 3시간가량 허심탄회하게 진행됐던 인터뷰를 통해 마음에 맞는 회사를 만난 듯해 입사를 결정했다. 계약직으로 일을 하게 되고 3개월이 채 되지 않았을 때이다. 젊은 대표가 운영하는 회사로 입사 당시 많은 사람이 이 회사에서 이직하고 퇴사를 했다. 이로 인해 대표님과 직원들도 새 직원에 대한 경계, 불안, 염려를 드러냈다. 그렇게 직원들의 잦은 이직과 퇴직에 대한 아픔이 있는 대표님 조심스레 나를 불렀다. 그리고 대표님이 내게 조심스레 청년내일채움공제 이야기를 꺼냈다. 3년이란 시간을 이 작은 회사와 함께할 수 있겠냐는 제안처럼 들렸다. 처음엔 이 제안이 족쇄 같기도 했고 변화무쌍한 삶을 살던 내가, 비교적 시간을 자유롭게 쓰던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밀려왔다. 오랜 시간 정책에 대해 알아보고 검색도 했다. 그리고 청년내일채움공제 관리 직원 분들께 설명을 듣고 나서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심리적 완충재가 되어 주는 청년을 위한 정책”

사실 나는 적금도 청약도 잘 유지하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많이 벌면 버는 대로, 적게 벌면 그런대로 규모 없는 생활을 했었다. 많게는 3~400을 넘게 벌고 적게는 100만 원 후반 언저리를 벌며 한 달에 나가는 생활비와 카드 값, 학자금 대출을 갚아가며 사는 일반적인 청년이었다. 사실 이런 경제적 상황을 생각하면 결혼, 혹은 내 집 마련은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매달 30만 원을 꾸준히 모아도 지금 사는 지역의 집 한 채도 전세로 얻을 수 없을 그런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지 못할 열매는 쳐다보지 않듯 나는 절대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일들이 어느 샌가 나라의 도움으로, 기업의 도움으로 이뤄갈 수 있겠다는 기대로 변했다.
기미가 보이니 미래에 대한 계획도 되기 시작했다. 그 덕에 교제하던 친구와 결혼을 계획하게 되었고 내 집 마련과 자녀에 대한 계획들도 세울 수 있게 되었다. 3년 후엔 전세자금으로 빌렸던 은행 대출을 갚고, 또 다른 집으로 이사하고, 결혼 준비 자금을 갚고, 학자금 대출을 전액 상환하는 등의 구체적인 계획들도 세우게 되었다. 프리랜서였다면, 혹은 예전처럼 자주 이직하던 때를 생각한다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한 달 벌어 한 달을 채우는 그런 삶에 작은 희망을 심겨준 듯하여 감사하다.
청년내일채움공제가 진행되면서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며 내가 내는 금액뿐 아니라 기업지원금, 나라에서 나오는 지원금들이 합산되며 다달이 쌓여가는 금액을 볼 때면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이 정도의 돈이 모인 게 신기할 때가 있다. 규모 없이 자유롭게 나만을 위해 소비하던 습관들도 조금씩 모으는 재미, 오랜 시간 인내하며 모아가는 재미를 알게 된 것도 같다. 그래서 요즘은 적은 금액이지만 적금을 모으고 최근엔 만기를 맞아 새로운 적금을 다시 시작했다. 마치 벼랑 끝에 내몰린 듯 오늘 벌어 내일 사는 삶이 참 많은 요즘 이런 정책을 통해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지니 심리적인 안정감도 들었고 자연스레 이런 정책을 누리게 해준 나라에 감사하는 마음도 생기게 되었다.

“내게 주어진 직무에 대한 긍정적인 책임감, 그리고 업무에 대한 즐거움”

사실 중소기업에는 누군가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일일 때가 많다. 공휴일에 쉬지 못하거나 상여금, 경조사비, 여름휴가도 없고 그 흔한 설 명절 선물도 없는 작은 회사. 겨우 있는 작은 복지는‘전자레인지 있음’정도인 회사들도 많다. 경력직으로 일을 하다 보니 여러 크고 작은 회사를 거치며 각 회사의 복지혜택을 비교할 때 사실 지금 있는 회사의 복지나 연봉이 좋은 편은 아님을 알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일을 하면서도 이직을 위한 포트폴리오 폴더가 배경화면 구석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거나 사람인, 워크넷 등에서 쏟아지는 구인·구직 소식을 읽어 내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청년내일채움공제를 해오며 달라진 나의 첫째 모습은 핸드폰에서 구인·구직 앱이 사라진 것이다. 최근 며칠 새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휴면 계정 처리 메일이 여러 번 날아왔을 정도로 관심도 없어진 상태다. 앞으로 몇 년 이상은 이 회사에 머물러야 한다는 약속 때문인지 구인·구직의 소식을 보며 마음을 졸이거나 시기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이 무언가에 쫓기면 초조해지고 넓은 시야로 살아갈 수 없지 않은가, 마치 무엇인가에 좇지 않는 상태가 된 것만 같아 편안하다. 그리고 이후 받게 되는 정책지원금으로 인해 낮은 연봉에 대한 부담도 조금은 줄게 되었고 물질에 대한 부담이 완화되니 직무를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회사일’, ‘남의 일’, ‘내 영역의 일만 잘하면 될 일’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내가 책임져야 할 일’, ‘내가 개선해 볼 수 있는 일’, ‘내가 지켜야 할 자리’로 생각이 바뀌며 조금 더 나은 결과를 위해 공부하고 연구하게 되었고 회사가 잘 되기 위한 아이디어를 곳곳에서 찾게 되었다. 길을 가면서 작은 홍보 전단을 봐도 회사를 위한 아이디어가 됐고 그것이 불편하지 않게 되었다. 나의 직무역량을 높여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기쁨도 알게 되었다. 해외 구매자들을 위한 영어 공부, 내가 알지 못했던 웹 코딩을 위할 html 와 컴퓨터 언어를 공부한다든지 기존 프리랜서로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시도를 하게 되었다. 스스로 더욱 발전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이렇게 1년이 넘는 시간이 지속되다 보니 회사도 다른 부서 사람들도 속수무책으로 나가버린 이전 직원들과 나를 달리 봐주기 시작했다. 나의 영역과 결정을 존중해 줬고 내가 가진 업무역량에 대해 인정해주었다. 한 기업과 브랜드의 디자이너만이 가진 브랜드에 대한 깊은 고민과 이해를 조금씩 체득하기 시작해 업무에 대한 즐거움도 생겼다. 예전엔 좋은 디자인의 기준이 나의 심미안, 나의 가치관이었다면 지금은 회사의 색깔, 회사의 가치관이 나의 디자인에서 녹아나는 듯하다.
이렇게 일을 하다 보니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생겼다. 작은 회사다 보니 서로의 일에 관심을 기울였고 불편하지 않은 관심과 보살핌은 도움이 되고 감사가 될 때가 많았다. 작게는 서로 가지고 온 떡 한 조각 과일 한 조각 나눠 먹는 것부터 해서 크게는 결혼을 준비하는 날 위해 업무를 덜어가 주는 호의도 누리고 있다. 며칠 전 결혼을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대표님이 찾아오셔서 작은 선물을 주고 가시며 이런 얘길 하셨다. 내가 회사로 들어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작은 회사가 나아가는 방향이 바뀌었다고. 더 좋은 기업이 되어가는 것 같아 감사하다는 인사였다. 눈물진 목소리로 전해지는 진심에 울컥하는 감정이 밀려왔다. 언젠가 떠날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붙잡고 이 작은 회사를 유지해왔을 젊은 대표님들의 마음이 느껴져 짠했다.
그리곤 마음 한쪽 이런 마음이 들었다. 나 한 사람으로 인해 더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성장할 수 있는 회사라면, 그리고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고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는 회사라면 3년이 지나고서라도 조금 더 오랜 시간 동안 머물러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우리 회사가 조금 더 잘 되었으면,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회사가 조금 더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일을 한다. 때론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여 고군분투하여도 뒤처지거나 기회를 잃어 상심하고 달릴 힘을 잃는 때가 있는데, 내게 일어날 좋은 기회가 주어진 것 같아 감사하다. 앞으로 남은 2년의 세월을 잘 채워나가고 싶다.
회사도 나도 조금 더 멋있어져 있을 미래를 꿈꾼다.